빨간 옷을 입고 마술사 모자를 쓴 미키마우스 인형은 아무리 봐도 실제와 똑같다. 그러나 손을 뻗어 만지는 순간, 미키마우스는 거짓말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홀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에 잡히는 것은 텅 빈 허공뿐. 그렇다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림자까지 있는 이 멀쩡한 미키마우스는 무엇인가.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현기증으로 머리가 아찔해진다.
7월7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덕성여대 양만기 교수(회화)의 전시는 그야말로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라고 할 만하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두 점의 홀로그램이 자리잡고 있다. 액자 위에 희미하게 떠 있는 홀로그램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키마우스와 ‘목 없는 부처’는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착각할 만큼 완벽한 실물로 보인다. 마그네틱 거울을 이용해 360도 각도 어디서도 실물을 반사하는 그의 홀로그램은 2년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을 들락거린 연구와 실험 끝에 이뤄낸 성과다. 그는 ‘당신이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줄 아느냐’는 공대 교수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이 작업을 해냈다.
“살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또는 나의 삶은 진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만 가짜인 것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지요. 가상과 실체의 경계가 모호한 홀로그램으로 세상의 허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죠.”
홀로그램 외에도 그의 전시에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최첨단 기술들이 가득하다. 첼로와 소형 화면으로 이루어진 ‘궁합’은 첼로 줄을 건드리면 만지는 사람의 체온에 따라 다른 음악과 영상이 흘러나온다. 줄을 만져도 아예 소리가 안 나는 사람도 있고 줄을 만지기도 전에 소리가 나는 사람도 있다. 영상 작업인 ‘맞선’을 위해서는 미국에서 가로 0.6cm, 세로 1cm의 초소형 TV 화면을 들여왔다.
“‘궁합’은 첼로 몸통 안에 소형 CPU(컴퓨터의 본체)를 내장한 작품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궁합이 맞는 우연한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종합적인 작업인 멀티미디어를 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으면 비디오 아트를 못하죠. 물론 공학 전공자가 아니니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홀로그램 같은 경우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시작했어요.”
우리는 흔히 직업으로 한 사람을 규정한다. 직업은 곧 그 사람의 종류와 개성을 대변하는 잣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양만기를 규정짓기는 쉽지 않다. 그는 중학교에서는 바이올린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회화를, 대학원에서는 영화를 전공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회화를 가르치며 멀티미디어, 비디오 아트,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화, 회화 작업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영상 홀로그램을 연구하는 동시에 단편영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업 영역은 미술과 과학, 의학, 건축 등을 넘나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연상시킨다.
“제가 하는 모든 장르를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쪽이 영화인 것 같은데, 직접 해보니 영화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더군요. 조명이나 녹음 등 혼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시나리오도 더 습작해 봐야 할 것 같고요. 우리들 사이에서 진하게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잡아내야 하는데 자꾸 피상에서 겉돌고 있어 고민입니다.”
이 많은 장르를 한꺼번에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 그의 남다른 끈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원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이상하게도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고 음악 콩쿠르에서는 꼭 떨어지던 그는 서울예고 낙방을 계기로 미술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도 재수 끝에 들어갔고 대학원은 무려 7수를 했다. “조교로 가르치던 후배들이 다 졸업할 때까지 떨어지고 또 떨어졌죠. 교수님들은 다른 학교에 응시해 보라고도 권하셨지만 사람은 목표가 크든 작든 그걸 이루는 재미로 사는 것 아닙니까. 결국 7수 끝에 대학원에 입학한 후 연달아 국전과 국제공모전(영국 로열아카데미 파인아트)에서 대상을 타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죠.”
양만기를 소개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실 한 가지. 그는 최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건축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영국 BBC방송에 6000만원에 팔았다. 저녁때마다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디지털 캠코더로 찍은 것이다. ‘담배 피우려고 베란다에 나왔다가 눈앞에 경기장이 보여 그냥 찍기 시작했던’ 이 필름은 1년8개월 동안 촬영한 600여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드컵경기장의 사계절이 모두 담긴 다큐멘터리를 본 BBC는 그가 처음 제시한 가격의 두 배인 6000만원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내년에 영국에서 개인전까지 주선해 주기로 약속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모험심이 또 하나의 성과를 이룬 셈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 물론 저도 두려움은 있습니다. 지금껏 해온 방식에 의지해 버리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제 안에서 어떤 새로움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저는 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결국 전시할 때마다 새로운 방식의 무언가가 하나씩은 등장하게 되지요.”
서울 전시에 이어 7월13일부터 열리는 일본 전시에는 직접 키보드를 연주하고 그 연주에 따라 영상이 바뀌는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장르를 하느냐가 아니라 하고픈 이야기를 어디다 대입시켜 하느냐는 것이죠. 저는 회화로 표현 못하는 이야기는 사진으로 하기도 하고 영상으로 옮겨서도 해봅니다. 그게 또 제 스타일이어서 할 때마다 즐겁고요.” 그는 풍부한 재능과 그 재능보다 더 중요한 의지와 끈기를 갖춘 즐거운 ‘르네상스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7월7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덕성여대 양만기 교수(회화)의 전시는 그야말로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라고 할 만하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두 점의 홀로그램이 자리잡고 있다. 액자 위에 희미하게 떠 있는 홀로그램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키마우스와 ‘목 없는 부처’는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착각할 만큼 완벽한 실물로 보인다. 마그네틱 거울을 이용해 360도 각도 어디서도 실물을 반사하는 그의 홀로그램은 2년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을 들락거린 연구와 실험 끝에 이뤄낸 성과다. 그는 ‘당신이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줄 아느냐’는 공대 교수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이 작업을 해냈다.
“살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또는 나의 삶은 진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만 가짜인 것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지요. 가상과 실체의 경계가 모호한 홀로그램으로 세상의 허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죠.”
홀로그램 외에도 그의 전시에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최첨단 기술들이 가득하다. 첼로와 소형 화면으로 이루어진 ‘궁합’은 첼로 줄을 건드리면 만지는 사람의 체온에 따라 다른 음악과 영상이 흘러나온다. 줄을 만져도 아예 소리가 안 나는 사람도 있고 줄을 만지기도 전에 소리가 나는 사람도 있다. 영상 작업인 ‘맞선’을 위해서는 미국에서 가로 0.6cm, 세로 1cm의 초소형 TV 화면을 들여왔다.
“‘궁합’은 첼로 몸통 안에 소형 CPU(컴퓨터의 본체)를 내장한 작품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궁합이 맞는 우연한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종합적인 작업인 멀티미디어를 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으면 비디오 아트를 못하죠. 물론 공학 전공자가 아니니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홀로그램 같은 경우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시작했어요.”
우리는 흔히 직업으로 한 사람을 규정한다. 직업은 곧 그 사람의 종류와 개성을 대변하는 잣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양만기를 규정짓기는 쉽지 않다. 그는 중학교에서는 바이올린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회화를, 대학원에서는 영화를 전공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회화를 가르치며 멀티미디어, 비디오 아트,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화, 회화 작업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영상 홀로그램을 연구하는 동시에 단편영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업 영역은 미술과 과학, 의학, 건축 등을 넘나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연상시킨다.
“제가 하는 모든 장르를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쪽이 영화인 것 같은데, 직접 해보니 영화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더군요. 조명이나 녹음 등 혼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시나리오도 더 습작해 봐야 할 것 같고요. 우리들 사이에서 진하게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잡아내야 하는데 자꾸 피상에서 겉돌고 있어 고민입니다.”
이 많은 장르를 한꺼번에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 그의 남다른 끈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원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이상하게도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고 음악 콩쿠르에서는 꼭 떨어지던 그는 서울예고 낙방을 계기로 미술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도 재수 끝에 들어갔고 대학원은 무려 7수를 했다. “조교로 가르치던 후배들이 다 졸업할 때까지 떨어지고 또 떨어졌죠. 교수님들은 다른 학교에 응시해 보라고도 권하셨지만 사람은 목표가 크든 작든 그걸 이루는 재미로 사는 것 아닙니까. 결국 7수 끝에 대학원에 입학한 후 연달아 국전과 국제공모전(영국 로열아카데미 파인아트)에서 대상을 타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죠.”
양만기를 소개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실 한 가지. 그는 최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건축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영국 BBC방송에 6000만원에 팔았다. 저녁때마다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디지털 캠코더로 찍은 것이다. ‘담배 피우려고 베란다에 나왔다가 눈앞에 경기장이 보여 그냥 찍기 시작했던’ 이 필름은 1년8개월 동안 촬영한 600여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드컵경기장의 사계절이 모두 담긴 다큐멘터리를 본 BBC는 그가 처음 제시한 가격의 두 배인 6000만원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내년에 영국에서 개인전까지 주선해 주기로 약속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모험심이 또 하나의 성과를 이룬 셈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 물론 저도 두려움은 있습니다. 지금껏 해온 방식에 의지해 버리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제 안에서 어떤 새로움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저는 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결국 전시할 때마다 새로운 방식의 무언가가 하나씩은 등장하게 되지요.”
서울 전시에 이어 7월13일부터 열리는 일본 전시에는 직접 키보드를 연주하고 그 연주에 따라 영상이 바뀌는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장르를 하느냐가 아니라 하고픈 이야기를 어디다 대입시켜 하느냐는 것이죠. 저는 회화로 표현 못하는 이야기는 사진으로 하기도 하고 영상으로 옮겨서도 해봅니다. 그게 또 제 스타일이어서 할 때마다 즐겁고요.” 그는 풍부한 재능과 그 재능보다 더 중요한 의지와 끈기를 갖춘 즐거운 ‘르네상스인’임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