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세력이 물러난 뒤에도 혼란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아프간 사람들은 전에 누리지 못한 자유를 꽤 즐기는 표정이다. 시장에선 카세트테이프 가게들이 요란한 음악을 틀어대며 손님을 끈다. 파키스탄에서 들여온 음악 테이프들이다. 엄격한 종교정치를 추구한 탈레반 정권 아래서 그런 음악을 들었다간 풍속단속 경찰에 잡혀 매맞고 벌금을 문 뒤에야 풀려났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테이프를 살 만큼 넉넉하지는 않다”고 상인은 푸념한다.
유엔의 한 조사로는 2500만명의 아프간 인구 중 70%가 식량난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론 음악보다 먹고 입는 문제가 더 급할 수밖에 없다.
카르자이 과도정부 수립과 더불어 아프간엔 난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웃 파키스탄과 이란으로부터다. 유엔 고등난민판무관(UNHCR) 자료에 따르면 350만명의 난민과 130만명의 지역 내 난민(IDPs)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집이 파괴돼 주거문제가 심각하다는 점. 그래서 지금 아프간에선 많은 난민이 파괴된 집 바로 옆에 천막을 치고 겨울을 난다. 난민촌 풍경은 무척 을씨년스럽다. 좁은 천막 사이에 흙담을 둘러 공간을 나눠 쓸 정도로 옹색하다. 아프간에 지금 혹한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한겨울 추위는 느낄 수 없다. 낮 동안은 늦가을 같은 날씨다. 그렇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한밤중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길거리에서 자는 전쟁고아들이 얼어죽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아프간의 우울한 초상화 중 하나는 전쟁 부상자들이다. 카불 곳곳에서 목발을 짚은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마치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의 한국 풍경 같다. 카불시 외곽엔 현지인들이 ‘러시아 콤파운드’라 부르는 대규모 난민촌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아미르 칸(28)은 마수드 장군 밑에서 북부동맹군으로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 3년 전 포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아프간 정부로부터 보상금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일 뿐이다. 전쟁 부상자는 전투원만이 아니다. 많은 양민들도 무차별 포격전이나 지뢰의 희생자다.
아프간은 해마다 지뢰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엔 하루 3명꼴로, 1999년엔 하루 5∼10명이 지뢰를 밟아 죽거나 다쳤다. 그나마 1993년 날마다 20∼25명씩 희생자가 난 데 비하면 많이 준 셈이다. 카불 시내 전쟁피해자응급병원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의사 마리오 파칠레이(35)는 “지뢰 피해자들 중 적어도 절반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십자사(ICRC)가 운영하는 전쟁 피해자 재활센터에 가보았다. 그곳에선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의족과 의수를 만들어주고 걸음걸이 연습을 시켜준다. 물론 무료다.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현지에서 반군들에게 손목을 잘린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농경사회에서 손목과 발목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생활능력을 잃는 것을 뜻한다.
아프간도 농경중심 사회다. “재활센터를 찾는 전쟁 부상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한다”고 재활 전문의 와제르 아크바르 칸(53)은 말한다. 그곳에서 만난 압둘레인 코히스터니(28)는 8년 전 카불 국제공항 부근에서 지뢰를 밟아 왼쪽다리를 잃고 복부를 다쳐 40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도 후유증으로 소변 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그의 희망은 국제기관의 도움으로 외국에 나가 치료받는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도 내전중”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유엔의 한 조사로는 2500만명의 아프간 인구 중 70%가 식량난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론 음악보다 먹고 입는 문제가 더 급할 수밖에 없다.
카르자이 과도정부 수립과 더불어 아프간엔 난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웃 파키스탄과 이란으로부터다. 유엔 고등난민판무관(UNHCR) 자료에 따르면 350만명의 난민과 130만명의 지역 내 난민(IDPs)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돌아온 난민들의 제2캠프가 들어선 차라카르 도로변
문제는 많은 집이 파괴돼 주거문제가 심각하다는 점. 그래서 지금 아프간에선 많은 난민이 파괴된 집 바로 옆에 천막을 치고 겨울을 난다. 난민촌 풍경은 무척 을씨년스럽다. 좁은 천막 사이에 흙담을 둘러 공간을 나눠 쓸 정도로 옹색하다. 아프간에 지금 혹한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한겨울 추위는 느낄 수 없다. 낮 동안은 늦가을 같은 날씨다. 그렇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한밤중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길거리에서 자는 전쟁고아들이 얼어죽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아프간의 우울한 초상화 중 하나는 전쟁 부상자들이다. 카불 곳곳에서 목발을 짚은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마치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의 한국 풍경 같다. 카불시 외곽엔 현지인들이 ‘러시아 콤파운드’라 부르는 대규모 난민촌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아미르 칸(28)은 마수드 장군 밑에서 북부동맹군으로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 3년 전 포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아프간 정부로부터 보상금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일 뿐이다. 전쟁 부상자는 전투원만이 아니다. 많은 양민들도 무차별 포격전이나 지뢰의 희생자다.
깡통을 주워 생계를 잇는 아프간 어린이들
국제적십자사(ICRC)가 운영하는 전쟁 피해자 재활센터에 가보았다. 그곳에선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의족과 의수를 만들어주고 걸음걸이 연습을 시켜준다. 물론 무료다.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현지에서 반군들에게 손목을 잘린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농경사회에서 손목과 발목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생활능력을 잃는 것을 뜻한다.
세계식량프로그램에서 배급하는 빵을 받아가는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