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잖아도 시끌벅적한 서울 홍익대 일원이 요즘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이 난장판을 만든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 한껏 신이 난 표정이다. 놀이터가 전시장으로 변하고 주차장에서는 ‘중구난방’이라는 이름의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심지어 파출소, 동사무소에까지 진출한 예술 작품들은 이곳을 찾은 민원인의 눈길과 발길을 한동안 붙들어 맨다.
소란의 주범은 ‘독립예술제 2001’(9월7∼23일).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독립예술제가 이번에는 홍대 앞에 둥지를 틀었다. 주류 문화에서 소외된 독립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어 대중과 만나는 이 축제가 그동안 다른 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독립예술’ ‘인디문화’라는 말과 ‘홍대 앞’은 잘 어울리는 한쌍처럼 보인다.
‘한국적 프린지의 실험과 모색’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독립예술제는 올해 421개의 문화예술 단체와 개인이 참가해 200여 회 공연을 선보인다. 행사 규모로만 보면 영국의 ‘에딘버러 프린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에 이어 인디문화 축제로는 가히 세계 3위라 할 만하다. 98년 첫해 84개 단체와 개인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99년 156개, 2000년 184개로 규모가 커진 독립예술제는 올해 급격한 성장세를 이뤘다.
오랫동안 국내 인디문화 ‘메카’
홍대 인근 소극장, 라이브 클럽, 갤러리, 야외 및 거리 등 30개 실내외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독립예술제를 찾은 사람도 그냥 호기심에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던 모습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분야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찾아 즐기고, 유료공연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인디음악 팬이라는 손영수씨(25)는 “해를 거듭할수록 기획과 실무가 안정감을 더해가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축제’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힌다.
올해를 시작으로 독립예술제는 앞으로도 계속 홍대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침체기에 빠진 홍대 일원의 인디문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독립예술제를 계기로 홍대 문화의 현 주소와 위상을 제고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홍대 앞은 오랫동안 국내 인디문화의 ‘메카’로 불렸다. 아니, 어쩌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고급 유흥공간으로 출발한 ‘피카소 거리’가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모이는 클럽문화의 본산지로 자리잡은 건 94년 이후였으니까. ‘크라잉넛’이라는 걸출한 인디밴드를 배출한 ‘드럭’을 비롯해 ‘롤링스톤스’ ‘하드코어’ ‘마스터플랜’ 등의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은 한국 인디밴드의 산실이었고 지금도 국내 인디문화의 영원한 고향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거대 자본이나 기존 음반기획사의 도움 없이 저예산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인디 레이블의 기능까지 갖추면서 수준 있는 인디음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록음악에서 테크노 쪽으로 클럽들이 선회하지만 이 거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음악’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국내 최고의 미술대학이 있는 거리의 특성상, 이곳을 오가는 이들의 감성지수는 어느 지역보다 높다. 미술가의 작업장이 그대로 클럽이 되고, 거칠게 낙서한 작업장 분위기는 테크노 클럽의 인테리어로 받아들인다. 음악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런 인디적 감수성은 미술·연극 등 다른 장르로도 속속 번져나가 대안공간 루프, 쌈지스페이스, 씨어터 제로, 창무 포스트 같은 독특한 ‘대안적 공간’을 탄생하게 했다.
‘인디’의 이름 아래 지배권력과 제도화, 주류에 저항하는 몸짓이 음악으로, 춤으로, 미술로, 패션으로 다양하게 분출된 홍대 앞은 그러나 다른 여느 거리가 그러했듯, 제대로 된 문화가 자생력을 갖추기도 전 언제부터인가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저 하나의 유행이 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 시작했다.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새로 생긴 멋진 인테리어의 카페로, PC방으로 몰렸다. “테크노 클럽이 성행하면서 외국인이 부쩍 늘었어요. 주말에는 클럽마다 수시로 파티를 벌여 세계인의 거리가 되어가는 듯해요.” 홍익대에 재학중인 이수진씨(23)의 말이 어딘지 시니컬하게 들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독립예술제로 인해 젊은 문화예술인의 교류와 연대가 새롭게 이뤄지고,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홍대 입구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특화 개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마포구청 문화체육과 구본수 팀장은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상암동 월드컵주경기장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홍대 입구를 내외국인이 반드시 들르는 관광 및 문화의 명소로 가꾸기 위해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각종 거리공연을 유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독립예술제에 대한 지원도 계속해 민관이 협력하는 훌륭한 축제로 키웠으면 한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각종 기금 6000만 원), 구청과 협력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한 점도 독립예술제와 인디문화의 변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홍대 부근에서 활동한 문화기획자 겸 평론가 안이영노씨는 “홍대라는 장소가 가진 지역 이미지와 ‘독립’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한다. 홍대문화는 인력층이 탄탄하고 그들의 활동방식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커지고 있다. 이 거리의 소비성향이 강해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소비는 문화적 아이템에 자극 받아 발전하는 것이고, 거리의 배회자들이 많아야 문화공간도 발전할 수 있다. 이 지역을 적극 모델링하는 자치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클럽 수는 줄었지만 인디밴드들 사이에서 자생적 움직임이 일고 있고, 팬의 계층이 다양화· 세분화하는 현상을 보이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독립예술제 음악 부문의 프로그래머를 맡은 김작가씨는 “이전에는 클럽만을 활동 기반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장르별로 밴드공동체를 결성해 조직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팬 계층도 다양해 힙합, 펑크, 모던 록 등으로 세분화했다. 생산자와 수용자의 이런 변화가 인디음악 내 새로운 시스템을 가져오리라 본다”는 말로 최근의 변화를 설명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홍대 문화는 앞으로도 ‘인디’라는 이름으로, 질식할 것 같은 주류문화의 홍수 속에서 한 가닥 숨결을 불어넣는 몫을 담당할 듯하다. 독립예술제가 폐막하기 전 홍대 앞에 한번 가보자. 지금 그곳에는 아무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주류에 대항하는 저항정신으로 무장한 ‘싱싱한’ 독립문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소란의 주범은 ‘독립예술제 2001’(9월7∼23일).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독립예술제가 이번에는 홍대 앞에 둥지를 틀었다. 주류 문화에서 소외된 독립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어 대중과 만나는 이 축제가 그동안 다른 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독립예술’ ‘인디문화’라는 말과 ‘홍대 앞’은 잘 어울리는 한쌍처럼 보인다.
‘한국적 프린지의 실험과 모색’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독립예술제는 올해 421개의 문화예술 단체와 개인이 참가해 200여 회 공연을 선보인다. 행사 규모로만 보면 영국의 ‘에딘버러 프린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에 이어 인디문화 축제로는 가히 세계 3위라 할 만하다. 98년 첫해 84개 단체와 개인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99년 156개, 2000년 184개로 규모가 커진 독립예술제는 올해 급격한 성장세를 이뤘다.
오랫동안 국내 인디문화 ‘메카’
홍대 인근 소극장, 라이브 클럽, 갤러리, 야외 및 거리 등 30개 실내외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독립예술제를 찾은 사람도 그냥 호기심에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던 모습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분야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찾아 즐기고, 유료공연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인디음악 팬이라는 손영수씨(25)는 “해를 거듭할수록 기획과 실무가 안정감을 더해가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축제’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힌다.
올해를 시작으로 독립예술제는 앞으로도 계속 홍대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침체기에 빠진 홍대 일원의 인디문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독립예술제를 계기로 홍대 문화의 현 주소와 위상을 제고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홍대 앞은 오랫동안 국내 인디문화의 ‘메카’로 불렸다. 아니, 어쩌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고급 유흥공간으로 출발한 ‘피카소 거리’가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모이는 클럽문화의 본산지로 자리잡은 건 94년 이후였으니까. ‘크라잉넛’이라는 걸출한 인디밴드를 배출한 ‘드럭’을 비롯해 ‘롤링스톤스’ ‘하드코어’ ‘마스터플랜’ 등의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은 한국 인디밴드의 산실이었고 지금도 국내 인디문화의 영원한 고향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거대 자본이나 기존 음반기획사의 도움 없이 저예산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인디 레이블의 기능까지 갖추면서 수준 있는 인디음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록음악에서 테크노 쪽으로 클럽들이 선회하지만 이 거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음악’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국내 최고의 미술대학이 있는 거리의 특성상, 이곳을 오가는 이들의 감성지수는 어느 지역보다 높다. 미술가의 작업장이 그대로 클럽이 되고, 거칠게 낙서한 작업장 분위기는 테크노 클럽의 인테리어로 받아들인다. 음악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런 인디적 감수성은 미술·연극 등 다른 장르로도 속속 번져나가 대안공간 루프, 쌈지스페이스, 씨어터 제로, 창무 포스트 같은 독특한 ‘대안적 공간’을 탄생하게 했다.
‘인디’의 이름 아래 지배권력과 제도화, 주류에 저항하는 몸짓이 음악으로, 춤으로, 미술로, 패션으로 다양하게 분출된 홍대 앞은 그러나 다른 여느 거리가 그러했듯, 제대로 된 문화가 자생력을 갖추기도 전 언제부터인가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저 하나의 유행이 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 시작했다.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새로 생긴 멋진 인테리어의 카페로, PC방으로 몰렸다. “테크노 클럽이 성행하면서 외국인이 부쩍 늘었어요. 주말에는 클럽마다 수시로 파티를 벌여 세계인의 거리가 되어가는 듯해요.” 홍익대에 재학중인 이수진씨(23)의 말이 어딘지 시니컬하게 들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독립예술제로 인해 젊은 문화예술인의 교류와 연대가 새롭게 이뤄지고,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홍대 입구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특화 개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마포구청 문화체육과 구본수 팀장은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상암동 월드컵주경기장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홍대 입구를 내외국인이 반드시 들르는 관광 및 문화의 명소로 가꾸기 위해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각종 거리공연을 유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독립예술제에 대한 지원도 계속해 민관이 협력하는 훌륭한 축제로 키웠으면 한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각종 기금 6000만 원), 구청과 협력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한 점도 독립예술제와 인디문화의 변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홍대 부근에서 활동한 문화기획자 겸 평론가 안이영노씨는 “홍대라는 장소가 가진 지역 이미지와 ‘독립’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한다. 홍대문화는 인력층이 탄탄하고 그들의 활동방식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커지고 있다. 이 거리의 소비성향이 강해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소비는 문화적 아이템에 자극 받아 발전하는 것이고, 거리의 배회자들이 많아야 문화공간도 발전할 수 있다. 이 지역을 적극 모델링하는 자치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클럽 수는 줄었지만 인디밴드들 사이에서 자생적 움직임이 일고 있고, 팬의 계층이 다양화· 세분화하는 현상을 보이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독립예술제 음악 부문의 프로그래머를 맡은 김작가씨는 “이전에는 클럽만을 활동 기반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장르별로 밴드공동체를 결성해 조직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팬 계층도 다양해 힙합, 펑크, 모던 록 등으로 세분화했다. 생산자와 수용자의 이런 변화가 인디음악 내 새로운 시스템을 가져오리라 본다”는 말로 최근의 변화를 설명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홍대 문화는 앞으로도 ‘인디’라는 이름으로, 질식할 것 같은 주류문화의 홍수 속에서 한 가닥 숨결을 불어넣는 몫을 담당할 듯하다. 독립예술제가 폐막하기 전 홍대 앞에 한번 가보자. 지금 그곳에는 아무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주류에 대항하는 저항정신으로 무장한 ‘싱싱한’ 독립문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