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아트센터가 개관 3주년 기념으로 연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은 요절 또는 단명한 작가 16인의 전시회다. 구본웅, 이인성부터 오윤, 최욱경까지 1백 년 가까운 시간을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꿈틀대는 듯한 이중섭의 ‘황소’, 다정함으로 다가오는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타오르는 치열함으로 보는 이의 미간을 아찔하게 하는 권진규의 ‘두상’ 등 80여 점의 회화와 20여 점의 조각을 전시했다. 이들 작품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들이 동시대이거나 하나의 주제를 가진 게 아니어서 전시를 배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유족이 작품을 내놓기를 꺼려서 그들을 설득하는 데도 애를 먹었지요. 적잖은 그림들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센터 정희정 연구원의 설명이다.
요절 작가의 선정 기준은 광복 이전은 40세, 광복 이후는 50세 이전에 죽은 작가로 정했다. 이 기준에 해당한 작가는 모두 70여 명, 이 중 16명을 다시 추렸다. 구본웅 이인성 박수근 이중섭 함대정 권진규 김경 정규 송영수 최욱경 이승조 박길웅 전국광 오윤 손상기 류인 등이다.
요절 작가의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과 폭음이 원인이 되어 일찍 세상을 등졌다. 박수근이나 이중섭 등은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웬만하면 아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들은 생전에 변변한 전시회 한번 못한 무명화가였다.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그리며 은박지에 철필로 아이들 얼굴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는 그 사연 덕에 더욱 애잔하다.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이중섭은 무연고자였다.



세속적인 것에 통 무심하던 작가는 죽기 얼마 전부터 음식이나 옷에 관심을 보이며 살아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결국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최욱경의 삶과는 반대로 작품에는 폭발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비참한 관계’ ‘어떤 해결책을 줍니까’ 등 그의 작품에는 역동적 추상표현주의와 자연주의적 열정이 녹아 일렁인다.

이밖에 줄기차게 파이프를 그려 ‘파이프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은 이승조가 1986년부터 간암으로 죽은 해인 1990년까지 붙들고 있던 미완성작 ‘핵-Nucleus’, “태어난 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고 절규한 장애인 화가 손상기의 ‘공작도시’, 민중 미술가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연 다음 타계한 오윤의 ‘지옥도’ ‘원귀도’ 등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이번에 소개된 작가들은 젊은 나이에 타계했지만 생전에 이미 뚜렷한 작품 경향을 보이던 작가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탁월한 역량을 가진 작가들이었죠. 다만 일찍 세상을 떠난 만큼 가난하게 살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남은 작품의 수가 적고 그나마 훼손된 경우가 많습니다. 또 김복진 같은 조각가는 한국 조각의 선두 주자임에도 작품이 사료로만 남아 있어 전시할 수 없었죠.” 가나아트센터 김종화 이사의 말이다.
작가는 떠나고 없지만 작품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작품들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10월7일까지, 문의: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