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서정주, 이문열, 황순원, 박완서, 김동리, 윤동주, 김소월, 조정래, 황석영.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이 지난 6월11일~7월20일에 독자 600명(일반독자 300명, 전문독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선적으로 번역해야 할 작가’의 순위다. ‘우선적으로 번역해야 할 작품’으로는 박경리의 ‘토지’, 황순원의 ‘소나기’, 조정래의 ‘태백산맥’ 순이었다. 한국을 대표하여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문인과 작품에 대해서는 일반독자와 전문독자 모두 박경리와 ‘토지’를 꼽았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의 눈길은 냉정하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 순위를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인이 책을 얼마나 안 읽는지 알 수 있다. 늘 들어본 이름, 들어본 작품밖에 없다. ‘외국에 알리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 다른 어떤 질문이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며 한국인의 빈약한 독서수준을 개탄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제 우리 입맛에 맞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 해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작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산문화재단이 9년째 하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지원 사업은 작품 선정과 번역 출판 작업 외에 출판이 된 후의 배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개 초판을 2000부 정도 찍는데 200부는 한국에서 보관하고 일부는 해외공관이나 교포 단체, 대학교, 그밖에 한국문학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배포하더라도 초판을 다 소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권당 1000여 만 원의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해외에서 출판한 작품들이 종이로 폐기 처분되는 일이 허다하다.
흔히 지난 30년 간 이웃 일본이 2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냈는데 한국은 1명도 내지 못한 현실을 들어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그때마다 ‘번역의 부재’가 도마에 오른다. 하지만 각국 언어로 번역한 문학작품 수를 보면 번역 탓만 할 수도 없다. 98년 고려대가 발간한 ‘한국문학 번역 서지 목록’을 보면 지금까지 18개 국어로 번역한 책이 949권에 이른다. 그 가운데 소설책만 529권이다. 이것을 작품 수로 계산하면 1만6211편, 소설은 1892편. 번역의 질이나 언어권의 제한을 묻지 않는다면 웬만한 작품은 이미 번역했다는 의미다.
사실 한국인이 번역 1순위로 꼽는 박경리의 ‘토지’만 해도 번역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이미 번역이 끝난 작품이다. ‘토지’는 94년 프랑스 메이저 출판사인 벨퐁사에서 출간했고, 영어 출판에 이어 올해 독일어 1차분(3권)을 출간했다. 그러나 94년 떠들썩하던 출간 당시 상황과 달리 판매가 저조해 결과적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수용력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장석주씨는 “대하소설이라는 19세기적 장르를 가지고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다”고 말했다. 실패의 원인이 번역의 완성도나 편집 디자인의 미숙에도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현지 수용자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특히 ‘토지’나 ‘태백산맥’ ‘혼불’처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대하소설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상품으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이다.
또 해외에 소개할 작가와 작품을 고를 때 지나치게 국내 지명도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젊은 작가 발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문화사업팀장은 “99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고은 시인의 밤’에서 콧대 높은 미국 동부인을 감동시킨 것은 예상 외로 고은의 선시(禪詩)들이었다. 프랑스 역시 ‘만인보’와 같은 그의 대표작보다 선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하면서 국가와 국민성 등을 고려한 해외 출판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프랑스 쥘마 출판사에서 나온 김유정의 단편집 ‘소나기’가 초판 매진과 함께 프랑스에서 단시일 내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작품으로 기록된 것이나, 이승우의 ‘생의 이면’에 대해 프랑스 언론의 호평이 쏟아진 것도 기대하지 못한 성과였다.
특히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거둔 성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해 준다. 첫째, 한국적 특수상황에 기대지 않는 보편성을 가진 작품이 먹힌다는 것. 당시 ‘르 몽드’ 서평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우리에게 멀리 느껴지기보다는 우리 주변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오히려 우리를 놀라게 한다”고 적고 있다. 둘째, 이문열, 이청준 등 이미 세계 무대에 알려진 다음 세대 작가들의 발굴이다. 지난 6월 멕시코 대통령 방한에 동반한 멕시코 문화부 장관은 국내 출판관계자에게 특별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멕시코에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국문학의 수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도 자주 “이문열, 이청준 다음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해온다.
또 ‘생의 이면’을 통해 ‘한국문학은 곧 전쟁문학’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프랑스 쇠이유 출판사의 뱅상 바르테 편집장은 한국 출판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작가들은 한국전쟁을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신들에게 한국전쟁은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이 유고내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문제는 문단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번역원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문학을 소개할 때 중심이 되어야 할 개념’을 600명에게 물었더니 ‘한국적 특수성과 고유성’이 54.8%로 ‘세계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 45.7%보다 약간 높았다. 그 중 전문독자 300명에게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할 때 필요한 주제 항목’에 대해 물은 결과, ‘분단문학’이 40.3%로 압도적이었고 다음이 ‘한국적인 문학’으로 18%였다. 다시 한번 우리의 의식과 해외문단의 요구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번역원 국문학팀의 박혜주 박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번역·출판 지원사업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한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은 벌써 20여 년을 헤아린다. 1980년대는 문예진흥원 한국문학해외소개 사업이, 90년대에는 한국문학번역금고가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번역출간만 하면 그뿐, 사후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현지에서 얼마나 팔렸고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정리한 결과가 없다.
박혜주 박사는 “지금 노벨상을 말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고 말한다. “번역원의 역할은 한국문학의 존재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알릴지는 앞으로 충분히 고민해 결정할 것이다. 이를 위해 파리8대학 한국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파리에서의 한국문학 수용실태와 현황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앞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해외문단과 접촉할 기회를 많이 제공할 계획이다. 작가들을 해외 워크숍에 참여하도록 하고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문학포럼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시장에 한국문학이 뿌리내릴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너무 가시적 성과를 재촉한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문열의 ‘시인’이 프랑스 악트쉬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해 현지의 주목을 받은 것이 1992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10년 내 노벨문학상을 가져오겠다”는 말이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9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문열, 박경리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의 눈길은 냉정하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 순위를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인이 책을 얼마나 안 읽는지 알 수 있다. 늘 들어본 이름, 들어본 작품밖에 없다. ‘외국에 알리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 다른 어떤 질문이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며 한국인의 빈약한 독서수준을 개탄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제 우리 입맛에 맞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 해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작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산문화재단이 9년째 하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지원 사업은 작품 선정과 번역 출판 작업 외에 출판이 된 후의 배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개 초판을 2000부 정도 찍는데 200부는 한국에서 보관하고 일부는 해외공관이나 교포 단체, 대학교, 그밖에 한국문학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배포하더라도 초판을 다 소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권당 1000여 만 원의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해외에서 출판한 작품들이 종이로 폐기 처분되는 일이 허다하다.
흔히 지난 30년 간 이웃 일본이 2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냈는데 한국은 1명도 내지 못한 현실을 들어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그때마다 ‘번역의 부재’가 도마에 오른다. 하지만 각국 언어로 번역한 문학작품 수를 보면 번역 탓만 할 수도 없다. 98년 고려대가 발간한 ‘한국문학 번역 서지 목록’을 보면 지금까지 18개 국어로 번역한 책이 949권에 이른다. 그 가운데 소설책만 529권이다. 이것을 작품 수로 계산하면 1만6211편, 소설은 1892편. 번역의 질이나 언어권의 제한을 묻지 않는다면 웬만한 작품은 이미 번역했다는 의미다.
사실 한국인이 번역 1순위로 꼽는 박경리의 ‘토지’만 해도 번역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이미 번역이 끝난 작품이다. ‘토지’는 94년 프랑스 메이저 출판사인 벨퐁사에서 출간했고, 영어 출판에 이어 올해 독일어 1차분(3권)을 출간했다. 그러나 94년 떠들썩하던 출간 당시 상황과 달리 판매가 저조해 결과적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수용력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장석주씨는 “대하소설이라는 19세기적 장르를 가지고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다”고 말했다. 실패의 원인이 번역의 완성도나 편집 디자인의 미숙에도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현지 수용자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특히 ‘토지’나 ‘태백산맥’ ‘혼불’처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대하소설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상품으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이다.
또 해외에 소개할 작가와 작품을 고를 때 지나치게 국내 지명도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젊은 작가 발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문화사업팀장은 “99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고은 시인의 밤’에서 콧대 높은 미국 동부인을 감동시킨 것은 예상 외로 고은의 선시(禪詩)들이었다. 프랑스 역시 ‘만인보’와 같은 그의 대표작보다 선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하면서 국가와 국민성 등을 고려한 해외 출판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프랑스 쥘마 출판사에서 나온 김유정의 단편집 ‘소나기’가 초판 매진과 함께 프랑스에서 단시일 내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작품으로 기록된 것이나, 이승우의 ‘생의 이면’에 대해 프랑스 언론의 호평이 쏟아진 것도 기대하지 못한 성과였다.
특히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거둔 성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해 준다. 첫째, 한국적 특수상황에 기대지 않는 보편성을 가진 작품이 먹힌다는 것. 당시 ‘르 몽드’ 서평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우리에게 멀리 느껴지기보다는 우리 주변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오히려 우리를 놀라게 한다”고 적고 있다. 둘째, 이문열, 이청준 등 이미 세계 무대에 알려진 다음 세대 작가들의 발굴이다. 지난 6월 멕시코 대통령 방한에 동반한 멕시코 문화부 장관은 국내 출판관계자에게 특별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멕시코에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국문학의 수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도 자주 “이문열, 이청준 다음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해온다.
또 ‘생의 이면’을 통해 ‘한국문학은 곧 전쟁문학’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프랑스 쇠이유 출판사의 뱅상 바르테 편집장은 한국 출판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작가들은 한국전쟁을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신들에게 한국전쟁은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이 유고내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문제는 문단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번역원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문학을 소개할 때 중심이 되어야 할 개념’을 600명에게 물었더니 ‘한국적 특수성과 고유성’이 54.8%로 ‘세계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 45.7%보다 약간 높았다. 그 중 전문독자 300명에게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할 때 필요한 주제 항목’에 대해 물은 결과, ‘분단문학’이 40.3%로 압도적이었고 다음이 ‘한국적인 문학’으로 18%였다. 다시 한번 우리의 의식과 해외문단의 요구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번역원 국문학팀의 박혜주 박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번역·출판 지원사업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한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은 벌써 20여 년을 헤아린다. 1980년대는 문예진흥원 한국문학해외소개 사업이, 90년대에는 한국문학번역금고가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번역출간만 하면 그뿐, 사후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현지에서 얼마나 팔렸고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정리한 결과가 없다.
박혜주 박사는 “지금 노벨상을 말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고 말한다. “번역원의 역할은 한국문학의 존재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알릴지는 앞으로 충분히 고민해 결정할 것이다. 이를 위해 파리8대학 한국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파리에서의 한국문학 수용실태와 현황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앞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해외문단과 접촉할 기회를 많이 제공할 계획이다. 작가들을 해외 워크숍에 참여하도록 하고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문학포럼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시장에 한국문학이 뿌리내릴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너무 가시적 성과를 재촉한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문열의 ‘시인’이 프랑스 악트쉬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해 현지의 주목을 받은 것이 1992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10년 내 노벨문학상을 가져오겠다”는 말이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9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문열, 박경리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