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황당한 기사 하나가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 제주도에서 열린 ‘2001 세계 섬문화 축제’에 참가한 파키스탄 무용단원 18명이 잠적한 것이었다. 단 한 차례의 공연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진 무용단의 정체는 공연단체를 가장한 ‘위장취업단’. 이들 중 3명은 경기도의 사슴농장에 위장취업하려다 적발되어 강제 출국당했다. 축제조직위원회가 예술단체의 공연 실적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초청했다가 당한 망신이었다.
‘지구촌 섬사람들의 문화 대향연’이라는 거창한 구호 속에서 한 달 간 열린 섬문화 축제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60만 명을 목표로 한 관람객 수는 26여 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으며 그나마 유료관객은 14만4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야외공연은 비가 오는 바람에 잇달아 취소되었다. 축제장에 입주한 상인들이 영업손실 보상을 요구하면서 조직위원회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가 하면, 애당초 참가를 약속한 해외단체 중 3개 팀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축제 현장에서 ‘관람객 수 채우기’를 위한 비상회의가 열린 것만 보아도 축제 운영이 얼마나 미숙했는지 알 수 있다.
예상외로 적은 관객 수를 채우기 위해 동원한 방법도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경북 등 다른 도내 공무원들에게 표를 강제 할당한 것. 당연히 ‘어떻게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하면서 제주도에 가란 말이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결과적으로 2001 세계 섬문화 축제는 실패한 축제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축제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0대 축제 중 하나였다. 문화관광부와 제주시가 이 축제에 들인 예산은 무려 90억 원이나 된다.
제주도 섬문화 축제의 실패는 난립하는 한국 축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각 지방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의 수는 480여 개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규모 축제들까지 합하면 8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한 마디로 전국적인 ‘축제풍년’이다. 그러나 이 많은 축제들 중에서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축제,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는 축제, 또는 지역민이 다같이 어우러져 향유할 수 있는 축제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축제’라고 하면 즐거운 한마당이나 예술공연보다는 야바위꾼, 바가지와 상술, 시끄러운 장터, 한물간 연예인들 같은 이미지만 떠오르기 십상이다.
한국의 축제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축제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칸 영화제나 아비뇽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 등 외국의 유명한 축제들은 대개 연극이나 영화, 음악 등 특정한 예술장르를 주제로 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축제들은 실로 모호한 이름과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진 청자문화제’나 ‘영암 왕인문화축제’ ‘부산 자갈치축제’ 등의 이름을 듣고서는 그 축제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떠한 행사가 열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역 특유의 물산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물산전이지 축제가 아니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물산전 겸 축제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1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본격적인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축제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술의전당은 해마다 봄에 교향악 축제를, 가을에는 오페라 축제를 열고 있다. 이 중 교향악 축제는 단편적인 프로그램과 엇비슷한 공연 수준으로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반면 98년부터 시작한 오페라 축제는 어느 정도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의 고희경 팀장은 한국의 축제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공연의 질’에 둔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제대로 된 공연은 관객이 보러 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현재 지자체가 적잖은 예산을 축제에 투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왕 돈을 쓰려면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써야지요. 예산의 상당 부분이 프로그램보다는 팔도 먹거리 장터 같은 부대행사에 들어가는 실정입니다.”
특히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위인, 예를 들면 장보고나 인삼, 직지심경 등을 주제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축제는 비교적 쉽게 지자체의 예산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데올로기를 강요한 축제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비슷비슷한 축제가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 역시 꾸준히 제기해 왔다. 문화개혁시민연대는 올해 초 ‘지역축제모니터링단’을 발족해 난립하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감시활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와중에 7월23일 문화관광부는 “5년 안에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축제를 한국에서도 열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열리는 지역의 문화관광축제 중에서 인삼·도자기·태권도 같이 지명도 있는 소재를 활용한 축제 두세 개를 선정,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문화관광부의 방침. 이를 위해 지원할 예산은 연간 7억5000만 원 정도가 된다.
문화관광부 관광개발과의 김재숙 사무관은 “앞으로는 축제의 목표를 좀더 뚜렷하게 하겠다”면서 “연간 1200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2000억 원대의 수익을 내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같은 축제를 한국에서도 여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 어떻게 이들 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울 것인지, 세계적인 축제에 근접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문화관광부의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공연기획가인 강준혁씨는 “축제는 아기와 같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정성들여 키워야 그 결실을 볼 수 있는데 불과 5년 만에 세계적인 축제로 키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문화관광부는 축제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간과 전문인력 육성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쥬라기공원 같은 영화가 자동차 2만 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쥬라기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스필버그 같은 천재적인 창작자와 스필버그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진들이 필요합니다. 문화관광부는 인력을 키우는 데에는 등한시하면서 그저 문화를 이용해 돈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축제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제를 여는 가장 큰 목적은 즐거움과 감동을 얻는 데에 있다. 축제는 우리를 일상성에서 떠나 순수한 자유로움을 맛보는 마당이다. 또 말초적인 즐거움보다는 좀더 승화한 예술적 감동을 얻을 수 있어야 축제다운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아비뇽이나 에든버러를 찾아온 관객은 거리 무대에서 공연하는, 가난하지만 당당한 예술가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얻는다. 반면, 바이로이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은 최고급 예술가들의 수준 높은 공연으로 진한 예술적 감흥을 선사한다. 이들 축제에 몰리는 관객은 이러한 공연을 즐기기 위해 오는 것이지 먹거리나 특산물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상품가치가 있는 축제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문화부의 정책 속에는 상품과 돈벌이만 있을 뿐, 예술이 설 자리는 없다. 예술과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지구촌 섬사람들의 문화 대향연’이라는 거창한 구호 속에서 한 달 간 열린 섬문화 축제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60만 명을 목표로 한 관람객 수는 26여 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으며 그나마 유료관객은 14만4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야외공연은 비가 오는 바람에 잇달아 취소되었다. 축제장에 입주한 상인들이 영업손실 보상을 요구하면서 조직위원회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가 하면, 애당초 참가를 약속한 해외단체 중 3개 팀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축제 현장에서 ‘관람객 수 채우기’를 위한 비상회의가 열린 것만 보아도 축제 운영이 얼마나 미숙했는지 알 수 있다.
예상외로 적은 관객 수를 채우기 위해 동원한 방법도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경북 등 다른 도내 공무원들에게 표를 강제 할당한 것. 당연히 ‘어떻게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하면서 제주도에 가란 말이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결과적으로 2001 세계 섬문화 축제는 실패한 축제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축제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0대 축제 중 하나였다. 문화관광부와 제주시가 이 축제에 들인 예산은 무려 90억 원이나 된다.
제주도 섬문화 축제의 실패는 난립하는 한국 축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각 지방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의 수는 480여 개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규모 축제들까지 합하면 8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한 마디로 전국적인 ‘축제풍년’이다. 그러나 이 많은 축제들 중에서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축제,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는 축제, 또는 지역민이 다같이 어우러져 향유할 수 있는 축제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축제’라고 하면 즐거운 한마당이나 예술공연보다는 야바위꾼, 바가지와 상술, 시끄러운 장터, 한물간 연예인들 같은 이미지만 떠오르기 십상이다.
한국의 축제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축제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칸 영화제나 아비뇽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 등 외국의 유명한 축제들은 대개 연극이나 영화, 음악 등 특정한 예술장르를 주제로 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축제들은 실로 모호한 이름과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진 청자문화제’나 ‘영암 왕인문화축제’ ‘부산 자갈치축제’ 등의 이름을 듣고서는 그 축제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떠한 행사가 열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역 특유의 물산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물산전이지 축제가 아니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물산전 겸 축제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1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본격적인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축제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술의전당은 해마다 봄에 교향악 축제를, 가을에는 오페라 축제를 열고 있다. 이 중 교향악 축제는 단편적인 프로그램과 엇비슷한 공연 수준으로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반면 98년부터 시작한 오페라 축제는 어느 정도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의 고희경 팀장은 한국의 축제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공연의 질’에 둔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제대로 된 공연은 관객이 보러 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현재 지자체가 적잖은 예산을 축제에 투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왕 돈을 쓰려면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써야지요. 예산의 상당 부분이 프로그램보다는 팔도 먹거리 장터 같은 부대행사에 들어가는 실정입니다.”
특히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위인, 예를 들면 장보고나 인삼, 직지심경 등을 주제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축제는 비교적 쉽게 지자체의 예산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데올로기를 강요한 축제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비슷비슷한 축제가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 역시 꾸준히 제기해 왔다. 문화개혁시민연대는 올해 초 ‘지역축제모니터링단’을 발족해 난립하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감시활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와중에 7월23일 문화관광부는 “5년 안에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축제를 한국에서도 열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열리는 지역의 문화관광축제 중에서 인삼·도자기·태권도 같이 지명도 있는 소재를 활용한 축제 두세 개를 선정,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문화관광부의 방침. 이를 위해 지원할 예산은 연간 7억5000만 원 정도가 된다.
문화관광부 관광개발과의 김재숙 사무관은 “앞으로는 축제의 목표를 좀더 뚜렷하게 하겠다”면서 “연간 1200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2000억 원대의 수익을 내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같은 축제를 한국에서도 여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 어떻게 이들 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울 것인지, 세계적인 축제에 근접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문화관광부의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공연기획가인 강준혁씨는 “축제는 아기와 같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정성들여 키워야 그 결실을 볼 수 있는데 불과 5년 만에 세계적인 축제로 키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문화관광부는 축제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간과 전문인력 육성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쥬라기공원 같은 영화가 자동차 2만 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쥬라기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스필버그 같은 천재적인 창작자와 스필버그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진들이 필요합니다. 문화관광부는 인력을 키우는 데에는 등한시하면서 그저 문화를 이용해 돈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축제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제를 여는 가장 큰 목적은 즐거움과 감동을 얻는 데에 있다. 축제는 우리를 일상성에서 떠나 순수한 자유로움을 맛보는 마당이다. 또 말초적인 즐거움보다는 좀더 승화한 예술적 감동을 얻을 수 있어야 축제다운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아비뇽이나 에든버러를 찾아온 관객은 거리 무대에서 공연하는, 가난하지만 당당한 예술가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얻는다. 반면, 바이로이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은 최고급 예술가들의 수준 높은 공연으로 진한 예술적 감흥을 선사한다. 이들 축제에 몰리는 관객은 이러한 공연을 즐기기 위해 오는 것이지 먹거리나 특산물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상품가치가 있는 축제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문화부의 정책 속에는 상품과 돈벌이만 있을 뿐, 예술이 설 자리는 없다. 예술과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