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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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줄게! 바캉스 다녀와”

佛 지자체·시민단체, 빈민계층 지원… 여행·공연 관람 등 행사 다채 ‘방콕족’ 사라져

  • < 민유기/ 파리 통신원 > YKMIN@aol.com

    입력2005-01-14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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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대줄게! 바캉스 다녀와”
    파리에서는 요즘 프랑스어보다 외국 언어들이 더 많이 들리는 계절이다. 한 달 간 바캉스를 떠난 아파트 관리인의 역할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대신하고 있고, 주택가 상점의 일부는 ‘7월 한 달 동안 쉰다’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최근 2~3년 전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경제성장 덕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연중 바캉스 열풍에 빠져 있는 프랑스지만 전통적인 여름 바캉스는 여전히 프랑스인의 ‘존재 이유’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두터운 중산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도 여름 바캉스가 남의 얘기로만 여겨지는 계층이 있다. 실업자들조차도 실업수당 등 각종 복지혜택으로 바캉스를 떠날 수 있지만 도시 빈민으로 일용 노동직에 종사하는 날품팔이 노동자 가족들은 여름 내내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바캉스 없이 여름을 보내는 또 다른 계층은 혼자 사는 노인들과 사회적 관습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에게서 독립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층 가운데 일부 빈곤가정 출신들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는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버려두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시민단체, 자원 봉사자들이 사회연대의 이름으로 빈민계층이 바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먼저 파리시청 산하의 사회행동센터는 60세 이상의 노인층을 위해 네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첫째, 여름 내내 파리에서 벌어지는 각종 영화·연극·콘서트 등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는 무료 초대권을 발행한다. 둘째, 시 청사와 센강 유람선 내에서 무도회를 개최하고 파리 지역의 역사적 기념물이나 박물관 견학을 안내한다. 셋째, 참가자의 재정상태에 따라 차등을 두어 적은 경비로 1~7일 동안 프랑스나 외국을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를 무료로 사용하거나 1700~ 8500원 정도의 경비로 원하는 종목의 스포츠 강습을 실시한다.

    파리시청에서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도시, 삶, 바캉스’라는 프로그램도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이민 노동자 밀집 거주지역인 파리의 동쪽과 북쪽 구들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파리를 떠나는 무료 하루 여행과 문화예술이나 스포츠 관련 캠프들을 제공하거나 유명 휴양지에서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올 여름 ‘도시, 삶, 바캉스’ 프로그램에는 63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며 1만여 명의 청소년이 초청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름철에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빈민계층이 아니더라도 파리에서의 여름을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을 마련했다. 파리시 당국은 시내 소재 극장들의 소득세를 일부 면제해 주면서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7~8월에 독립극장이나 예술영화 상영 전문관에서 영화 가격의 반을 할인해 주는 ‘영화의 여름’ 행사를 실시한다. 이 행사는 7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20개 구별로 한 개씩 존재하는 공공도서관은 각종 공원에서 사서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거나 독서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문화강습이 열린다. 그밖에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름 내내 파리의 공원에서는 무료 음악회가 끊이질 않는다.

    프랑스 국민은 바캉스를 일부 여유 있는 특권층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전 국민이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인간다운 삶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지중해의 개인 별장에서 요트를 타며 한 달씩 휴가를 즐기는 상류층이건, 가족과 함께 알프스나 피레네 산맥, 또는 물가가 싼 북아프리카 휴양지로 1~2주간 떠나는 보통의 대다수 중산층이건 비슷한 생각이다. 또한 이 소중한 삶의 윤활유를 얻지 못하는 빈민계층에게 도시 밖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프랑스 사회가 지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 전통적인 사회연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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