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맥베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래서 또 다른 대형 참사사건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지난 1995년의 오클라호마 미 연방정부 건물 폭파사건으로 6월11일 티모시 맥베이가 처형당한 후로도 미국인들은 이런 공포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시민군(militia) 또는 애국자(patriot)라는 이름의 반정부무장집단들은 현재 파악된 것만 해도 194개나 된다. 96년 858개에 이르던 단체들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무시 못할 숫자다. 이런 반정부무장조직원들, 또는 ‘외로운 늑대’로 일컬어지는 비조직원이 제2, 제3의 오클라호마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맥베이 사형을 계기로 미국 내 테러리즘의 실상을 알아본다.
세금 못 내겠다며 마을 입구 막아
맥베이는 그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해 결과적으로 168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동기를 미 연방수사국(FBI) 탓으로 돌린 바 있다. 92년 FBI는 텍사스주 와코에서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끌던 한 종교집단을 포위 공격해 그곳에 있던 어린이 21명을 포함한 80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적이 있다. 맥베이를 자극한 또 다른 사건은 와코 사건과 같은 해에 아이다호 루비 리지에서 FBI가 한 백인우월주의자 가족을 사살한 사건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맥베이로 하여금, 미 연방정부가 미국 시민이 지닌 무기를 모두 압수하려 했고, 자신은 이에 저항하면서 연방정부에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미 법원에 의해 맥베이의 심리상태를 조사하도록 의뢰 받은 심리학자 존 스미스 박사는 맥베이의 범행동기를 “깡패를 미워하는 아동 심리”로 규정한다. 즉 맥베이의 시각에선 와코 사건에서 FBI는 ‘국가깡패’인 것이다.
미국 시민군은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무장시민의 집단적 움직임이다. 이념 자체는 보수적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혁명이론은 아니라는 얘기다. 맥베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민군은 그저 ‘분명치 않은 목적을 지닌 극단주의자들’(obscure extremist)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맥베이 사건으로 그 파괴적 위험요소가 드러났다. 마을 입구를 막고 경찰이나 세무 공무원의 출입을 막으면서 미국 국가기관을 상대로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이 소극적인 저항이라면, 도로상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안 달고 다닌다고 단속하는 경관을 쏴 죽이기도 했다. 이들은 미 연방정부가 추진해 온 세계화 정책에도 반감을 품고 있다. 세계화를 미국의 독립과 문화를 손상시키고,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으로 말미암아 미국 농부와 산업노동자를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여긴다. 미국 서부·중서부에 포진한 이런 시민군 운동 조직원들은 연방정부가 총기규제법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이에 적극 반대해 왔다.
시민군 조직원들은 대부분 무장을 하고 있다. 맥베이도 걸프전 참전 뒤 제대한 다음 80회에 걸쳐 미국 각지에서 열린 총기류 전시회(gun show)를 돌아보았을 만큼 무기에 집착을 보였다. 이런 총기류 전시회는 단순히 총기를 사고 파는 행사장이 아니라, 미국 시민군 단체들의 ‘만남의 장’ 같은 구실을 해왔다. 총기류 전시회에서는 백인말고 다른 인종을 찾아보기 어렵다. 멋모르고 찾아오는 흑인들말고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J. J. 존슨이란 이름을 가진 흑인 시민군 조직자도 있긴 하지만, 백인들 사이에 그는 ‘그 검둥이 녀석’으로 통할 뿐이다. 미국 시민군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그래서 이념을 같이하는 이웃사촌 사이다.
미 인종주의자들의 뿌리는 깊다. 그들은 일찍이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를 벌여왔다. 이른바 KKK(Ku Klux Klan) 조직이 그 대표적인 보기다. 지난 1970, 80년대에는 유대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포시 코미타투스 인종주의 조직이 미국 중서부에서 기승을 부렸었다. 포시 코미타투스는 90년대 시민군 운동의 논리적 바탕을 마련한 인물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에는 머리카락을 빡빡 민 신나치(neo-Nazi) 조직들이 미 전역에서 일련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즈음에는 ‘증오의 집단’(hate groups)이라 일컬어지는 소규모의 극단적 인종주의 집단들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시민군 조직원들에게 맥베이는 미 연방정부에 저항한 영웅이자 순교자로 여겨진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한 맥베이는 ‘뛰어난 전사’다.
시민군(일명 애국자) 관련 조직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폭파사건 이후 상당수가 해체되었다. 미국의 과격단체들의 동향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미 앨라배마주 남부빈곤법센터의 한 자료에 따르면, 사건 다음해인 96년 858개가 조직되었는데, 지금은 194개로 줄었다. 96년을 정점으로 시민군 운동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방정부 건물이 폭파되면서 21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68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맥베이 재판과정에서 시민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시민군 조직들이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주정부 당국과 FBI 당국이 수천 명에 이르는 조직원들을 불법무기 소지혐의, 테러 모의혐의 등으로 잡아들인 것도 운동이 힘을 잃은 이유다. 그동안 시민군에 호감을 보이던 일반시민도 등을 돌렸다.
한때 수천 명의 몬타나주 시민군을 회원으로 둔 것으로 알려진 존 트로치만은 이즈음 한줌도 안 되는 시민군을 이끌고 있을 뿐이다. 플로리다 시민군으로 적극 활동하던 도널드 뷰리가드는 발전소를 폭파하려 한 혐의로 5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중이다. 앨라배마 시민군의 공동 창립자인 제프 랜달은 이제는 시민군에서 손을 뗐다. 이 세 사람은 95년 맥베이 사건이 있은 뒤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민군 관련자들의 현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테리 니콜라스는 맥베이에게 폭발물을 건네준 까닭에 공범으로 붙잡힌 인물이다. 니콜라스가 관련된 미시간 시민군(Michigan Militia)은 폭파사건 뒤 조직을 개편해 이미지를 좀더 온건한 쪽으로 재포장했다. 연방정부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단의 과격파들을 쫓아내고 폭파사건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95년 맥베이 사건이 터졌을 때 수천 명의 회원을 자랑하던 북부 미시간의 한 시민군 조직은 지난 4월 해체를 선언했다.
시민군의 퇴조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도 확인된다. 남부빈곤법센터의 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전만 해도 263개에 이르던 관련 사이트가 지금은 155개로 줄었다. 이즈음에는 정기간행물조차 제대로 펴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때 시민군 단체들은 서로 연합을 시도해 제3대륙의회 또는 남동부주연합 등을 구성했으나 내부분열로 곧 깨지고 말았다.
문제는 지금 남아 있는 시민군 조직원들이 전보다 더 극우적이고 더 인종적인, 다시 말해서 백인우월주의적인 단체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반유대인 기독교일치(anti-Semitic Christian Identity) 신학이나 또 다른 소수파 갈래인 기독교부흥주의(Christian Reconstruc tionism)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학 하면 어렵게 받아들이지만,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나치식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는 목사와 그 신도들을 상상하면 된다. 이들은 미연방정부가 백인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편다는 불만을 지니고 있고, 이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테러 공격이 미국 영토 바깥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이나 오클라호마 폭파사건(95년)은 미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테러 폭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품게 했다. 이 사건 뒤 FBI는 직원을 500명 새로 모집해 반테러리즘 활동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는 반정부 시민군 운동조직에 대한 감시도 포함되어 있다.
맥베이는 자신의 폭파사건을 계기로 시민군 단체들의 미 국가기관에 대한 공격이 활발히 일어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두고 미국이 긴장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파괴적 움직임이 일어나진 않았다. 세금 내는 걸 거부하거나, 자동차 등록을 안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민군 관련단체들이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맥베이 같은 한 개인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다. 미국 언론들은 맥베이를 ‘외로운 늑대’라 부른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제2, 제3의 오클라호마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세금 못 내겠다며 마을 입구 막아
맥베이는 그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해 결과적으로 168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동기를 미 연방수사국(FBI) 탓으로 돌린 바 있다. 92년 FBI는 텍사스주 와코에서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끌던 한 종교집단을 포위 공격해 그곳에 있던 어린이 21명을 포함한 80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적이 있다. 맥베이를 자극한 또 다른 사건은 와코 사건과 같은 해에 아이다호 루비 리지에서 FBI가 한 백인우월주의자 가족을 사살한 사건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맥베이로 하여금, 미 연방정부가 미국 시민이 지닌 무기를 모두 압수하려 했고, 자신은 이에 저항하면서 연방정부에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미 법원에 의해 맥베이의 심리상태를 조사하도록 의뢰 받은 심리학자 존 스미스 박사는 맥베이의 범행동기를 “깡패를 미워하는 아동 심리”로 규정한다. 즉 맥베이의 시각에선 와코 사건에서 FBI는 ‘국가깡패’인 것이다.
미국 시민군은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무장시민의 집단적 움직임이다. 이념 자체는 보수적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혁명이론은 아니라는 얘기다. 맥베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민군은 그저 ‘분명치 않은 목적을 지닌 극단주의자들’(obscure extremist)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맥베이 사건으로 그 파괴적 위험요소가 드러났다. 마을 입구를 막고 경찰이나 세무 공무원의 출입을 막으면서 미국 국가기관을 상대로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이 소극적인 저항이라면, 도로상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안 달고 다닌다고 단속하는 경관을 쏴 죽이기도 했다. 이들은 미 연방정부가 추진해 온 세계화 정책에도 반감을 품고 있다. 세계화를 미국의 독립과 문화를 손상시키고,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으로 말미암아 미국 농부와 산업노동자를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여긴다. 미국 서부·중서부에 포진한 이런 시민군 운동 조직원들은 연방정부가 총기규제법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이에 적극 반대해 왔다.
시민군 조직원들은 대부분 무장을 하고 있다. 맥베이도 걸프전 참전 뒤 제대한 다음 80회에 걸쳐 미국 각지에서 열린 총기류 전시회(gun show)를 돌아보았을 만큼 무기에 집착을 보였다. 이런 총기류 전시회는 단순히 총기를 사고 파는 행사장이 아니라, 미국 시민군 단체들의 ‘만남의 장’ 같은 구실을 해왔다. 총기류 전시회에서는 백인말고 다른 인종을 찾아보기 어렵다. 멋모르고 찾아오는 흑인들말고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J. J. 존슨이란 이름을 가진 흑인 시민군 조직자도 있긴 하지만, 백인들 사이에 그는 ‘그 검둥이 녀석’으로 통할 뿐이다. 미국 시민군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그래서 이념을 같이하는 이웃사촌 사이다.
미 인종주의자들의 뿌리는 깊다. 그들은 일찍이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를 벌여왔다. 이른바 KKK(Ku Klux Klan) 조직이 그 대표적인 보기다. 지난 1970, 80년대에는 유대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포시 코미타투스 인종주의 조직이 미국 중서부에서 기승을 부렸었다. 포시 코미타투스는 90년대 시민군 운동의 논리적 바탕을 마련한 인물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에는 머리카락을 빡빡 민 신나치(neo-Nazi) 조직들이 미 전역에서 일련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즈음에는 ‘증오의 집단’(hate groups)이라 일컬어지는 소규모의 극단적 인종주의 집단들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시민군 조직원들에게 맥베이는 미 연방정부에 저항한 영웅이자 순교자로 여겨진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한 맥베이는 ‘뛰어난 전사’다.
시민군(일명 애국자) 관련 조직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폭파사건 이후 상당수가 해체되었다. 미국의 과격단체들의 동향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미 앨라배마주 남부빈곤법센터의 한 자료에 따르면, 사건 다음해인 96년 858개가 조직되었는데, 지금은 194개로 줄었다. 96년을 정점으로 시민군 운동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방정부 건물이 폭파되면서 21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68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맥베이 재판과정에서 시민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시민군 조직들이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주정부 당국과 FBI 당국이 수천 명에 이르는 조직원들을 불법무기 소지혐의, 테러 모의혐의 등으로 잡아들인 것도 운동이 힘을 잃은 이유다. 그동안 시민군에 호감을 보이던 일반시민도 등을 돌렸다.
한때 수천 명의 몬타나주 시민군을 회원으로 둔 것으로 알려진 존 트로치만은 이즈음 한줌도 안 되는 시민군을 이끌고 있을 뿐이다. 플로리다 시민군으로 적극 활동하던 도널드 뷰리가드는 발전소를 폭파하려 한 혐의로 5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중이다. 앨라배마 시민군의 공동 창립자인 제프 랜달은 이제는 시민군에서 손을 뗐다. 이 세 사람은 95년 맥베이 사건이 있은 뒤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민군 관련자들의 현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테리 니콜라스는 맥베이에게 폭발물을 건네준 까닭에 공범으로 붙잡힌 인물이다. 니콜라스가 관련된 미시간 시민군(Michigan Militia)은 폭파사건 뒤 조직을 개편해 이미지를 좀더 온건한 쪽으로 재포장했다. 연방정부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단의 과격파들을 쫓아내고 폭파사건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95년 맥베이 사건이 터졌을 때 수천 명의 회원을 자랑하던 북부 미시간의 한 시민군 조직은 지난 4월 해체를 선언했다.
시민군의 퇴조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도 확인된다. 남부빈곤법센터의 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전만 해도 263개에 이르던 관련 사이트가 지금은 155개로 줄었다. 이즈음에는 정기간행물조차 제대로 펴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때 시민군 단체들은 서로 연합을 시도해 제3대륙의회 또는 남동부주연합 등을 구성했으나 내부분열로 곧 깨지고 말았다.
문제는 지금 남아 있는 시민군 조직원들이 전보다 더 극우적이고 더 인종적인, 다시 말해서 백인우월주의적인 단체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반유대인 기독교일치(anti-Semitic Christian Identity) 신학이나 또 다른 소수파 갈래인 기독교부흥주의(Christian Reconstruc tionism)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학 하면 어렵게 받아들이지만,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나치식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는 목사와 그 신도들을 상상하면 된다. 이들은 미연방정부가 백인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편다는 불만을 지니고 있고, 이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테러 공격이 미국 영토 바깥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이나 오클라호마 폭파사건(95년)은 미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테러 폭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품게 했다. 이 사건 뒤 FBI는 직원을 500명 새로 모집해 반테러리즘 활동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는 반정부 시민군 운동조직에 대한 감시도 포함되어 있다.
맥베이는 자신의 폭파사건을 계기로 시민군 단체들의 미 국가기관에 대한 공격이 활발히 일어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두고 미국이 긴장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파괴적 움직임이 일어나진 않았다. 세금 내는 걸 거부하거나, 자동차 등록을 안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민군 관련단체들이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맥베이 같은 한 개인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다. 미국 언론들은 맥베이를 ‘외로운 늑대’라 부른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제2, 제3의 오클라호마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