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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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원에 학문이 없다”

간판 따기 급급, 논문은 쉬운 주제 골라 대충대충… 교수들도 연구 뒷전 지도능력 의심

  • 입력2005-03-17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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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학원에 학문이 없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지식생산을 위한 연구공동체. 종로구 동숭동 석마빌딩 4층에 자리잡고 있는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를 설명해 주는 말이다.

    1월30일 오후 7시, 이곳에서 ‘화요토론회’가 열렸다. 2주에 한 번 열리는 이 토론회는 회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는 장으로 이 날은 황치복씨(33)가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중심으로 ‘에로스, 저 문명에 내재하는 외부’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본격 토론이 시작되자 한 마디 끼여들기가 어려울 만큼 토론자들이 수다스러웠다는 것. 토론은 고사하고 졸다 오기 일쑤인 학술 심포지엄이나 세미나장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토론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발표자의 오류를 공격하기 위해 발언하는 게 아니라 ‘이런 방향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라며 논문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간간이 웃음이 터져나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그날 주제발표자는 자신의 논문 방향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 표정이었다.

    모 대학에서 국문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수유연구실에 나오고 있는 A씨는 대학과 이곳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에도 비슷한 형식의 발표회가 있는데 이상하게 맥이 빠져요. 활발히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하다가 교수나 선배가 한마디 하면 그게 결론이 되는 권위적인 분위기 때문이죠. 또 알게 모르게 한자리(강사-교수)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여서 절대 서로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요. 그러나 학부생부터 박사학위자까지 다양한 전공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된 이곳 세미나에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진짜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죠. 학위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니까요.”

    A씨는 국문학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문사철(文史哲)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학부과정은 물론 대학원 커리큘럼조차 그것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보다 이곳에서의 공부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누가 대학원에 학문하러 가나요? 교수 되려고 가지.” 이런 말이 나온 지 오래됐지만 교수는커녕 시간강사 자리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학원은 점점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유의 서울대 박사과정 미달사태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지만 그것은 예고된 결과에 불과했다. 인기 없는 몇몇 인문학 분야에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박사과정 지원자가 없어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원에 학문이 없다”
    입학 경쟁률이 높은 곳도 뚜껑을 열고 보면 ‘허수’일 가능성이 많다. 2년 전 명문대 사회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B씨는, 명문대에서도 학부 출신으로 같은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대학원의 실상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란다. 대신 중-하위권 대학 출신으로 명문대 학위를 원하거나 혹은 이미 교수 자리를 확보한 ‘유명인’들이 학위를 따기 위해 그 자리를 채운다.

    “어차피 학위만 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대학원에 와서도 전공분야 연구는 뒷전이고 영어공부나 취업준비에 매달려요. 대충대충 논문 쓰고도 연구자로서의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아요. IMF 사태 이후 취직이 안 되니까 임시방편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어요”(B씨).

    최종덕 교수(상지대·철학)는 대학원의 위기는 학문이 아니라 학벌을 위해 학위를 취득하려는 풍토가 가져온 비극이라고 설명한다.

    “원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자기 논문주제로 삼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늘고 있고, 연구보조금이나 조교장학금에 매달려 논문주제를 아주 쉽게 갈아치웁니다. 교육중심대학(학부)과 연구중심대학(대학원)을 구분해서 지원한다는 교육부의 괴이한 발상 이후, 대학원생들의 세미나 토론수준이 오히려 낮아졌어요. 학벌의 파장이 대학원에까지 미쳐, 학문이 아니라 학벌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몇몇 학벌 있는 대학의 대학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라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 대학원 면접에서 교수들은 노골적으로 “자네 공부하러 왔나, 고시준비할 건가”라고 묻는다. 경제-경영 등 비교적 취업률이 높은 학과에서도 대학원에 학적만 걸어놓고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C씨(34)는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만 한 채 8년째 사법고시를 준비중이다. 학생신분이어야 도서관 이용 등 학교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C씨는 말한다.

    대학원의 면학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애초부터 연구에 관심없는 원생들 탓만도 아니다. 연구를 안 하는 교수들일수록 큰소리치는 학계 풍토가 더 문제다.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의 외국논문 표절시비에 즈음해 이민웅 교수(한양대·언론학)가 ‘문화일보’에 기고한 ‘표절해도 출세만 하더라’의 일부를 보자.

    “내가 아는 유명한 K대 C교수의 말썽 많은 논문의 중요 부분은 제자의 학위 논문을 인용도 없이 표절한 것이었고, S대 G교수는 외국교수 책을 번역해 버젓이 자신의 저서로 출판했지만 그가 소속한 학회의 회장이 됐다. 또 C대 S교수는 국내 교수 언론 기고문을 베껴 시차를 두고 다른 언론에 기고했다 들통이 나 원필자에게 무릎 꿇고 사죄했으나 그가 소속한 두 개의 학회에서 모두 회장을 역임하는 후안(厚顔)의 용맹을 발휘하기도 했다…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B씨는 요즘 교수들이 박사과정 지도를 아예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공부 좀 하겠다 싶은 학생에게는 너무 쉽게 ‘외국으로 나가라’고 말합니다. 국내학위로는 전문대 교수도 되기 힘든 데다 제자로 데리고 있으면 졸업 후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인문사회대에 비해 취업부담이 적고 연구비도 풍부해 대학원 교육환경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는 이공대도 교육의 질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모색’의 오창은씨가 쓴 ‘대학원생들에게 미래는 있는가’에는 공대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산업공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J군의 말을 들어 보자.

    “공학계열 교수는 이미 40대만 돼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품이 되고 말죠. 그래서 대학원 수업은 대부분 세미나식으로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세미나 발표를 준비해 오면 교수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죠… 대학원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수를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차라리 열심히 로비를 해서 프로젝트를 많이 따오는 교수가 대학원에서 가장 유능한 교수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벤처기업 한다면서 제자들을 자기 회사 업무에 동원하는 교수도 있다. 이런 경우 말이 산학협동이지 연구자는 지도교수 눈치 보느라 자기의 연구주제와는 관계도 없는 일에 끝도 없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학문 후속세대를 길러내는 대학원의 기능이 점차 상실되고 있는 반면, 최근 1~2년 사이 지적 목마름을 느끼는 젊은 연구자들은 ‘수유연구실’처럼 스스로 연구공간을 마련하거나 캠퍼스 밖 강좌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98년 이정우씨가 서강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설립한 인사동 철학아카데미의 수강생 250여명 중 절반이 대학생, 대학원생이다. 이들은 밖에서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 건조하기 짝이 없는 강의와 세미나,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이원장은 “과감하게 각 대학원들을 통폐합하고 소수의 연구자를 위한 대학원만 남기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대학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비대해진 대학원을 축소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공부하려고 대학원 간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학문의 메카로서 대학원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와 대우전자에서 일하다 99년부터 수유연구실로 출퇴근하고 있는 박성관씨(33)는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은 대학 말고도 많다”고 말한다. 껍데기 대학원의 학위보다 진정 학문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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