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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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수요조사 제대로 했나

하루 14만명 이용 ‘1편성`=`20량’ 너무 앞서가… 승객 채우기 어려워 적자 운행 불 보듯

  • 입력2005-03-07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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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철 수요조사 제대로 했나
    세차례에 걸친 사업계획 변경, 정치권 실세들의 거액 로비 관련설, 부실공사 의혹 등 말 많고 탈 많았던 경부고속철. 그런 잡음 속에서도 단군 이래 최대 역사인 경부고속철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중이다. 2000년 11월 말 현재 공정률 58.8%를 보이고 있고, 2000년 말까지는 공정률 61%를 달성한다는 계획. 이 상태라면 2004년 4월 서울~부산 개통(2003년 12월 말 서울~대전 우선 개통)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측은 건설 공사와 함께 경부고속 열차 시운전도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공단측은 충남 아산시 음봉면과 충북 청원군 현도면을 연결하는 경부고속철도 시험선 57km 전구간을 완공, 작년 11월 중순부터 최고속도인 시속 300km 시운전에 돌입한 상태. 공단측은 시운전을 통해 고속철도의 성능과 안전성을 확보해 2004년 시작될 영업 운행에 완벽하게 대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총 사업비 18조원 규모의 경부고속철사업의 깊은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시작한 마당에 개통 이후에라도 탈없이 잘 달려주기만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의 이런 소박한 소망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정치적 차원에서 사업이 추진되는 등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

    고속철 수요조사 제대로 했나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고속철에 대한 수요. 처음 예상했던 것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속철을 이용할지 의심스럽고, 이 때문에 운영에 따른 대규모 적자 발생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 고속철 건설을 강행했기 때문에 고속철 건설 타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예상 수요가 부풀려진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고속철 건설 및 운행 계획이 잡히다 보니 적자 운행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내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를 가장 많이 제기하는 곳은 철도청이다. 건교부 고속철도건설기획단이 고속철도 건설 관련 주요 정책 및 기본계획을 수립-조정하고, 건설은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하지만 개통 이후 실제 고속철을 운영할 주체는 철도청 고속철도본부이기 때문. 철도청 입장에서는 고속철 운영에 따른 부실이 뻔한 상황에,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써야만 하는 ‘억울한’ 상황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게 되는 셈이다.



    철도청은 현재 고속철 운영에 관한 기본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계획은 건설교통부가 제시한 고속철 이용 예상 승객 하루 14만명(편도 7만명씩)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이 계획에 따르면 철도청은 도입 예정인 고속철 46편성 중 42편성을 투입, 서울~대전 최대 96회(12~13분 간격) 운행한다. 고속철 1편성은 20량(정원 935명)이 기본이다.

    문제는 하루 이용 승객이 건교부 예상대로 14만명 수준이 될까 하는 점이다. 철도청 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철도청 김천환 고속철도계획과장이 대표적인 경우. 김천환 과장은 “현재 경부선 열차 이용 승객이 하루 19만~20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2004년 고속철 1단계 개통시 이용 승객은 14만~15만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단언했다.

    김과장이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현재 경부선 철도 이용 승객 20만명 중 천안 대전 대구 등 대도시역을 이용하는 승객이 75% 정도. 따라서 경부선의 경우 적어도 70% 정도를 고속철이 흡수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 여기에 다른 교통수요에서 전이된 수요, 그리고 순수 유발 수요 등을 감안하면 예상 수요 14만명은 오히려 낮게 잡은 감이 없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과장도 피크 타임이 아닐 때는 20량에 승객을 모두 채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인정했다.

    한 전문가는 “새마을호 이용 승객이 그대로 고속철 승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서 김과장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새마을호 승객 흡수를 위해 박리다매식으로 운영할 경우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 차라리 수요가 조금 줄더라도 고가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1편성을 20량으로 하고, 운행 횟수를 대폭 늘려잡은 운행 계획은 문제가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철도요금은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 독일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라는 것. 이 때문에 원가 보전율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고속철을 새마을호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생각해 새마을호 수준 내지 새마을호보다 조금 비싼 수준의 요금을 책정하면 적자 운영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철도청 박선규 고속철운영과장은 솔직히 고민을 털어놓았다. 박선규 과장은 “1편성 20량의 가격만 해도 500억원 정도이기 때문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면서 “운영자 입장에서는 1편성이 10량으로 됐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헌 정비운영팀장도 “프랑스에선 테제베도 10량 편성이 기본인데, 20량 고정 편성으로 해놓고 승객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풀려진 수요 예측을 근거로 한 ‘1편성 = 20량’ 체제가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셈이다.

    철도청은 이런 문제의식을 근거로 최근 건교부에 보다 정확한 수요 예측을 해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다. 건교부는 2001년 효율적인 연계교통 시스템 구축 방안과 고속철 수송 수요에 관한 연구 용역을 교통개발연구원에 맡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교부 고속철기획단 신동진 서기관은 “실제 운행을 앞두고 그동안의 상황 변화에 따른 수요 변동을 알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 부풀려진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라는 얘기다.

    철도청으로선 답답한 점이 또 있다. 정책 부서인 건교부는 말할 것도 없고 고속철 시운전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고속철건설공단측이 고속철 운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운영 계획을 짜는 일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닌데도 기술 자료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애로가 많다는 것.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건교부가 고속철도운영공단을 따로 만들어 자신들이 직접 통제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의 20량 편성을 10량씩 분리하는 방안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1편성 = 20량’ 체제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철도청이 여론의 몰매를 맞을 각오만 돼 있다면 수익성 확보 방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철도대학 최연혜 교수는 “철도청이 ‘비싼 돈을 들여 고속철을 들여다놓고 썩히기만 한다’는 비난을 들을 각오를 하고 46편성 중 극히 일부만 실제 운행에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 신칸센의 경우 전체 열차 운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내외인 데서도 알 수 있듯 외국의 경우 처음 고속철을 도입할 때 전체 열차 운행의 10% 이내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최교수는 아울러 “고속철은 대중적인 공공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상품이 아니다”고 전제,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요금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철도청에 그만한 자율성은 주어야 한다는 것. 수익을 내고 있는 외국 고속철의 경우 대부분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대신 비싼 요금을 받고 있다는 게 최교수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역시 국민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어서 철도청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일 것이다. 고속철 운영을 떠맡게 될 철도청의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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