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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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론 급물살 탄다?

박근혜·김덕룡 부총재 잇따라 개헌 제의…문제는 민주당의 대응능력

  • 입력2005-06-02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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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계개편론 급물살 탄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가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박부총재는 11월24일 대구지역 기자간담회에서 개헌론과 관련해 “바람직한 권력구조라는 측면에서 5년 단임제는 레임덕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집권자가) 일을 하는 데 시간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박부총재가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같은 당 김덕룡 부총재가 개헌론을 꺼낸 지 하루 만의 ‘화답’이다. 김부총재는 11월23일 군산대 초청 특강에서 “대통령의 당적 이탈과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 개헌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면 이제까지의 지역대결이 아니라 정책대결로 건강한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도부 아연 긴장

    이렇듯 야당의 두 부총재가 하루 건너 개헌론을 제기하자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는 아연 긴장하는 눈치다. 박부총재의 개헌론은 김부총재에 비해 강도는 낮았지만, 그 파장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박부총재가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영남권의 K의원은 “지금까지 여러 인사가 대통령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개헌론을 제기했지만 박근혜 부총재의 개헌론은 왠지 몹시 신경이 쓰인다”면서 “아무래도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사실은 김덕룡 부총재의 발언도 예사 수준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심을 버리고 과감하게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지역감정 해소를 바라는 야당 내 개혁세력들도 동참할 수 있을 것” “공동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덜미를 잡고 있는 자민련과의 부도덕한 관계를 청산한 뒤 역사와 국민을 상대로 직접 개혁정치를 펴야 한다” 등 수위가 한껏 올라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김부총재의 주장은 여야를 막론한 ‘개혁세력 결집론’ 중심의 정계개편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과 이념적으로도 맞지 않는 보수 성향의 자민련과의 관계를 청산한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적 성향 인사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당을 만들 수 있다는 제안에 다름 아니다. 이회창 총재 체제에 반기를 든 ‘공공연한 쿠데타’라고도 할 수 있다.

    김부총재와 박부총재가 각기 하루 걸러 개헌론을 꺼내 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정가의 분위기다.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인사는 “뭔가 냄새가 난다. 사전에 두 부총재가 의견 조율을 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심전심으로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한 핵심 인사도 “이회창 총재의 가장 큰 착각은 현재의 당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야당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본격화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이회창 총재도 4년 중임제 개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총재는 이와 ‘패키지 사안’인 정-부통령제 도입에 대해서는 극력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부통령제 도입이 필연적으로 정계개편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도 아닌 한나라당 인사들에 의한 개헌론 제기는 실제 개헌 추진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가 정계개편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에 충분한 것.

    그렇다면 야권의 개헌론 제기를 바라보는 여권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 민주당으로서야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 그 자체다. 자민련과의 내각제 약속 때문에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개헌론을 공론화하기 껄끄러운 것이 민주당의 입장. 11월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민주당 원유철 문석호 의원 등이 이를 주장하려 했지만 정균환 총무가 “검찰총장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자민련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면서 질의 원고에서의 삭제를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두 의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특히 중임제 개헌론을 여당에서 먼저 제기할 경우 그 파괴력이 떨어져 모양새만 그르칠 수 있다는 것도 여권 지도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두 부총재가 개헌론 및 이를 통한 정계개편을 주장한 이상, 상황은 크게 달라지게 됐다. 우선 ‘개헌 추진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위한 정략 정치’라는 야당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지난번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 과정에서 일부 자민련 의원들이 한나라당 입장에 동조한 이후, 많은 동료 의원들이 자민련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민련과의 어정쩡한 동거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인지 분명한 방향 설정이 있어야 2002년 대선 전략의 틀을 짤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민주당 내에서는 한나라당 두 부총재의 개헌론 제기에 민주당 지도부가 즉각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정국 대응력의 한계’로 보는 시각이 있다. 판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정국을 주도하는 판단과 실행력을 갖추지 못하고 청와대의 ‘하명’만 기다리고 있다 보니, 여권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돼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민주당 장성민 의원이 11월28일 ‘정치는 과연 생물인가’라는 제목의 서강대 초청 특강을 통해 재차 개헌론을 꺼내든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장의원은 이날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개헌은 고질적이고 망국적인 한국 정치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주요 방법으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면서 “야당은 훨씬 많은 정치적 다이내미즘(역동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의원은 특히 박근혜-김덕룡 부총재가 정-부통령 후보로 조합될 경우 동서화합이나 보혁연합 카드로서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보았다.

    특히 장의원의 이날 발언은 11월21일 연세대 국제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이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뿐만 아니라 개혁성과 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획력 등을 겸비해 당을 일사분란하게 이끌 수 있는 지도부 인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한 다음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새 지도부는 정계개편을 주도할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1일의 당정쇄신론 자체가 아예 정계개편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장의원의 21일 강연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대표를 발탁해 당직 임명권 등 강력한 정국운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 이는 단순히 ‘실세대표론’을 말한 것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 선출직 최고위원이 힘을 얻게 되면 그 여파가 자연히 한나라당의 선출직 부총재에게 옮겨갈 수 있다는 상황을 내다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나라당에는 김덕룡 부총재처럼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정-부통령제 도입을 원하는 중진 인사들이 적지 않다. 차기 후보군에 속하는 이부영 홍사덕 손학규 의원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민주당의 경우 이인제 김중권 최고위원 등은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도입 개헌론을 꺼낸 지 오래 되었다.

    이제 정국은 개헌론과 정계개편론이 동시에 진행되는 새로운 양상의 초입에 들어섰다. 최근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2중대 발언에 의해 이부영 부총재 등 한나라당 진보그룹이 세력화를 꾀하는 것도 정계개편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지지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기 때문에 개헌론을 통한 정계개편 논의는 더욱 더 힘을 얻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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