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한 프랑스인 문객은 마다가스카르를 두고 ‘진정한 에덴의 마지막 동산’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마다가스카르를 소개하는 책에는 인종의 특이성과 함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의 동식물들 소개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 마디로 마다가스카르는 ‘인류 자연의 보고’라는 말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고 있는 20만 종에 이르는 식물과 동물 중 4분의 3은 세계 다른 곳에는 서식하지 않는 것인데, 갖가지 색의 새와 카멜레온 등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동식물이 여기에 속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여우원숭이다.
그 원숭이를 보기 위해 나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마다가스카르 전통 건물이 어우러진 정감어린 도시 안타나나리보를 떠나 여우원숭이들이 산다는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으로 가려면 먼저 안체라나나라는 도시로 가야 하는데, 교통편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비행기를 선택해야 했다. 도로 사정이 세계에서 최악인 이 나라에서 육로를 선택한다면, 사나흘씩이나 걸리는 시간 소요뿐만 아니라 우기철이면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그나마 있던 비포장 도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탓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값비싼 요금을 치르고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니 약 1시간 30분 만에 안체라나나에 도착했다. 인구 6만의 이 도시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디에고 수아레스’라 불렸다. 이곳은 친근하게‘디에고’라고도 부르며 지금도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인도양에서 손꼽히는 미항이다.
이곳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이 바로 특이한 동-식물들의 주 서식지였다. 지프를 빌리고 어렵사리 동물 전문 가이드를 수소문하여 그곳으로 향했다. 케냐나 탄자니아 등의 자연보호지역과는 달리 관광 사파리가 개발되지 않아 토박이 가이드를 따로 구해야만 하는 데다가 동물들이 원시적인 자연에서 생활하기에 사람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촬영에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원숭이의 날쌤과 여우의 영악함을 가진 여우원숭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데다 사진 찍기는 더욱이나 어려울 것이라는 가이드 말은 며칠간 산속을 헤매면서 실감했다. 열대림에서 길이 아닌 곳을 헤치며 가다보니 1m를 전진하기도 어려웠고, 가시나무에 피부가 찢기는 것은 예사라 치더라도 말라리아나 각종 열대병을 옮기는 벌레들이 기승을 부려 이들을 피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아무리 찾아다녀도 주인공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3일 만에야 겨우 만난 여우원숭이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전에 새처럼 나무를 날아다니며 나를 조롱하듯 해 완전히 전의를 상실케 했다. 바로 앞에 여우원숭이를 두고도 촬영할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머리를 짜내 식사 대용으로 가져간 바나나 20여 개를 잘라 유인물로 설치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금방 행운이 온 것은 아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보람이 찾아왔다. 여우원숭이 암수 두 마리가, 이름 그대로 여우의 얼굴과 원숭이 몸뚱아리를 가진 이 한 쌍의 원숭이가 유인물인 바나나 곁으로 다가와 재빨리 먹이를 들고 도망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서너마리의 여우원숭이도 서서히 다가왔고. 잠시후 한 무리의 여우원숭이들이 너나 없이 몰려들었다. 왕관머리여우원숭이들이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기켜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왕관머리여우원숭이들은 바나나에 심취해 갔다. 요란하게 숲을 울리는 카메라의 모터 드라이브 소리도 바나나를 먹는 순간에는 자연의 또 다른 소리로만 들리는 모양인지, 아까처럼 도망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숲속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활보하는 왕관머리여우원숭이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에는 비밀의 동굴이라는 대규모의 박쥐 서식지도 있는데,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동굴을 더듬어 들어가 태고적 신비를 지닌 종유석을 보는 것도 좋지만 200, 300년 전 일어난 전쟁을 피 이곳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의 유골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 두 곳의 유명한 징기 자연보호구역 가운데 하나가 이곳 암브르산에 있다. ‘징기’는 석회암 산군을 지칭하는 것인데, 석회암들이 바늘처럼 산허리에 솟아 있어 마치 화성의 바늘산 같은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태고의 모습이 손상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사람의 손길이 미치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마다가스카르이기에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자연을 지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 듯싶다.
일주일을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의 신비한 자연과 함께 지낸 나는 다시 안체라나나로 돌아왔다. 지프를 타고 오는 도중 도로변의 시장이나 밀짚으로 엮은 집 앞에서 만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처음 본 동양인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와 주었다. 그들에게서는 흔히 빈민국에서 볼 수 있는 찌든 삶의 고난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무어라 물어보면 수줍게 대답해 줄 뿐 돈을 요구하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밀밭 구릉지나 오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푸르디 푸른 강에서 물소를 모는 소년을 보며 점점 척박해져 가는 한국의 자연 환경이 상대적으로 떠올랐다.
지금도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면, 비록 우리네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 못할지언정 마다가스카르인들은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 중의 으뜸인 깨끗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함께 떠오른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고 있는 20만 종에 이르는 식물과 동물 중 4분의 3은 세계 다른 곳에는 서식하지 않는 것인데, 갖가지 색의 새와 카멜레온 등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동식물이 여기에 속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여우원숭이다.
그 원숭이를 보기 위해 나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마다가스카르 전통 건물이 어우러진 정감어린 도시 안타나나리보를 떠나 여우원숭이들이 산다는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으로 가려면 먼저 안체라나나라는 도시로 가야 하는데, 교통편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비행기를 선택해야 했다. 도로 사정이 세계에서 최악인 이 나라에서 육로를 선택한다면, 사나흘씩이나 걸리는 시간 소요뿐만 아니라 우기철이면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그나마 있던 비포장 도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탓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값비싼 요금을 치르고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니 약 1시간 30분 만에 안체라나나에 도착했다. 인구 6만의 이 도시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디에고 수아레스’라 불렸다. 이곳은 친근하게‘디에고’라고도 부르며 지금도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인도양에서 손꼽히는 미항이다.
이곳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이 바로 특이한 동-식물들의 주 서식지였다. 지프를 빌리고 어렵사리 동물 전문 가이드를 수소문하여 그곳으로 향했다. 케냐나 탄자니아 등의 자연보호지역과는 달리 관광 사파리가 개발되지 않아 토박이 가이드를 따로 구해야만 하는 데다가 동물들이 원시적인 자연에서 생활하기에 사람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촬영에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원숭이의 날쌤과 여우의 영악함을 가진 여우원숭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데다 사진 찍기는 더욱이나 어려울 것이라는 가이드 말은 며칠간 산속을 헤매면서 실감했다. 열대림에서 길이 아닌 곳을 헤치며 가다보니 1m를 전진하기도 어려웠고, 가시나무에 피부가 찢기는 것은 예사라 치더라도 말라리아나 각종 열대병을 옮기는 벌레들이 기승을 부려 이들을 피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아무리 찾아다녀도 주인공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3일 만에야 겨우 만난 여우원숭이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전에 새처럼 나무를 날아다니며 나를 조롱하듯 해 완전히 전의를 상실케 했다. 바로 앞에 여우원숭이를 두고도 촬영할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머리를 짜내 식사 대용으로 가져간 바나나 20여 개를 잘라 유인물로 설치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금방 행운이 온 것은 아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보람이 찾아왔다. 여우원숭이 암수 두 마리가, 이름 그대로 여우의 얼굴과 원숭이 몸뚱아리를 가진 이 한 쌍의 원숭이가 유인물인 바나나 곁으로 다가와 재빨리 먹이를 들고 도망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서너마리의 여우원숭이도 서서히 다가왔고. 잠시후 한 무리의 여우원숭이들이 너나 없이 몰려들었다. 왕관머리여우원숭이들이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기켜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왕관머리여우원숭이들은 바나나에 심취해 갔다. 요란하게 숲을 울리는 카메라의 모터 드라이브 소리도 바나나를 먹는 순간에는 자연의 또 다른 소리로만 들리는 모양인지, 아까처럼 도망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숲속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활보하는 왕관머리여우원숭이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에는 비밀의 동굴이라는 대규모의 박쥐 서식지도 있는데,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동굴을 더듬어 들어가 태고적 신비를 지닌 종유석을 보는 것도 좋지만 200, 300년 전 일어난 전쟁을 피 이곳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의 유골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 두 곳의 유명한 징기 자연보호구역 가운데 하나가 이곳 암브르산에 있다. ‘징기’는 석회암 산군을 지칭하는 것인데, 석회암들이 바늘처럼 산허리에 솟아 있어 마치 화성의 바늘산 같은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태고의 모습이 손상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사람의 손길이 미치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마다가스카르이기에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자연을 지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 듯싶다.
일주일을 암브르산 자연보호지역의 신비한 자연과 함께 지낸 나는 다시 안체라나나로 돌아왔다. 지프를 타고 오는 도중 도로변의 시장이나 밀짚으로 엮은 집 앞에서 만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처음 본 동양인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와 주었다. 그들에게서는 흔히 빈민국에서 볼 수 있는 찌든 삶의 고난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무어라 물어보면 수줍게 대답해 줄 뿐 돈을 요구하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밀밭 구릉지나 오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푸르디 푸른 강에서 물소를 모는 소년을 보며 점점 척박해져 가는 한국의 자연 환경이 상대적으로 떠올랐다.
지금도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면, 비록 우리네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 못할지언정 마다가스카르인들은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 중의 으뜸인 깨끗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