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범죄자의 누명’을 쓸까.
‘주간동아’가 서울지방법원에서 입수한 ‘1심 무죄 선고율’ 현황조사에 따르면 2000년 1∼8월 전국 지방법원에서 형사범으로 기소된 피의자는 모두 11만3727명. 이중 713명의 피의자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99년 한해 동안엔 1347명의 형사사건 피의자가 무죄선고를 받았다.
1심에서만 713명과 1347명의 무죄선고. 무슨 의미인가. 총 1심 피의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무죄선고율)은 각각 0.63%와 0.74%다. 그러나 법률소비자연맹 홍금애 이사는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순간부터 명예 추락, 재산 손실, 신체 구금 등 말 못할 고초를 겪는다. 재판 결과와는 상관없이 기소만 돼도 ‘인격적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현실이므로 가능하면 한 명의 억울한 피의자도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녀는 “이런 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형사 피의자가 713명, 1347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검찰 기소 독점 견제 장치 없어
형사사건에 대한 기소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기소 과정에서 검찰을 견제하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최근 ‘검찰의 성역’에 대한 비판과 도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사람’ 잡는 일 막기 위해선 검찰의 기소권도 필요하다면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무죄 판결을 받은 3명의 형사사건 피의자측과 접촉했다. 이들은 “검찰은 ‘실수’로 잘못 기소했는지 모르지만 내 삶은 산산조각났다”고 말했다.
98년 7월 통조림에 포르말린을 넣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제조업자 이모씨(50)로부터 통조림을 공급받아온 한샘식품 대표 김진흥씨(42)와 부인 양순자씨(42). 9월28일 대법원에서 ‘식품에는 천연성분의 포르말린이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져 검찰 기소가 무리했다는 점이 확정됐고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김씨 부부가 그동안 잃은 것은 너무 컸다. 김씨는 이씨의 구속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다음 날 자신이 팔아온 거의 모든 통조림들이 반품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채권단이 가게에 몰려오면서 당시 ‘골뱅이통조림’에 관한 한 전국에서 세번째로 큰 사업가였던 김씨는 불과 며칠새 빚더미에 올랐다.
2년2개월 동안 김씨 부부는 서울시내 33평 아파트를 처분하고 15평 셋집으로 옮겼다. 지난해엔 담임교사의 도움을 받아 고3 아들의 등록금을 냈고, 보일러 한 번 틀지 않고 겨울을 났다. 전화요금이 체납돼 전화도 끊겼다. 양씨는 요즘 하루 3만8000원을 받는 파출부생활을 하고 있다. 밤10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고된 일. 그러나 은행 빚을 다 갚으려면 까마득하다. 양씨는 틈만 나면 친구 조미숙씨를 찾아와 “우리 가정은 아무 걱정 없이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남에게 해코지한 일도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빈털터리, 불량식품 파는 죄인이 됐다. ‘어떻게든 살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이런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피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양씨는 최근 국가와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양씨는 검찰을 향해 자신과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실수에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필가 박경자씨는 요즘 서울 자택에 머물며 한 권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믿어지지 않는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기 위해서다. 92년 박씨 등 3명은 어떤 고소사건에 참고인 진술을 서줬다가 사기와 변호사법위반으로 모두 구속 기소되는 일을 겪었다. 검찰이 후에 사기꾼으로 밝혀진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만 믿고 이들에게 죄를 씌운 것이다. 이들 3명은 2년 뒤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은 박씨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줬다. 외국유학에서 돌아와 박씨의 구명운동을 위해 애쓰다 많은 좌절을 맛본 아들은 “한국의 검찰은 너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자살과정에서 대학교수인 남편과의 사이에도 금이 가 박씨는 이혼을 하게 됐다. 그녀의 단란했던 가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분노와 스트레스 속에서 혼자 살아온 박씨는 최근 대장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수필집을 내서 얻는 수입을 모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행하는 ‘사법감시’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박씨는 “책을 쓰며 검찰에 대한 나쁜 마음은 모두 정리하고 있다. 나와 같은 억울한 피의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97년 4월9일 송진섭 당시 안산시장(현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은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청과회사로부터의 4000만원 뇌물수수,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10여 가지 죄목이 그에게 붙었다. 그는 97년 10월 1심 재판을 받고 풀려나 시장직에 복귀했지만 피의자신분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송씨는 “6개월간 시정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산시민이었다. 그러나 복귀 이후에도 ‘뇌물시장’이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 말이 먹혀들기 어려웠다. 시 정책수립, 예산집행, 인사권행사, 정부나 다른 단체장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기 시장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2000년 2월11일 서울고법 형사3부는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검찰의 모든 기소내용에 대해 “검찰의 오해였다, 검찰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일축했다. 송씨는 “애초 ‘기소거리’가 안 되는 사안들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소위 ‘기획수사’의 희생양이라는 것이 송씨의 주장이었다. “참담했던 6개월간의 교도소생활, 단체장의 꿈도 펴보지 못한 채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지낸 2년을 검찰은 보상해주어야 한다.” 송씨는 검찰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올해 무죄판결을 받은 713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억울하다. 나는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중엔 불가피하게 기소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기소로부터 인권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병각 선임연구원은 “검사에 대한 전문분야 재교육이 꾸준히 제공돼야 하고 기소 전 충분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검사 수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조성’ 차원이 아닌 보다 직접적인 구제방법은 아직 없다. 참여연대 이재명 간사는 “현행 형사보상제도로는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사정책연구원 형사사법연구실에 따르면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다는 이유로 검사가 처벌받거나 배상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검사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수사를 맡는 쪽도 검찰이며 검찰에 의해 ‘무고’로 기소되는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죄판결을 받은 한 피의자는 “검찰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하자 만나는 변호사마다 수임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대안으로 “검찰의 기소독점을 견제하는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검사의 기소 전 배심원을 붙이거나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될 땐 비 검찰 인사들로 구성된 조직에서 이를 심사하는 제도는 외국에선 이미 잘 운영되고 있다. 송진섭씨는 “검찰권의 정당한 행사는 적극 보호해 주되 양심적 시민들에 의해 검찰의 기소권이 일정부분 통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가 서울지방법원에서 입수한 ‘1심 무죄 선고율’ 현황조사에 따르면 2000년 1∼8월 전국 지방법원에서 형사범으로 기소된 피의자는 모두 11만3727명. 이중 713명의 피의자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99년 한해 동안엔 1347명의 형사사건 피의자가 무죄선고를 받았다.
1심에서만 713명과 1347명의 무죄선고. 무슨 의미인가. 총 1심 피의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무죄선고율)은 각각 0.63%와 0.74%다. 그러나 법률소비자연맹 홍금애 이사는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순간부터 명예 추락, 재산 손실, 신체 구금 등 말 못할 고초를 겪는다. 재판 결과와는 상관없이 기소만 돼도 ‘인격적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현실이므로 가능하면 한 명의 억울한 피의자도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녀는 “이런 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형사 피의자가 713명, 1347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검찰 기소 독점 견제 장치 없어
형사사건에 대한 기소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기소 과정에서 검찰을 견제하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최근 ‘검찰의 성역’에 대한 비판과 도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사람’ 잡는 일 막기 위해선 검찰의 기소권도 필요하다면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무죄 판결을 받은 3명의 형사사건 피의자측과 접촉했다. 이들은 “검찰은 ‘실수’로 잘못 기소했는지 모르지만 내 삶은 산산조각났다”고 말했다.
98년 7월 통조림에 포르말린을 넣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제조업자 이모씨(50)로부터 통조림을 공급받아온 한샘식품 대표 김진흥씨(42)와 부인 양순자씨(42). 9월28일 대법원에서 ‘식품에는 천연성분의 포르말린이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져 검찰 기소가 무리했다는 점이 확정됐고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김씨 부부가 그동안 잃은 것은 너무 컸다. 김씨는 이씨의 구속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다음 날 자신이 팔아온 거의 모든 통조림들이 반품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채권단이 가게에 몰려오면서 당시 ‘골뱅이통조림’에 관한 한 전국에서 세번째로 큰 사업가였던 김씨는 불과 며칠새 빚더미에 올랐다.
2년2개월 동안 김씨 부부는 서울시내 33평 아파트를 처분하고 15평 셋집으로 옮겼다. 지난해엔 담임교사의 도움을 받아 고3 아들의 등록금을 냈고, 보일러 한 번 틀지 않고 겨울을 났다. 전화요금이 체납돼 전화도 끊겼다. 양씨는 요즘 하루 3만8000원을 받는 파출부생활을 하고 있다. 밤10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고된 일. 그러나 은행 빚을 다 갚으려면 까마득하다. 양씨는 틈만 나면 친구 조미숙씨를 찾아와 “우리 가정은 아무 걱정 없이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남에게 해코지한 일도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빈털터리, 불량식품 파는 죄인이 됐다. ‘어떻게든 살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이런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피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양씨는 최근 국가와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양씨는 검찰을 향해 자신과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실수에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필가 박경자씨는 요즘 서울 자택에 머물며 한 권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믿어지지 않는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기 위해서다. 92년 박씨 등 3명은 어떤 고소사건에 참고인 진술을 서줬다가 사기와 변호사법위반으로 모두 구속 기소되는 일을 겪었다. 검찰이 후에 사기꾼으로 밝혀진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만 믿고 이들에게 죄를 씌운 것이다. 이들 3명은 2년 뒤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은 박씨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줬다. 외국유학에서 돌아와 박씨의 구명운동을 위해 애쓰다 많은 좌절을 맛본 아들은 “한국의 검찰은 너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자살과정에서 대학교수인 남편과의 사이에도 금이 가 박씨는 이혼을 하게 됐다. 그녀의 단란했던 가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분노와 스트레스 속에서 혼자 살아온 박씨는 최근 대장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수필집을 내서 얻는 수입을 모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행하는 ‘사법감시’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박씨는 “책을 쓰며 검찰에 대한 나쁜 마음은 모두 정리하고 있다. 나와 같은 억울한 피의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97년 4월9일 송진섭 당시 안산시장(현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은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청과회사로부터의 4000만원 뇌물수수,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10여 가지 죄목이 그에게 붙었다. 그는 97년 10월 1심 재판을 받고 풀려나 시장직에 복귀했지만 피의자신분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송씨는 “6개월간 시정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산시민이었다. 그러나 복귀 이후에도 ‘뇌물시장’이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 말이 먹혀들기 어려웠다. 시 정책수립, 예산집행, 인사권행사, 정부나 다른 단체장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기 시장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2000년 2월11일 서울고법 형사3부는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검찰의 모든 기소내용에 대해 “검찰의 오해였다, 검찰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일축했다. 송씨는 “애초 ‘기소거리’가 안 되는 사안들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소위 ‘기획수사’의 희생양이라는 것이 송씨의 주장이었다. “참담했던 6개월간의 교도소생활, 단체장의 꿈도 펴보지 못한 채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지낸 2년을 검찰은 보상해주어야 한다.” 송씨는 검찰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올해 무죄판결을 받은 713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억울하다. 나는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중엔 불가피하게 기소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기소로부터 인권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병각 선임연구원은 “검사에 대한 전문분야 재교육이 꾸준히 제공돼야 하고 기소 전 충분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검사 수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조성’ 차원이 아닌 보다 직접적인 구제방법은 아직 없다. 참여연대 이재명 간사는 “현행 형사보상제도로는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사정책연구원 형사사법연구실에 따르면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다는 이유로 검사가 처벌받거나 배상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검사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수사를 맡는 쪽도 검찰이며 검찰에 의해 ‘무고’로 기소되는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죄판결을 받은 한 피의자는 “검찰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하자 만나는 변호사마다 수임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대안으로 “검찰의 기소독점을 견제하는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검사의 기소 전 배심원을 붙이거나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될 땐 비 검찰 인사들로 구성된 조직에서 이를 심사하는 제도는 외국에선 이미 잘 운영되고 있다. 송진섭씨는 “검찰권의 정당한 행사는 적극 보호해 주되 양심적 시민들에 의해 검찰의 기소권이 일정부분 통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