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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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빼돌리고 ‘뻔뻔한 오너들’

해외, 친인척 명의 재산 도피 의혹…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여의치 않아

  • 입력2005-06-24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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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기고 빼돌리고 ‘뻔뻔한 오너들’
    성원건설 전윤수 회장. 대한종금의 전 이사회 의장으로 이 회사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그는 금감원 검사 결과 98년 5월 당시 2400여억원의 여신이 누적돼 있던 성원건설 등 계열사에 한도를 어겨 대출하도록 함으로써 대한종금에 대규모 부실을 안겼다. 결국 작년 4월9일 영업정지된 대한종금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고 파산처리됐다. 정부는 대한종금 고객의 예금 대지급 등 뒤치다꺼리를 위해 3조200억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예금보험공사가 대한종금에서 회수한 자금은 3000억원 남짓. 대한종금 파산관재인이 올 6월 대한종금의 보유자산 등을 처분해 예금보험공사에 배당한 결과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더이상 받아내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물론 대한종금 파산관재인이 전윤수 전 의장 등을 상대로 부실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의 드러난 재산이 미미해 기껏해야 몇 십억원 정도 더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 입장에서 더 분통 터지는 일은 부실에 책임있는 전윤수 회장이 여전히 성원건설과 성원산업개발을 경영하고 있다는 점. 성원건설 주채권은행인 주택은행 여신관리팀 김경욱 팀장은 “화의가 진행중인 성원건설 경영진을 문책하지 않은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김팀장은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그대로 경영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대한생명에 막대한 부실을 안겨 결국 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도록 한 최순영 전 회장은 어떤가. 그는 작년 2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자신의 경영권을 박탈한 금융감독위원회와 대한생명을 상대로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 대한생명을 살리기 위해 1인당 5만원씩을 갖다바친 국민 감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최 전 회장은 금감원 검사 결과 대한생명의 고객재산을 그룹 계열사에 2조원이 넘게 불법대출하거나 유용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 자신이 직접 횡령한 것만도 약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대한생명측은 그의 재산을 가압류해놓은 상태. 그러나 그의 드러난 재산은 100억원 안팎이어서 그가 초래한 대규모 부실에 비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새발의 피에 불과한 실정. 그것도 재판에 이긴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대한생명 관계자들은 최 전 회장이 이미 해외로 빼돌렸거나 친인척 명의로 상당액의 재산을 옮겨놓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명의 경우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되면 해외매각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일부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금융기관 부실로 인해 예금자에게 예금을 내줄 수 없는 경우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지급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공적자금 그 자체가 국민의 세금은 아니다. 그러나 공적자금은 공공채권 발행을 통해 조성했기 때문에 채권에 대한 이자는 재정에서 부담하고 있다. 또 지원된 자금 중 일부 회수하지 못한 금액도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8월 말까지 투입된 공적자금 110조원(공공자금 27조원 포함) 가운데 퇴출 금융기관의 예금 대지급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18조3000억원. 또 동화은행 등 5개 퇴출 은행을 인수한 국민은행 등 5개 은행에 퇴출 은행 자산 부족분 보전을 위해 출연한 공적자금은 모두 11조80000억원으로 퇴출 금융기관을 정리하는 데만 30조1000억원이 들어갔다(상자 기사 참조).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박시호 조사1부장은 “이중 대부분은 회수하기 어렵다고 보면 된다”고 실토했다.

    실제 이들 퇴출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산 등을 처분해 예보가 회수한 금액은 작년 8700억원,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7500억원 등 총 1조6200억원에 불과하다. 앞으로 파산을 선고받은 퇴출 금융기관 파산법인이 보유자산을 처분하면서 회수 금액은 좀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리라는 게 예보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결국 부실에 책임있는 대주주나 관련 임직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음으로써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금융기관별로 약간씩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부실화의 원인은 대부분 계열사에 대한 부당대출이었다. 여기에는 오너의 ‘숨은 손’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부실의 가장 큰 책임자는 오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의 직접 책임을 밝혀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관련 임직원들이 오너의 위법 부당 지시에 대한 증언을 꺼리기 때문. 예보 최명수 조사2부장은 “수사권이 없는 예보로서는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설사 오너의 책임을 규명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8월 말 현재 예보가 부실 원인 조사를 마친 202개 퇴출 금융기관의 임직원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가능 금액은 5조8858억원. 그러나 8월 말까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금액은 721명을 대상으로 한 3947억원. 이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대상 임직원들의 드러난 재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 이에 따라 예보가 직접 나서 부실 오너들의 숨겨진 재산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S종금사의 대주주이며 연대보증인 A씨. 그는 98년 2월14일 시가 9억원 상당의 서울 평창동 자택과 대지를 뚜렷한 이유없이 자신의 부인과 자녀에게 증여했다. 그 며칠 뒤인 2월26일 S종금이 영업정지됐다. 미리 낌새를 알아차리고 연대보증 채무를 피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했다. 예금보험공사는 A씨의 재산 추적 결과 이런 사실을 적발해내고 S종금 파산관재인에게 채권자 취소권을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예보는 A씨처럼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하고자 증여-가장매매-허위의 담보권 설정 등의 방법으로 재산을 은닉한 사람이 8월 말까지 216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대해서는 민법상 채권자 취소권에 의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 책임이 있는 전직 임직원이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은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지만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대동은행 파산관재인 박영배씨)라는 지적처럼 사해행위 취소 소송의 승소율은 50% 정도로 예상된다는 게 예보 관계자의 실토다.

    예보의 조사 결과 오너들의 재산 은닉 못지않게 퇴출 금융기관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98년 4월 인가 취소된 삼양종금 전 직원 Y씨가 역외펀드 투자대금을 환매받는 과정에 약 110만 달러를 개인적으로 빼돌린 사실을 밝혀낸 게 대표적 사례. 예보는 정밀 추적 끝에 이런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전액 회수함과 동시에 Y씨를 고발조치했다.

    퇴출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부실 책임 추궁에 대해 반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방 생보사 등 제2금융권 임직원들은 “가장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비해 생보사나 종금사 등 제2금융권 임직원에 대한 책임 추궁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보 정치영 변호사는 “은행의 경우 대출 시스템이 정착돼 있었지만 대주주가 있는 종금사의 경우 자체 규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보가 공적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예보의 부실 원인 조사로 현직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열심히 일했다가 나중에 대출 기업이 부도라도 나면 괜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금융기관 대출 창구가 얼어붙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보 박시호 조사1부장은 “작년 말 전국을 순회하며 금융기관 직원들에게 예보는 어디까지나 위법`-`위규행위만 문제삼을 뿐 단순한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부실 금융기관뿐 아니라 부실 기업주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역시 쉽지 않다. 부실 기업주에 대해서는 직접 손해를 당한 해당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기업주에게서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주의 숨겨진 재산 찾기가 쉽지 않아 소송에 따른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보철강 정태수 전 총회장의 경우가 대표적. 서울지법은 98년 9월 한보철강 공동관리인 손근석 사장이 정태수 전 총회장과 정씨의 3남 보근씨를 상대로 낸 사정 신청에서 “두 사람은 신청 전액인 1631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사정재판은 구 경영진의 부실 책임과 손해배상 금액을 정하는 절차로, 62년 회사정리법 제정 이후 한보철강이 처음으로 사정 결정을 받은 것. 그러나 한보철강 법무실 최대일 부장은 “국세청에서도 정태수씨의 밀린 세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 결정을 받아놓았지만 실익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과거 밀실에서 이뤄진 부실기업 정리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사는’ 식이었다. 반면 김대중 정부는 ‘회생 가능한 기업은 살리되 기업주에게는 상응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도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주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부실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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