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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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에 저주가 넘쳐난다

고교생 인권 짓밟는 ‘왕따 사이트’ 충격…욕은 기본, 가해 위협도 다반사

  • 입력2006-01-04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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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의 바다’에 저주가 넘쳐난다
    인터넷에 폭력적인 그림과 동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물들로 인해 인터넷이 남을 공격하려는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녀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자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인터넷 동영상화면(오른쪽).

    매일 수십만명이 지켜보는 인터넷사이트에 어느날 나에 대한 멸시와 욕설로 가득 찬 글이 올랐다면…. 그것도 나의 사진과 이름, 직장까지 ‘또박또박’ 공개된 채로….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제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다.

    5월20일 청와대 인터넷사이트에 전모군(16)의 제보가 떴다. 고등학생 한명을 ‘왕따 놓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인터넷사이트(http://myhome. netsgo.com/sham69/main.htm)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확인한 그 사이트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제목은 ‘안티 최쭛쭛 사이트’로 붙여져 있었다. 서울 모 고등학교 3학년생 최모군을 집단 ‘왕따 놓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사이트임이 분명했다.

    이 사이트엔 최군의 실제 이름과 나이, 사진,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가 밝혀져 있었다. ‘나이 19세, 키 174, 아이큐…, 별명 쭛쭛, 싫어하는 것 쉬는 시간…’ 이 사이트는 최군에 대한 악의적인 프로필로 가득했다.



    최군을 괴롭히는 학생들은 스스로를 ‘안티멤버’라고 부르며 사이트에서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해 놓고 있다. “강쭛쭛:두뇌적인 공격으로 최가 가장 미워하는 안티. 이쭛쭛:1, 2학년 때는 과감하고 현란한 물리적 공격을 했으나 3학년에 들어와서 정신적 공격을 주로 함. 최의 발작 이후 그의 공격이 뜸해져 반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있음. 임쭛쭛:최의 아픈 곳을 찌르는 송곳 같은 공격으로 안티계의 핵심인물로 자리를 굳힘. 강쭛쭛:교활한 최가 엄마를 이용한 반격으로 순식간에 패인이 됐지만 복수의 날을 꿈꾸고 있다. 유쭛쭛:최는 설마 그마저 안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히든카드로 쓸 수 있다. 조쭛쭛:최의 10년 된 샤프펜슬 분해하기, 의자에 압정 놓기 등 지극히 무식한 공격…” 열거된 사람은 모두 14명으로 대부분 같은 반 급우들로 보였다.

    제보자인 전군이 가장 ‘치를 떨었던’ 대목은 이 반이 소풍간 날 벌어졌다. 이 사이트엔 소풍가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있는 최군의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옆엔 이날 안티멤버들에 의해 야외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최군의 음성이 녹음돼 실려 있었다. 다음은 음성내용 중 일부. “최쭛쭛:아∼ 쭛쭛야, 남의 대화 함부로 녹… 레코드 시키고 있어…. 이쭛쭛:오∼ 영어∼ 얼∼ 네가 너무 야비해서 봐줄 수가 없어….”

    이 사이트가 인터넷에 공개된 뒤 많은 네티즌들은 경악했다. 3년에 걸쳐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최군의 사정이 마치 눈으로 목격하듯 적나라하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네티즌 양모씨(26)는 “인터넷이 한 청소년의 인격을 짓밟는데 활용되다니…. 교실에서 벌어지는 왕따보다 온라인 상의 왕따가 훨씬 더 처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네츠고측은 네티즌들로부터 “차마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제보를 받고 최근 이 사이트를 차단했다. 네츠고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사이트 운영자들은 네츠고 운영자로부터 접속차단 통보를 받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인터넷이 항상 예의바르고 친절하지는 않다.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개인 역시 사이버공간에서 공개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폭력’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왕따사이트’처럼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남을 공격하는 행위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렇게 막가파식으로 특정인에게 ‘저주’를 퍼붓는 행위가 지금 인터넷상에서 급격하게 늘고 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 인터넷이 한편으론 ‘폭력의 일방통행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6월1일 서울 서초동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곳에서 ‘네티즌윤리강령’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사이버공간의 주체는 인간이다. 타인의 명예 인권 감정 프라이버시를 훼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6월1일까지 정보통신사업법에 저촉돼 이 위원회의 단속망에 걸린 인터넷-통신정보는 총 7574건. 이중 언어폭력(1314건),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240), 음란물 및 폭력문자(118), 폭력정지영상(9), 폭력동영상(2), 폭력게임(2), 음란물 및 폭력물 판매-구매-교환(1573) 등 인터넷을 이용한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욕설이란 욕설은 모두 동원되고 있다. 부모 등 주변사람에게까지 욕하거나 살해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정보통신윤리위원회 심의팀 권나연씨)

    가해자의 신분을 감출 수 있는 채팅이나 이메일, 게시판을 이용한 공격은 너무 흔해서 일일이 단속하는 게 불가능한 실정. 여기서 진일보해 ‘왕따사이트’처럼 자신의 신분까지 떳떳이 밝히며 홈페이지를 통해 남을 공격하는 네티즌도 늘고 있다. 자연히 공격은 더 집요해지고 파괴력도 커진다.

    ID인스네어는 최근 한 홈페이지를 정부당국에 고발했다. 이 사이트는 인기댄스그룹 ‘핑클’을 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 사이트는 그룹 멤버들의 눈가에 멍이 들어 있거나 얼굴에 페인트칠이 돼 있고 머리는 뜯겨져 있는 합성사진과 욕설로 채워져 있었다. 인터넷전문가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예인합성사진은 은밀히 배포됐다. 그러나 이젠 ‘내가 만들었다’고 떳떳이 밝히고 다닌다. 사이버폭력에 대한 죄책감과 처벌의 두려움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각 통신사, 인터넷포털사이트들의 스크린망은 사이버폭력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6월1일에도 인터넷은 욕설과 저주의 바다였다. 다음은 H상고 2학년 L군을 실명으로 공격하는 홈페이지 내용. ‘넌 병신… 너의 별명은 펭귄… 다리가 짧으니까.’ Y고 한 학생은 교사들에 대한 욕설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달라고 권하고 있었다. ‘선생들마저 재수 없게 굴고 시비 같은 걸 걸어대싸서… 여기 홈페이지에 우리학교 선생들이란 섹션이 있다. 어떤 표현, 어떤 욕설이든 다 좋다. ×같은 선생들에 대한 일들을 남겨라. 추후에 은근히 선생들도 알게 해서 우리의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휴대폰으로 친구와 통화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미친년’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현실의 언어가 과격하기 때문에 인터넷도 거칠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문화평론가 이동연씨).

    사실 인간의 공격성-가학성은 인터넷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있어왔다. 그렇다면 왜 사이버폭력에 특별한 관심을 둬야 하나. 그 이유로는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낸 어떠한 도구보다도 손쉬운 공격수단이라는 점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열려 있으므로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 △ 반면에 법적, 현실적으로 피해 예방과 구제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은 피해구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 사례. 20대 여성네티즌 김모씨는 요즘 컴퓨터통신을 포기했다. 2개월 전부터 그녀가 통신이나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특정인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욕설을 퍼붓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 그녀를 따라다니던 사람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해당 통신사에 의해 잡혔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수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녀를 괴롭혔다. 통신사는 마침내 그의 ID 사용을 일시 정지시켰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단지 그것뿐이냐”고 말한다. 국내에서 사적인 표현이 문제가 돼 형사처벌을 당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김씨에게 인터넷은 ‘무정부세계’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전우택교수는 “인터넷을 이용해 타인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들어 그 까닭을 설명했다. “인간의 공격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더 늘어나며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단 한가지다. 사이버세계에서도 남을 못살게 굴면 자신도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억압 vs 사이버 폭력

    정보통신윤리위, 성인 인터넷 업체 사이트 이용해지 결정


    ‘음란물’과 ‘특정인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이버 폭력’은 모두 단속대상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사이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최근 경기 수원시 성인인터넷업체 BC커뮤니티의 사이트 ‘베드러브닷넷’에 대해 이용해지결정을 내렸다. 이 업체 이상호사장은 이에 반발, 서울지방법원에 이용해지결정 취소 가처분신청을 내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공권력에 의한 인터넷사이트 강제 폐쇄에 대해 불복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적발된 수백 건의 글과 그림 대부분이 음란한 성행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들”이라고 밝혔다. BC커뮤니티의 이상호사장은 6월2일 “성인대상 사이트에서 그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했다. “영화 ‘거짓말’을 둘러싼 논란과 유사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기통신사업법’이 오히려 문제다.” 이사장은 “근친상간 등 이용자들이 게시판에 올린 ‘정도가 지나친 표현들’을 운영자가 제때 삭제하지 못한 것인데 위원회는 그것을 문제삼아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며 ‘표적단속’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번 ‘표현의 자유’ 논란과 관련,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사이버폭력과는 혼동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고씨는 “성적인 표현의 경우 남에게 직접적인 해가 돌아가지는 않으므로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특정인을 지목해 이유없이 저주를 퍼붓는 사이버폭력은 명백히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사이버폭력은 ‘표현의 자유’의 대상 자체가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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