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질’을 놓고 벌어지는 입방아가 양 내정자에게 유쾌할 리 없을 것이다. 그는 “발로 뛰는 대사가 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했다. 주미대사로서 양 내정자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질논란’을 불식시키는 길은 양 내정자 스스로 자질을 입증하면 된다.
주미대사 내정을 놓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주로 한나라당에서 양성철(梁性喆) 신임 주미대사 내정자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검증 안된 공천탈락자를 임명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비판의 요지.
대외적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의 지명을 놓고 내부에서 시비거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시집갈 신부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지적도 있다. 양성철 내정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한나라당이 ‘함량미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양 내정자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딱히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대개 “꼭 집어서 얘기하긴 그렇지만…”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공천탈락도 16대 총선에서 지역구(구례`-`곡성)가 공중분해됐으니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천탈락 정도가 아니라 아예 92년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승수의원도 그 이듬해인 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주미대사로 낙점된 전력이 있다.
‘행정경험이 없는 교수출신’이라는 지적도 고려대 교수출신인 최상룡 주일대사의 선례가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 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나이 61세인 양 내정자는 광주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에서 2년 반 기자경력을 쌓았다. 그 후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 켄터키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부터 켄터키대학에서 조교수로 강단에 선 뒤 1986년 경희대로 이직하기까지 미국에서 21년을 살았다. 미국사회에 대해 알 만큼은 아는 셈이다.
그는 비교정치를 전공했지만 남북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 1981년 북한에 다녀왔으며 ‘북한정치론’ ‘북한정치 연구’ ‘남북한 통합론’ 등 북한 관련 저술을 상당수 남겼다.
그가 주미대사로 내정된 것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아는 인사가 미국에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김대중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6년 국회에 진입한 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4년간 몸담았던 양 내정자는 2년간 민주당 간사를 맡았고, ‘외교인력강화방안’이라는 책도 냈다. 국회에서는 ‘통일외교포럼’ 대표로 활약하면서 15대 국회 임기 중 7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지난 3월에는 김대통령의 특사로 과테말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미국내 지인으로는 상하원 의원들과 부르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엔터프라이즈재단, 아시아소사이어티회원 등과 비교적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 스탠리 로스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담당특사, 도널드 그레그,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국대사와 스티븐 보스워스 현 대사 등도 의원 재임시절 교분을 나눴던 지인들이다. 이같은 경력에도 그는 한나라당이나 언론으로부터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15대 국회 재임시 동료의원들이나 언론에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 못했던 측면도 이유가 된다.
양 내정자가 광주고 출신의 호남인맥이라는 점도 한나라당에게 밉보인 이유 중 하나다.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이 광주고 출신인 만큼 ‘정실’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들은 “주미대사는 대통령 몫”이라는 말로 양 내정자의 인선이 ‘장관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독특한 콧수염으로 상징되는 그의 미국식 합리주의가 ‘인정’과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30세에 교수가 돼 덩치 큰 미국학생들로부터 ‘동료학생’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길렀던 콧수염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자기 얼굴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는 삭막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98년 지방선거 직후에는 ‘5억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허위보도에 맞서 소송을 걸어 승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자질’을 놓고 벌어지는 입방아가 양 내정자에게 유쾌할 리 없을 것이다. 그는 “발로 뛰는 대사가 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했다. 주미대사로서 양 내정자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질논란’을 불식시키는 길은 양 내정자 스스로 자질을 입증하면 된다.
주미대사 내정을 놓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주로 한나라당에서 양성철(梁性喆) 신임 주미대사 내정자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검증 안된 공천탈락자를 임명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비판의 요지.
대외적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의 지명을 놓고 내부에서 시비거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시집갈 신부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지적도 있다. 양성철 내정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한나라당이 ‘함량미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양 내정자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딱히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대개 “꼭 집어서 얘기하긴 그렇지만…”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공천탈락도 16대 총선에서 지역구(구례`-`곡성)가 공중분해됐으니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천탈락 정도가 아니라 아예 92년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승수의원도 그 이듬해인 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주미대사로 낙점된 전력이 있다.
‘행정경험이 없는 교수출신’이라는 지적도 고려대 교수출신인 최상룡 주일대사의 선례가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 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나이 61세인 양 내정자는 광주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에서 2년 반 기자경력을 쌓았다. 그 후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 켄터키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부터 켄터키대학에서 조교수로 강단에 선 뒤 1986년 경희대로 이직하기까지 미국에서 21년을 살았다. 미국사회에 대해 알 만큼은 아는 셈이다.
그는 비교정치를 전공했지만 남북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 1981년 북한에 다녀왔으며 ‘북한정치론’ ‘북한정치 연구’ ‘남북한 통합론’ 등 북한 관련 저술을 상당수 남겼다.
그가 주미대사로 내정된 것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아는 인사가 미국에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김대중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6년 국회에 진입한 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4년간 몸담았던 양 내정자는 2년간 민주당 간사를 맡았고, ‘외교인력강화방안’이라는 책도 냈다. 국회에서는 ‘통일외교포럼’ 대표로 활약하면서 15대 국회 임기 중 7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지난 3월에는 김대통령의 특사로 과테말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미국내 지인으로는 상하원 의원들과 부르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엔터프라이즈재단, 아시아소사이어티회원 등과 비교적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 스탠리 로스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담당특사, 도널드 그레그,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국대사와 스티븐 보스워스 현 대사 등도 의원 재임시절 교분을 나눴던 지인들이다. 이같은 경력에도 그는 한나라당이나 언론으로부터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15대 국회 재임시 동료의원들이나 언론에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 못했던 측면도 이유가 된다.
양 내정자가 광주고 출신의 호남인맥이라는 점도 한나라당에게 밉보인 이유 중 하나다.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이 광주고 출신인 만큼 ‘정실’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들은 “주미대사는 대통령 몫”이라는 말로 양 내정자의 인선이 ‘장관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독특한 콧수염으로 상징되는 그의 미국식 합리주의가 ‘인정’과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30세에 교수가 돼 덩치 큰 미국학생들로부터 ‘동료학생’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길렀던 콧수염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자기 얼굴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는 삭막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98년 지방선거 직후에는 ‘5억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허위보도에 맞서 소송을 걸어 승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자질’을 놓고 벌어지는 입방아가 양 내정자에게 유쾌할 리 없을 것이다. 그는 “발로 뛰는 대사가 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했다. 주미대사로서 양 내정자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질논란’을 불식시키는 길은 양 내정자 스스로 자질을 입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