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發 환율 상승 저지 나선 정부

ISA 국내 주식 의무 투자 비율 높여 외환수급 개선 추진

  • reporterImage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입력2025-03-14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스크린에 코스피 및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스크린에 코스피 및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시스]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주식 투자가 늘면서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잔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서학개미 미국 주식 잔고는 2022년 말 442억 달러(약 64조 원)에서 2023년 말 680억 달러(약 98조6000억 원)로 54% 늘었다(그래프 참조). 지난해에도 꾸준히 늘어 12월 6일 기준 1121억 달러(약 162조6000억 원)에 달했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으로 12월 첫 주에만 60억 달러(약 8조7000억 원)가 증가했다. 올해 1~2월에도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로 103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외환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내 자산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에 정부는 국내 투자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포함되는 국내 주식형펀드의 의무 투자 비율을 최소 40%(법정 한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투자 한도는 향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국내 증시 밸류업을 촉진하는 세제 지원 패키지도 다시 추진한다. 주주환원 증가분에 법인세의 5%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배당 증가분을 저율 분리과세하며, ISA 납부 한도 및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개인 해외투자 확대로 외환시장 변동성↑”

    정부는 또 해외자금의 국내 유입을 늘리기 위한 대책도 내놓았다. 2010년 100%로 하향한 전문 투자 기업의 위험헤지비율 한도를 125%로 다시 상향 조정하는 등 외환파생상품 거래 제한을 완화한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과 이번 방안의 시행 효과 및 국가 신인도, 외환시장 여건 등을 살펴가며 단계적으로 제도 확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3월 7일 외환건전성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외환수급 개선을 위한 추가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은행 선물환포지션 한도 상향, 외국환은행 원화용도 외화대출 제한 완화,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의 외환 스와프 확대 등에 이은 대책이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이 늘면서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완화하려는 조치다.

    서학개미를 바라보는 정부 심경은 복잡하다. 서학개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서학개미가 벌어들인 해외주식 배당금이 60조 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들이 외환시장 변동성을 키운다는 인식도 정부 내에서 커지고 있다. 해외주식을 사들이려고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렸다는 분석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에 더해 최근에는 개인 해외투자 확대가 새로운 유출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권투자 유입은 한미 금리 역전 지속 등의 영향으로 예년 대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경쟁력에 투자”… 실효성 논란

    ‘김치본드’ 관련 규제도 풀기로 했다. 김치본드는 국내 기업 또는 외국 기업이 국내시장에서 달러 등 외화를 확보하고자 발행하는 채권이다. 김치본드가 원화용도 외화대출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당국이 규제 벽을 높였지만, 최근 외환수급 불균형이 두드러지면서 반대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김치본드 투자를 늘리면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화를 빌려와 원화로 바꾸는 수요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원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국내 설비투자를 위해 국내 은행 해외 점포에서 외화자금을 빌리는 것도 허용한다. 기업들이 이렇게 차입한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를 이끌어내 원화 가치를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은 있다. 김치본드·외화대출 금리는 통상 미국 국채금리 등에 가산금리를 붙여 산출된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국채금리는 한국보다 높다. 김치본드·외화대출 금리가 한국 내 원화 조달 금리보다 높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조달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 유출에는 규제가 많지 않은 반면, 외환 유입은 대외 건전성 관리를 위해 엄격하게 규제해왔다”며 “동일하지 않던 외환 유출과 유입 규제 수위를 비슷하게 맞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이 투자자들 시선을 국내로 돌릴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일각에선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에 매력을 못 느껴 해외 유망 기업을 찾는 것을 외화 변동성이 커진 원인으로 꼽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한다.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연금·투자연구소장은 “투자자가 해외를 선택한 것은 해외투자 기대수익이 국내보다 높기 때문이고, ISA의 장점인 절세는 수익이 발생한 후 세후 실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부가적 이슈일 뿐”이라며 “국내 주식투자의 기대수익 자체를 높일 수 있는 개선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절세 효과를 제공한다고 해외 투자자가 국내 투자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길진균 기자

    길진균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길진균 기자입니다. 정치 분야의 주요 이슈를 깊이 있게 취재하겠습니다.

    ‘尹 석방’에 與野 조기 대선 준비 ‘일단 멈춤’

    유럽 방위비 증액 기대감에 K-방산株 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