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있다면 상속세 대상
상속세 문제에 맞닥뜨린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속세법)에 따르면 상속세율은 5개 구간으로 나뉜다. 상속재산이 1억 원 이하일 경우 최저세율(10%)이, 30억 원을 초과할 경우 최고세율(50%)이 부과된다. 그런데 지난 부동산 상승장의 영향으로 상속세 과세 대상자가 대폭 늘었다. 민주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9957만 원이었다. 서울에서 자가로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별다른 재산이 없더라도 40%에 달하는 상속세를 납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상속세 과세자 비율은 2022년 기준 4.53%다.정부 역시 상속세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6월 16일 KBS ‘일요진단’에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60%, 대주주 할증을 제외해도 50%로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단 30% 내외까지 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해 관련 논의에 물꼬를 텄다. 성 실장은 세율 인하·공제 한도 인상 등을 통해 “서울 아파트 한 채 정도를 물려받는 데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지지 않는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다음 날 “기본 방향에 대해선 공감한다”고 밝혔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30%로 인하될 경우 상속인이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어떻게 변할까. 기재부가 7월 중 상속세 개편 방안을 밝힐 예정인 만큼 정확한 세부 내용은 좀 더 있어야 알 수 있다. 이에 주간동아가 △상속세 최고세율 30% 등 세율이 인하되는 경우 △일괄공제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인상하는 경우 △세율 인하와 일괄공제 인상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를 가정해 각 경우별 상속세 절감액을 따져봤다(인포그래픽 참조). 예상 상속세액은 최용준 세무법인 다솔 WM센터 대표 세무사의 자문을 받아 산출했다.
주 | 세율 인하의 경우 30억 원 초과 30%,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 25%,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 20%,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 15% , 1억 원 이하 10% 적용. 일괄공제 인상의 경우 공제액을 10억 원으로 산정 [자료 | 세무법인 다솔 WM센터]
상속세 마련 위해 사채까지
부모로부터 꼬마빌딩 등 부동산을 물려받는 경우는 어떨까. 흔히 건물주는 상속세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현금이 풍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 세무사는 “건물주라고 해도 공사·수선비 등 지출 부담이 있어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준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 세무사는 “최근 경기가 주춤해 꼬마빌딩 인기가 식으면서 매매마저 어려워지다 보니 상속세 마련을 위해 대출은 물론,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속세 마련 부담을 줄이고자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생전에 부동산을 매각한 후 자녀에게 현금으로 상속할 경우 양도소득세와 상속세가 연이어 부과돼 유산이 크게 줄어든다.최고세율을 적용받을 경우 상속세 부담은 더욱 커진다. 현행 과세체계에서 홀로 사는 노모로부터 40억 원 부동산을 상속받은 경우 상속세 12억4887만5000원을 부담해야 한다(표2 참조). 5억 원 세액공제를 받지만 여전히 상속세과세가액이 30억 원을 넘어가 최고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고세율이 30%로 인하될 경우에는 예상 납부액이 7억9394만5000원으로 줄어든다. 현행 대비 상속세 4억5493만 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율 인하와 일괄공제 인상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상속세 예상 납부액은 현행 대비 6억 원 이상 줄어든 6억4868만7500원까지 감소한다.
상속세, 이제 극소수 부자만의 문제 아니다
전문가들은 당장 상속세제가 전면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제 개편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시간이 한 달 정도밖에 없어 큰 틀의 개편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실제로 물려받는 재산에 한해 세금을 물리는 ‘유산취득세’로 상속세 부과 형태를 바꾸고, (기업 승계에 적용되는) 가업 상속 공제를 상향하는 수준으로 개편될 것 같다”고 말했다.대통령실과 기재부가 상속세 개편 방향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점도 변수다. 최 부총리가 “(성태윤) 정책실장의 의견은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도 세부 방향과 관련해서는 일정 부분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대통령실에서 경제수석을 할 때 정책실장 역할을 같이했지만 내가 사령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정책실장 역할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속세가 당초 취지와는 맞지 않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개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미 상속 문제로 이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투자이민 컨설턴트사인 헨리 앤드 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순자산 100만 달러(약 13억8000만 원) 이상인 한국인 가운데 800명이 이민을 갔다. OECD 대비 높은 상속세율이 이민을 늘린다는 시각이 많다. 최 세무사는 “과거만 해도 극소수 부자만 상속세 부담을 졌는데, 세법 개정이 오랜 기간 미뤄지면서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만 갖고 있어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상속세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한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관련 제도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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