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액체연료 로켓을 주로 사용한 이유는 기술 검증이 끝난 데다 성능도 양호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첫 액체연료 로켓은 연료로는 케로신을, 산화제로는 부식 방지 처리된 적연질산(IRFNA)을 사용했다. 그 후 북한은 효율성이 비교적 높은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UDMH) 연료와 사산화이질소(N2O4) 산화제를 자체 생산해 미사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4월 2일 신형 중장거리 고체연료 극초음속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뉴시스]
부식성 높은 액체연료
북한이 오랫동안 액체연료 방식에 집착한 또 다른 까닭은 비추력(specific impulse) 때문이다. 비추력은 1㎏ 연료가 1초 동안 연소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력을 뜻한다. 액체연료가 고체연료에 비해 비추력이 높다. 탄도미사일에 최대한 많은 탄두를 실어 가능한 멀리 날려 보내야 하는 북한으로선 미사일 대부분에 액체연료 방식 추진체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케로신+적연질산 조합이나 UDMH+사산화이질소 조합의 액체연료 미사일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UDMH, 적연질산, 사산화이질소 모두 맹독성 물질이고, 특히 산화제의 경우 부식성이 매우 강해 평상시 미사일 내부 탱크에 충전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산화제를 미리 넣어놨다가는 탱크가 부식돼 최악의 경우 미사일이 발사되기도 전 폭발할 수도 있다. 한국군의 북핵 대응 전략인 이른바 ‘킬체인(kill chain)’은 유사시 북한이 이 같은 액체연료 미사일을 쓰는 것을 전제로 한다.
킬체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미 공군의 시간 민감성 표적(TST) 대응 작전, 즉 ‘스커드 사냥(Scud Hunting)’ 개념을 가져와 발전시킨 것이다. 킬체인은 정찰기·위성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조짐을 포착한 후 탐지→식별→결심→지시→타격→파괴 순서로 이뤄진다. 북한 액체연료 미사일은 발사 전 기립한 뒤 연료·산화제를 주입하는데, 이 과정에 40분가량이 소요된다. 이 틈에 전투기나 전술탄도미사일로 선제공격을 해 북한 핵미사일이 발사되기 전 파괴한다는 게 한국군 킬체인 전략이다. 그럴싸한 계획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을 겨냥한 북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가운데 발사 준비에 40분이 소요되는 미사일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액체연료 로켓 추진체의 전술적 문제점은 옛 소련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찌감치 해결책으로 부식 방지 처리된 적연질산을 개발했다. 사산화이질소를 사용한 후부터는 산화제 탱크에 최대 5년 수명을 가진 부식 방지 코팅이 적용되기도 했다.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른바 ‘연료계통 앰플(ampoule)화’ 기술도 개발했다.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앰플, 즉 용기에 넣어 모듈화해 언제든 미사일에 장·탈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립 후 연료·산화제 주입 시간을 최소화할 경우 이동식 발사차량(TEL) 정차 후 미사일 발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7분 정도로 추산된다.
현무 미사일 300~500㎞ 비행에만 5분
2017년 6월 23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현무-2 미사일이 시험발사됐다. [국방부 제공]
한국군 당국은 북한이 연료 및 산화제가 주입된 액체연료 미사일을 보관·이동할 수 있음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2013년 봄 북한의 미사일 도발 당시 국방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북한 액체연료 미사일이 연료·산화제 주입 상태에서 갱도진지와 발사진지를 오가며 무력시위를 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반드시 40분 이상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킬체인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킬체인 전략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을 대량 도입하기 시작한 뒤에도 킬체인 전략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 2월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고체연료 방식 전술탄도미사일을 처음 선보였다. 그 후 다양한 유형의 고체연료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기존 스커드 미사일을 대체할 사거리 수백㎞의 전술미사일은 물론, 서태평양 미군 거점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도 고체연료 방식 모델이 배치됐다.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은 발사 전 연료 주입이 필요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동식 발사차량 정차 후 5분 내 발사가 가능하다는 데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4월 2일 발사한 중장거리 고체연료 극초음속탄도미사일이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있다. [뉴시스]
핵탄두 평양에 모아놨다는 ‘추정’
최근 한국군 당국은 올해 하반기 연합훈련 때부터 사이버전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막는 시나리오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사 징후를 포착해 선제 타격에 나서는 3축 체계 킬체인만으로는 요격 시차 등 허점이 있을 수 있어 이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 전략으로 킬체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NO)’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북핵 네트워킹 무력화 전략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김정은이 있는 평양 인근에 배치했다가 유사시 일선 부대로 분배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기에 모든 핵무기를 평양 인근에 쌓아놨다가 유사시 미사일부대로 보낼 것이라는 ‘추정’이 바탕이다. 실제로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핵무기를 운용한다면 핵탄두가 저장시설에서 운용부대로 옮겨지기까지 여유시간이 있을 테다. 한국군 당국은 이 틈을 타 김정은과 핵무기 저장·수송·사용부대 간 지휘통신 시스템을 교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쿠데타를 우려한 나머지 모든 핵무기를 평양 지근거리의 단일 저장시설에 보관할 것이라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핵무기 저장·발사시설은 유사시 최우선 공격 목표다. 따라서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그랬듯 넓은 지역에 분산시키는 게 상식이다. 백번 양보해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평양 인근에 집적해놨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한국군 당국의 계획처럼 사이버공격을 하기보다 핵무기 저장시설과 수송 차량을 공격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일시적인 발사 지연 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지휘통신 시스템 교란보다 핵무기 자체를 파괴하는 게 근본 해결책 아닌가.
각종 정황 증거를 종합해봐도 유사시 북한이 한국군 예상처럼 핵무기를 운용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 9월 북한은 ‘서부지구 전략순항미사일 운용부대 전술핵공격 가상 발사 훈련’을 감행했다. 당시 북한은 “새벽 불의의 시간에 발사 명령을 내리고 해당 부대의 핵공격 명령 인증 절차와 발사 승인 체계의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점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핵공격 명령이 하달되면 외부에서 핵탄두를 공급받아 발사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평시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가 명령이 내려오면 인증 절차를 거쳐 발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올해 3월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국방성과 미사일총국에 하달된 ‘포치’에도 핵무기 저장이나 유사시 분배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라는 새 전략의 전제가 된 추정이 틀렸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군사정찰위성 2호기가 4월 7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스페이스센터 발사장에서 발사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