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재건축 시대가 온다고 봅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도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놨습니다. 개인투자는 물론, 정부 차원의 주택 공급을 위해서도 재건축 시장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건축·재개발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최근 부동산 시장 움직임을 이렇게 평가했다. 부동산 시장의 ‘거래절벽’ 속에서 일부 재건축 단지가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차 아파트 196㎡(64평형)가 80억 원에 거래된 것이 대표적이다(1월 18일 실거래가 기준). 김 소장은 “최근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정말 ‘핫’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재건축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며 “2월 16일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된 후 재건축 투자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의 부동산 공약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2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김 소장을 만나 재건축 시장 상황과 그 의미를 물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홍중식 기자]
“주공5단지 재건축, 잠실 부동산 위상 확고히 할 것”
잠실주공5단지 정비계획안 통과 의미는 무엇인가.“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3구 중 송파구는 이른바 ‘찐(진짜) 강남’으로 불리는 서초·강남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송파구 아파트도 어마어마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한 송파구의 3대장 아파트가 엘스(2008년 9월 입주), 리센츠(2008년 7월 입주), 트리지움(2007년 8월 입주)으로 속칭 ‘엘리트’라고 한다. 그런데 엘리트 아파트도 입주한 지 꽤 됐다. 신축 아파트 단지가 인근 부동산 시장 가격을 끌고 가는 힘이 분명히 있다. 그런 점에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으로 신축 아파트가 나오면 부동산 시장에서 잠실 위상이 더 확고해질 것으로 본다.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 공간 조성 민간투자사업도 눈여겨볼 호재다.”
해당 정비계획안의 뼈대는 무엇인가.
“이번 정비계획안의 핵심은 50층 초고층 개발이다. 재건축을 통해 6815가구(현재 3930가구) 규모 대단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 역세권 일부 단지의 경우 최고 50층 건축도 가능해졌다. 정비계획안이 통과돼야 그에 맞춰 아파트 설계를 하고 건축심의도 하는 등 재건축 사업이 움직일 수 있다. 말하자면 재건축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비계획안이 통과됐으므로 앞으로 인허가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남은 대표적 절차는 건축허가, 사업시행인가, 시공사선정 등이다. 그러고 나서 감정평가와 분양신청,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이주·철거된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
재건축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규제로 억눌린 측면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재건축을 부정적으로 보고 규제를 강화했다. 그런데 최근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하면서 시장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건축·재개발 인허가를 하나씩 푸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당장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5단지도 오랫동안 재건축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는데 최근 서울시가 전향적 태도를 보여 정비계획안이 통과됐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전반에 ‘거래절벽’ 현상이 심한데.
“거래가 적다는 것은 시장을 관망한다는 의미다. 매수자는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이 없으니 당장 매입을 미룬다. 매도자도 집값이 급락할 것으로 보이면 급매물을 내놓을 텐데 그러지도 않는다. 최근 강남의 대장 아파트 단지인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33평형)가 46억6000만 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1월 21일 실거래가 기준). 이런 신호가 나오니 집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 모두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전월세 거래량도 바닥을 치고 있다. 마찬가지 이치다. 집값 하락 가능성이 명확하면 당장 집을 사지 않고 대개 전셋집을 구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집값이 떨어진다는 확신도 없으니 전세를 구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는 듯하다.”
“섣부른 재건축 투자 금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동아DB]
“앞으로 눈여겨볼 대표적 단지는 재건축 1번지라 할 수 있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그 외에도 압구정동이나 양천구 목동, 용산구 동부이촌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지역의 재건축 예정 단지들이 주목된다. 노원구 상계동·중계동 노후 아파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노원구에서 가장 오래된 단지인 태릉 우성아파트가 2차 안전진단에서 떨어진 것이 시장의 큰 이슈였다. 향후 안전진단 기준이 바뀔 경우 사업 진행이 용이해질 것이다. 경기에선 분당, 일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좋은 학군과 생활 인프라를 갖춘 1기 신도시라 재건축으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시장 호응도가 높을 것이다. 이들 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낮지 않느냐고 우려하기도 하는데 기우라고 본다. 일반분양 없이 일대일 형태의 재건축으로 진행해도 미래 가치를 감안하면 비교적 원활한 사업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재건축 투자의 특징을 감안할 때 섣부른 투자는 금물이다.”
2차 안전진단 허들이 높아 재건축 진행이 쉽지 않았는데.
“그렇다. 민간업체도 맡을 수 있는 1차 안전진단과 달리 2차 안전진단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안전관리원이 전담한다. 아무래도 각각 기타공공기관, 준정부기관이므로 정부 정책 기조의 영향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물론 이들 기관이 자의적으로 안전진단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토교통부(국토부) 고시(告示)에 따라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의 항목별 배점 비율이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건물 내구력을 평가하는 구조안전성(50%) 비율이 가장 높고,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25%)와 주거환경(15%), 비용 편익(10%) 등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구조안전성 비율을 대폭 높였다(노무현 정부 50%, 이명박 정부 40%, 박근혜 정부 20%). 결국 당장 건물이 무너질 정도가 아니면 재건축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생활 불편 등은 크게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은 어떻게 보나.
“앞으로 본격적인 재건축 시대가 온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대선 후에도 곧장 모든 규제가 없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가령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도 갑작스레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재초환을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이 폐지하려 했으나 2012년 5년 동안 적용 유예하는 것에 그쳤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재초환 같은 정책은 국회에서 개정·폐지를 결정할 사안 아닌가. 재건축·재개발과 관련한 대표적 규제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도 마찬가지다. 대선 결과와 별개로 여야 합의 없이는 큰 폭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놨다. 이 후보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선 △노후 신도시 특별법 제정 등 재건축·리모델링 활성화 △4종 주거지역 신설로 500% 용적률 적용 등을 공약했다. 재건축을 최대한 억제한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거리를 둔 모양새다. 윤 후보도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47만 호 주택 공급 △재초환 완화 △30년 이상 공동주택 정밀안전진단 면제 등 규제 완화책을 제시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풀어야 실질적 주택 공급”
섣부른 규제 완화가 부동산 시장의 투기 붐을 조장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김 소장은 “단순히 표면적인 공급량에 얽매이기보다 국민이 원하는 주택이 무엇인지 고민해 주택 공급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재건축·재개발은 곧 투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도시 재생 차원에서 그 가능성과 유용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주택 공급은 어렵다. 서울은 남은 택지가 거의 없어 획기적인 공급이 쉽지 않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각각 311만 가구, 250만 가구 공급을 공약했지만 솔직히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는 경기도 논밭을 신도시로 개발해 주택을 대거 공급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3기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 경기도에도 서울과 인접해 신도시로 개발할 만한 땅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지방에 대규모 신도시를 지어 주택 공급을 한다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지방 중소도시 인구가 인근 신도시로 이주해 구도심이 더 황폐화되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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