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통신]
영국 헤지펀드 투자자 빌 브라우더가 2018년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세계 최대 러시아 투자기업 허미티지캐피털 대표를 지낸 그가 이런 말을 한 배경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재산이 축소 신고됐다”는 의혹이 불거져서다. 푸틴은 2018년 5월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는데, 대통령직 연봉은 14만 달러(약 1억6850만 원) 정도다. 그는 이외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74.32㎡ 아파트, 세단 차량 등을 재산으로 신고했다(표 참조). 브라우더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는 “푸틴의 실제 재산은 천문학적 액수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트, 아파트, 전용기 찾아내 압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푸틴의 재산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푸틴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유럽에 보유 중인 재산을 동결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3월 1일(이하 현지 시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폭력적 정권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취해온 러시아 재벌과 부패한 지도자에게 말한다”며 “법무부는 러시아 재벌의 범죄를 쫓기 위해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요트와 호화 아파트, 개인 전용기를 찾아내 압류하기 위해 유럽 동맹에 합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미국과 EU, 캐나다 등 서방은 2월 26일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 배제 계획을 발표하며 러시아 ‘돈줄’을 막은 바 있다. 스위프트는 200여 개국 1만1000곳이 넘는 금융기관이 사용하는 전산망으로, 이번 제재로 러시아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차단됐다. 러시아 금융기관에 대한 경제 제재가 지도층 제재로 확장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푸틴의 정확한 비공식 재산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 세계 엘리트들의 재산 파악에서 가장 앞서가는 미국 ‘포브스’ 역시 푸틴의 재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대해 “아마도 부(富) 사냥에서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라고 표현했다. 다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그의 감춰진 재산이 1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재산 대부분을 가족과 측근 명의로 빼돌렸으리라는 시각이 많다.
15년 동안 차명재산 추정액 2.5배 증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차명 재산으로 알려진 흑해 연안 대저택. [AP통신]
당시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푸틴의 비공식 재산은 400억 달러(약 48조 원) 상당이었다. 15년이 지난 2월 28일 뉴욕타임스는 푸틴 재산이 1000억 달러(약 120조3800억 원)에 육박할 수 있다며 추정치를 늘렸다. 대통령직을 연임하며 막대한 차명재산을 형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과 요트 등 다양한 유형의 재산이 푸틴의 대표적인 비공식 재산으로 알려졌다.
가장 유명한 차명재산은 ‘푸틴의 궁전’으로도 불리는 흑해 연안 대저택이다. 각종 시설을 갖춘 해당 리조트는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이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의 정적이자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폭로로 정체가 드러난 해당 리조트에는 연회장은 물론 극장, 아이스하키 링크, 와인 저장고, 스파, 폴댄스 무대 등이 갖춰져 있다. 푸틴은 해당 대저택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리조트 부지 인근 1.6㎞를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푸틴은 연인에게도 차명재산을 둔 것으로 보인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해 발표한 판도라 페이퍼스를 보면 푸틴의 연인으로 알려진 한 여성은 1억 달러(약 1200억 원) 넘는 재산을 보유했다. 모나코에 위치한 410만 달러(약 49억 원) 상당의 고가 아파트 등이 재산 목록에 포함돼 있다. 해당 아파트는 발코니에서 모나코 해안을 직관할 수 있으며 주변이 엄격히 통제돼 인기가 많다. 이 여성이 28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아파트를 매수한 사실이 알려져 아파트가 사실상 푸틴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1억 달러 상당의 호화 요트 ‘그레이스풀’ 역시 대표적인 푸틴의 차명재산으로 꼽힌다. 해당 요트는 흔히 ‘푸틴의 요트’로 불린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2월 발표한 세계 10대 부자 중 1위는 2160억 달러(약 260조 원) 재산을 보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1640억 달러),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1590억 달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1270억 달러) 순인데, 푸틴 역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산가일 수 있는 것이다.
“통합제재법 이용 시 압박 가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1일(현지 시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히고 있다. [AP통신]
푸틴 재산을 추적하기 어려운 점도 제재 효과를 반감하는 요인이다. 미국 의회에 러시아 제재 관련 자문을 해온 폴 마사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선임 고문은 “어떤 재산이 이번 제재의 영향을 받을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제재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의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과 같은 법을 이용하면 러시아 재벌들이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푸틴의 가장 큰 취약점에 효과적인 조치를 하려면 서방이 자신의 부패를 직시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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