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외 지음/ 글항아리/ 192쪽/ 1만2000원
“마지막 부탁인데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몇몇 애들이 알고 있어서 제가 없을 때도 문 열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죄송해요. 엄마 사랑해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말 죄송해요.”
2011년 12월 20일 열네 살 중학생 권승민 군의 시간은 영영 멈춰버렸다. 권군은 또래의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해자들의 컴퓨터 게임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다 아이템을 도난당하자 언어·신체적 폭력이 시작됐다. 권군은 자택 출입문 잠금장치(도어키) 비밀번호를 알아낸 가해자들이 가족을 해치진 않을까 우려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들의 10주기를 앞둔 어머니 임지영 씨는 “학교폭력도 남의 이야기라 생각해서 그런지 축소하려는 학교와 교육청, 귀찮아하는 경찰, 보도 안 하는 언론, 관심 없는 정치인”(94쪽)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여섯 개의 폭력: 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0대 시절 또래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작가와 사회복지사 등 5명의 저자는 살아남아 어른이 됐다. 고(故) 권승민 군의 이야기는 어머니 임씨가 대신했다. 생존자들과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은 유가족은 폭력의 기억을 담담하지만 또렷하게 풀어낸다. 가해자들은 다양한 구실로 이들을 괴롭혔다. 집안이 가난해서, 뚱뚱해서, 혹은 공부를 잘하거나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라서…. 어린 날 폭력 앞에서 피해자들은 “내가 자존감이 조금만 높았더라면, 우리 부모가 부부싸움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도박만 하지 않았더라면, IMF(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 전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160쪽)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은 그들은 합리화되는 폭력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피해자의 이자(二者) 구도가 아니다. 방관자가 있을 때 성립한다. 피해자는 본능처럼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도 그랬지만 손을 잡아주는 어른은 없었다”(6~7쪽)는 지적이 따갑게 와 닿는다. 그 누구도 학교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되지 않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이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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