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감독의 ‘공범자들’은 공영방송 수난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명박 정부 이후 거의 10년간 KBS, MBC에서 벌어진 파행적 사건들을 담았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이 폐지되고, 뉴스 내용은 현실과 멀어지며, 언론인이 해고되거나 아이스링크 관리 같은 업무를 하게 된 일들이다. 자주 반복된 비상식적인 일이고, 사실 우리가 ‘피곤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공범자들’은 관객의 주목을 받는다. 공영방송이 방송 관련자뿐 아니라 일반 시청자의 마음에까지 적잖은 상처를 냈기 때문일 테다.
‘공범자들’은 익히 알려진 그 ‘아픔’들을 꼼꼼히 소환하는 데 집중한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MBC ‘PD수첩’의 정부 비판 보도 및 관련 언론인에 대한 탄압에서 시작해 최근 제작 거부 사태까지 연대기순으로 공영방송의 ‘흑역사’가 기억된다. 이를테면 사실 확인은 하지 않고 관계 기관의 보도자료를 인용해 ‘세월호 승객 전원구조’ 같은 오보를 냈던 일들이다. 언론사의 일부 책임자는 사과 대신 항의하는 유족을 모욕하는 등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주위에는 KBS, MBC 뉴스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거리에서 정부 비판 시위가 벌어져도 뉴스에는 헬기를 타고 봄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뉴스가 늘어나기 시작하던 때다. 심지어 과거 언론사에서 일했던 필자가 지금도 공영방송에 몸담고 있는 옛 동료들을 만나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 대개 “나도 안 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영방송 보도에 대한 냉소주의가 안팎에 넓게 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과 보도는 애초부터 공존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다. 방송은 그저 웃고 떠드는 대중매체로 기능해야 하는 것인지 회의가 팽배할 때 ‘공범자들’이 나온 것이다.
관객도 ‘공범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는 않을 듯하다. 특히 방송사의 일부 책임자를 ‘절대악’으로 설정하고 공격만 해대는 내용은, 경우에 따라선 편협해 보이기도 한다.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처럼 인터뷰 대상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데 무조건 질문부터 해 상대를 몰아붙인 일은 선정주의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이 ‘공범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만큼 공영방송 보도가 추락했고, 시청자의 마음에 상처를 냈으며, 그 결과 공영방송이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 됐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일 테다.
마르크스 사상에 구조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에 따르면 방송 같은 대중매체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다. 학교, 교회처럼 무의식적으로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정치투쟁은 어쩌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공범자들’은 그 투쟁 방식이 민주주의의 상식을 벗어났을 때 피해는 시청자, 곧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