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메리츠금융지주가 별도 기업으로 증시에 상장된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사진 제공 · 메리츠금융지주] 사진은 서울 강남구 메리츠금융그룹 본사.
가족 승계 안 하는 실적 탄탄한 기업
메리츠금융그룹의 이번 결정은 ‘쪼개기 상장’과 ‘문어발 경영’이 일반화된 시장 흐름에 역행한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업의 쪼개기 상장은 그간 소액주주의 반발을 샀다. 기업이 주요 계열사를 분리, 상장할 경우 모회사 주식가치가 떨어져 소액주주의 손해가 불가피하다. 반면 경영진 입장에선 회사의 시가총액을 늘릴 수 있고 더 많은 투자금 확보가 가능해 문어발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를 단행하곤 했다. ‘주주이익 우선주의’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앞세우며 3사 통합을 선언한 메리츠금융그룹의 결정이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시장 반응도 뜨겁다. 공시 다음 날인 11월 22일 메리츠 3사 주가(종가 기준)는 전날 대비 약 30%씩 급등했고 일주일 넘게 해당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사진 제공 ·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 3사 통합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계열사의 호실적도 있었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콘퍼런스 콜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계열사의 이익체력이 받쳐주면서 (포괄적 주식교환을) 진행하게 됐다”며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실적이 탄탄한 만큼 메리츠금융지주 주식으로 교환받는 소액주주의 불만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한진그룹 내 비주류 사업 분야인 한진투자증권을 물려받은 조 회장은 2005년 한진그룹과 분리 이후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의 시가총액을 각각 30배, 24배 성장시켰다. 보험사와 증권사의 실적 전망이 모두 어둡던 올해에도 두 계열사는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3분기 메리츠화재는 7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 업계 3위에서 2위(순이익 기준) 자리로 올라섰다. 메리츠증권은 3분기 ‘나 홀로’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단숨에 업계 1위(순이익 기준)가 됐다.
지주회사 체계 갖춰 소액주주와 동반 성장
전문가들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이번 결정이 선진적이라고 평가한다. 구본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는 기업이 성장 과실을 소액주주와 나누지 않고 독식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었다”며 “알파벳이 자회사 구글, 유튜브, 딥마인드를 중복 상장하지 않듯 한국에도 지주회사 체계가 확립돼야 하는데 메리츠가 그 시작을 끊는 선진적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 교수는 “행여 메리츠가 겉으로 보인 것과 달리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할 목적이 있다 해도 그것이 소액주주의 손해를 발판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메리츠 3사 통합에 따른 경영 여건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메리츠금융그룹 측은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메리츠금융지주에 편입하는 또 다른 이유로 ‘비효율적인 기업 지배구조 및 의사결정 과정’을 들었다. 이에 대해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3사가 통합되면 ‘규모의 경제’에 따른 각종 비용 절감 효과가 생긴다”면서 “기업 관리비, 간접비 등이 중복 지출되지 않고 이사회도 하나로 합쳐지는 등 좀 더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또한 “쪼개기 상장을 통한 시장 지배력 강화도 어떤 면에서 경영 효율성 제고로 볼 수 있지만 메리츠는 소액주주와 함께 정공법으로 성장하는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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