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5

2015.09.14

성장하는 중국 공연 문화의 증거

베이징 국가대극원 방문기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5-09-14 11: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성장하는 중국 공연 문화의 증거

    중국 국가대극원의 미래지향적 내부 모습.

    지난 호에 언급했던 플라시도 도밍고의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중국 베이징은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기념일까지 아직 열흘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도, 톈안먼 광장으로 향하는 보도나 지하철역으로 진입하려면 일일이 검색대를 거쳐야 했고, 자금성은 아예 출입 자체가 불가했다. 결국 2박3일 동안 돌아본 유명 관광지라곤 징산공원(景山公園)과 이허위안, 투숙했던 호텔이 위치한 왕푸징(王府井) 거리 정도가 전부인, 다소 특이한 ‘북경여행’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여행의 주된 목적은 어디까지나 ‘공연’과 ‘공연장’에 있었으니까.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기 전 자투리 시간에도 필자와 일행은 다른 관광지들을 제쳐두고 ‘국가대극원(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NCPA)’을 다시 방문했다. 첫날 공연을 봤을 때는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극장 구경’을 위해서였다. 참고로 공연이 없는 낮 시간대에 국가대극원을 둘러보려면 ‘방문 티켓’을 사야 한다. 가격은 40위안(약 7500원).

    국가대극원은 건물 자체부터 대단한 볼거리다. 단일 문화공간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이 복합공연장은 중국 정부가 2008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해 추진한 공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1년 착공, 2007년 개관했다. 설계는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뢰가 담당했으며, 약 2만 개 티타늄 패널과 1200개 유리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새알 모양의 건물이 인공호수 위에 떠 있는 형상이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준다.

    본 건물로 진입하려면 일단 길고 널찍한 반지하 통로를 지나야 한다. 통로 천장은 유리로 돼 있고 그 위에 호수가 있기 때문에 낮에는 호수에 산란된 햇빛이 바닥에 그려내는 다채로운 물결무늬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것이 통로 곳곳에 서 있는 다양한 조각품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환상적 분위기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아주 특별한 공간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성장하는 중국 공연 문화의 증거

    오페라 ‘아이다’에 사용된 배 모양 세트.

    본 건물에 진입하면 먼저 상상 이상으로 광대한 내부 공간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일순 아찔해진 정신을 추스르면 정면에 오페라극장 1층 객석으로 향하는 통로가, 양쪽에 메인 로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건물 안에는 각각 오페라(2416석), 콘서트(2017석), 전통극(1040석)을 위한 공연장 3개와 갤러리, 자료관, 사무공간 등 각종 부대시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이 드넓은 공간에 여유롭게 배치돼 있어 한 바퀴 대충 둘러보는 데만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특히 건물 도처에 배치된 여러 전시공간은 지금 중국 클래식 시장이 얼마나 뜨겁고 힘차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메인 로비 왼쪽 기념품점 근처에서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전시관으로, 실제 공연에 사용했던 배 모양 세트 안에 관련 의상과 소품이 진열돼 있다. 그 밖에도 오페라 극장 5층, 진입 통로 한쪽에 마련된 전시관 등 곳곳에서 역대 프로덕션과 관련된 풍부한 전시품과 그동안 국가대극원 무대에 섰던 세계적인 연주가들에 관한 자료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국가대극원에 머무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그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이 ‘서양의 고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최근 들어 답보도 모자라 퇴보 기미까지 보이는 우리나라 공연계의 현실을 돌아봤다. 한편으론 부러웠고, 한편으론 자괴감마저 들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