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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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부르는 요리, 모여라 같이 먹자

직접 밥상 차리고 주변 사람들과 맛있는 소통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10-20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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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부르는 요리, 모여라 같이 먹자
    “저는 고기를 구우면서 행복해합니다. 감자를 볶으면 웃음이 나오고 찌개를 끓이며 아주 좋은 꿈을 꿔요.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요리가 참 좋습니다.”

    “요리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황인철 맘편한산부인과 원장이 내놓은 답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는 2012년 ‘아내가 샤워할 때 나는 요리한다’는 책을 펴냈다.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도 꾸준히 가족과 함께 나누는 밥상 레시피를 올린다. 황 원장이 ‘아내가 샤워할 때 요리’하는 이유는 씻고 나온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아내가 샤워하는 동안 시원한 맥주에 멋진 안주, 그리고 아내와의 달콤한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즐겁게 요리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행복의 구체적 모습이다.

    최근 황 원장처럼 요리에서 기쁨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이들에게 요리는 허기를 채우기 위한 노동이 아니다. 그보다는 꽤 멋진 소통 도구 쪽에 가깝다. 직접 차린 밥상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트렌드를 이끈 주역으로는 ‘킨포크 매거진’이 꼽힌다. 킨포크(kinfolk)의 사전적 의미는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 그러나 2011년 미국 포틀랜드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젊은 부부가 이 단어의 뜻을 바꿔놓았다. 작가, 화가, 사진가 등 친구들과 더불어 킨포크라는 제목을 붙인 잡지를 펴내기 시작하면서다. 이 잡지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텃밭에서 직접 가꾼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소박하되 멋스러운 상을 차려 이웃과 나눠 먹는다. 네이선 윌리엄스 ‘킨포크 매거진’ 편집장은 창간호에 이렇게 썼다.

    “즐거움이란 소박하고 복잡하지 않으며 예술적이고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친구와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고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에 활력이 샘솟는지, 또 서로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하게 이어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들 초대 ‘킨포크’ 실천

    우리를 부르는 요리, 모여라 같이 먹자

    신동엽과 성시경이 진행하는 케이블채널 올리브TV의 요리 프로그램 ‘오늘 뭐 먹지?’의 한 장면.

    자연과 교감하며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잡지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됐고, 이들이 즐기는 음식 레시피를 담은 책 ‘킨포크 테이블’ 역시 지난해 말 출간 후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이가 킨포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들이 실천하는 여유롭고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떠올린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바질을 키우거나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며, 나도 친구들을 초대해 ‘집밥 모임’을 해볼까 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런 흐름을 타고 요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요리 전문 케이블채널 올리브TV의 석정호 PD는 “올리브TV가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요리는 전문가가 하는 멋지고 근사한 것으로 여겨졌다. PD들도 해외 유명 셰프를 출연시키거나 고급 요리 트렌드를 소개해 시청자에게 판타지를 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바뀌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해보려는 이들에게 쉽지만 효과적인 조리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석 PD가 연출 중인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도 바로 이런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그는 20~40대를 타깃 시청자로 정하고, 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따라 할 수 있는 집밥 레시피 소개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물이 칼질에 서툴고 양념 종류도 잘 모르는 두 남자 신동엽, 성시경을 공동 MC로 내세운 ‘오늘 뭐 먹지?’다. 두 사람은 이 프로그램에서 매회 투박하지만 꽤 그럴듯한 요리를 차려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석 PD는 “이 프로그램 론칭을 앞두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20~40대가 좋아하는 메뉴와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송시간을 파악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레시피가 바로 집밥에 관심 있는 20~40대가 원하는 그 메뉴들”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오늘 뭐 먹지?’에서는 달걀말이, 된장찌개, 김밥, 가지볶음 등을 쉬우면서도 조금은 색다르게 요리하는 방법을 공개했다.

    역시 올리브TV에서 방송 중인 ‘올리브쇼’도 콘셉트가 비슷하다. 전문 셰프가 출연하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집에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맛 업그레이드’ 비법을 알려주는 것. 재료 역시 동네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쓴다. 데우기만 하면 요리가 끝나는 반조리 식품이 주재료로 등장할 때도 있다. 서울에서 꽤 유명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가 ‘마트표 폭립’에 매운 고추와 생크림을 넣고 볶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 정도만 더해도 꽤 괜찮은 요리가 된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빤한 듯 느껴지는 메뉴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점도 최근 2040을 사로잡는 요리의 매력으로 꼽힌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세상에 똑같은 요리는 없다. 정해진 레시피가 있긴 하지만, 요리는 각 단계마다 만드는 사람의 창조적인 해석과 표현이 더해질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누구나 부엌에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매력이 알려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리는 재미있는 놀이 방식이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이 2~3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 분석기업 ‘다음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요리에 대해 누리꾼이 가장 많이 사용한 형용사는 ‘건강한’이었다. 그러나 2011년이 되자 ‘건강한’은 8위로 뚝 떨어지고 그 대신 ‘즐거운’이 급부상한다. 2009년 21위에서 2년 만에 5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처럼 요리를 즐길 거리로 삼는 이가 늘면서 서툰 솜씨나 투박한 플레이팅도 흠보다는 재미로 여기는 분위기가 됐다. 권미경 다음소프트 이사는 “실패한 음식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개하는 이가 많아진 것이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며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부르는 요리, 모여라 같이 먹자

    킨포크 스타일의 상차림(왼쪽)과 서울 중구 샘표 본사에서 열린 가정식 실습 프로그램에서 집밥 요리법을 배우는 사람들.

    요리 즐기는 사람, 문화 소비 많아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도 “과거엔 요리라는 단어가 담백한 일상의 느낌을 풍겼지만 차츰 거기에 취미와 교류의 느낌이 더해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킨포크 열풍이 불면서 이젠 행복의 이미지까지 덧붙여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킨포크의 본질은 일상에서 행복해지자는 것”이라며 “이제 요리를 즐기는 사람은 좋은 차를 타거나 비싼 옷을 입는 것보다 내 몸을 위하고, 가족을 아끼며, 친구와 더불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훨씬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소유에서 행복으로 변하면서 요리가 재조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스트로섹슈얼(gastrosexual)’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개스트로섹슈얼은 미식가를 뜻하는 ‘개스트로놈(gastronome)’과 성적 매력을 암시하는 ‘섹슈얼(sexual)’의 합성어. 요리하는 남자 혹은 음식에 대해 섬세한 취향을 가진 남자가 섹시하다는 뜻이다. 패션잡지 기자 출신인 김경 작가의 에세이집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에는 “M은 전형적인 개스트로섹슈얼이었다. 음식과 미술, 음악, 그리고 온갖 종류의 쾌락에 조예가 깊은 그는 자신이 준비하는 음식에 관능의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대단한 미식가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해 “각종 분석을 보면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문화예술 관련 소비도 많다”며 “요리를 즐기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래서 섹시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식재료에 대한 까다로운 취향과 미식 취미도 확산되고 있다. 유럽의 델리, 미국의 그로서런트(grocerant·grocery와 restaurant의 합성어)처럼 조리된 음식과 좋은 식재료를 함께 파는 상점도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를 부르는 요리, 모여라 같이 먹자

    소박한 손님맞이 상차림(위)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재 료품 매장.

    신세계백화점은 8월 말 본점 지하 식당가를 전면 리뉴얼해 고급 식당과 식재료 매장이 어우러지는 프리미엄 마켓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과일을 수확한 즉시 잼을 만드는 영국 브랜드 ‘윌킨·선즈’, 200년 전통의 프랑스 올리브유 브랜드 ‘아 롤리비에르’, 송로버섯 전문 브랜드 ‘메종 드 라 트뤼프’ 등이 자리를 잡았다. 전통방식으로 빚은 팔도 명주를 선보이는 ‘우리술방’, 역시 전국 각지 명인들의 고급 전통장을 판매하는 ‘SSG 장방’ 등 한국 전통 식료품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신세계에 따르면 식품관 리뉴얼은 성공적이다. 재개장한 뒤 한 달간 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고, 명품 판매도 9.2%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식품생활담당 임훈 상무는 “백화점에서 VIP급 고객을 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르는 명품이 아닌 식품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고급 식재료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많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석 PD의 해석은 “품격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이 의식주 순서로 변해가는 것 같다”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우선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하고, 그다음 단계로 미식과 요리 등에 시선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나 하우징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렌드 리더라면 패션 분야에 해박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요새는 관심이 음식 쪽으로 옮겨가는 양상이 뚜렷하다. 프라다 등 해외 명품 기업과 국내 대기업들이 외식업 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그런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최근 요리 열풍에서 불황의 그늘을 봤다. 그는 “산업화시대 우리나라에는 백반집이 성행했다. 밥과 반찬을 차려주는 이곳에서 손님들은 주인을 ‘이모’ ‘할머니’ 심지어 ‘어머니’라고 부르며 어우러졌다. 지금으로 보면 딱 집밥 콘셉트”라며 “지금 사람들이 직접 밥을 차리고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나누려는 것은 공동체 해체와 팍팍한 삶으로 인한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팍팍한 삶 해소 욕망의 발현

    최수웅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도 논문 ‘요리만화의 스토리텔링 양상 연구’에서 “요리는 음식과 그것을 만들고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에 포함된 인간의 감정, 관계, 사연 등을 어우른다”며 “요리는 생존을 위한 행위이며 욕망의 표출이자 문화 향유 활동”이라고 했다. 그가 이 논문에서 언급한 일본 만화 ‘심야식당’은 대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이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화자 역을 담당하는 식당주인은 내레이션을 통해 “굳이 우리 가게에 와서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을 주문하는 손님이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이거라면 굳이 가게에서 주문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고 손님에게 묻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손님 대답은 “무슨 소리예요. 혼자 만들어 혼자 먹으면 맛이 하나도 없잖아요”다. 깊은 밤, 비밀에 싸인 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심야식당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소통과 교류의 장소인 셈이다.

    최은숙 시인은 에세이집 ‘위로의 음식’에서 “삼십 년 후의 나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따순 내가 나는 부엌을 가진 착한 할머니다. 채소밭은 같이 밥을 먹기 위한 것이다. 그때는 살림이 몸에 배어 있을 것이다. 누가 불현듯 찾아오더라도 반가이 맞아들여 고추를 따고 상추를 씻고 가지를 볶아서 조촐하고 따뜻한 한 끼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불러 앉히던 고마운 밥상들이 그러했다. 그 밥을 먹으면서 나는 팍팍한 몇 개의 고개를 넘었다. 배운 대로 살고 싶다”고 썼다.

    그렇게 요리는 누군가에겐 삶에 여유를 더해주는 소품이고,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도록 도와주는 재료이며,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어려운 이를 위로하는 따뜻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하고, 요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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