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

성폭행 피해자 눈물 나는 치유

이준익 감독의 ‘소원’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0-07 11: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성폭행 피해자 눈물 나는 치유
    영화 ‘공정사회’에서는 어린 소녀가 하굣길에 납치돼 성폭행범으로부터 유린당한다. 울분에 찬 피해자 어머니는 경찰에게 사건 조사와 범인 추적을 호소하지만 공권력은 수사 노력도, 처벌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는 직접 가해자 색출과 응징에 나선다. ‘돈 크라이 마미’도 비슷하다. 한 여고생이 일군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미성년인 가해 학생들에게 법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결국 법과 공권력이 하지 못한 처벌을 피해자 어머니가 직접 하기로 한다. 가해 남학생들을 차례로 찾아가 죽인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는 흉악 범죄자들을 어떻게 처절하게 응징하고 처단할 것인지에 골몰해왔다. ‘아저씨’에서 원빈은 옆집 소녀를 납치한 장기매매조직의 범인들에게 피로써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이병헌은 약혼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육신을 하나씩 도려내며 복수한다. ‘무법자’ ‘파괴된 사나이’ ‘용서는 없다’ 등도 비슷한 소재다.

    현실의 범죄가 흉포화할수록 스크린도 악행의 도를 높여갔고, 언론매체는 영화와 경쟁하듯 흉악범죄사건의 ‘사실적 묘사’와 ‘극적 구성’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공권력의 무능과 사회 치안망의 부재는 잊힌 채 우리 사회는 흉악 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응징과 처벌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잊힌 것이 또 하나 있다. 피해자들의 ‘치유’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을 다시 촬영 현장으로 불러들인 건 이전에 볼 수 없던 ‘치유의 드라마’다. 영화 ‘소원’은 한마디로 피해자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흉악 범죄를 소재로 한 이전 영화들처럼 끔찍한 사건을 전시하지 않고, 분노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피해자들이 다시 삶을 껴안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여덟 살배기 소녀 소원(이레 분), 아빠(설경구 분), 엄마(엄지원 분)가 거대한 슬픔과 상처를 감당해가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고백하듯 속삭이듯 들려준다. 주위 사람들은 이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같이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돈을 내주고 밥을 해준다. 작품 올올이 슬픔이 배어 있지만, 눈물과 함께 툭툭 웃음이 삐져나오고, 결국 울음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결말로 간다. 영화를 만들려고 무수히 듣고 만나고 생각했던 이 감독의 진심이 결결이 묻어나온다.



    영화는 한 서민 가족의 평온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남다를 것 없는 이 가족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것은 예쁘고 귀엽기만 한 여덟 살배기 딸 소원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소원이는 등굣길에 술 취한 낯선 아저씨를 만난다. 우산을 빌려달라며 접근한 아저씨를 보고 주저하던 순간이 소원이네 가족에겐 평화로운 일상의 마지막이었다. 소원이는 그에게 끌려가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다. 간신히 112에 연락해 병원으로 이송된 소원. 근무 중 연락을 받고 뛰어온 아빠. 딸의 처참한 상황에 실신한 엄마. 영화는 벼랑 끝으로 내던져진 이 가족이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가는 느리고 엄혹하기만 한 시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진심이 미학적 형식을 대신하는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적 쾌감을 착한 진심에 양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는 상처받은 삶을 대중매체와 장르로 전해야만 하는 감독의 자의식 및 윤리적 고민이 담겼다. 이 감독은 응징, 복수에 골몰해온 한국 영화에 대한 반성과 질문을 던지지만 그와 동시에 ‘착한 진심’과 ‘영화적 쾌감’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도 보여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