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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반짝이는 ‘서드 에이지’ 내 손으로

은퇴 후 8만 시간 의미 있게 사용 ‘U3A’ 수업 참여자 계속 증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반짝이는 ‘서드 에이지’ 내 손으로

반짝이는 ‘서드 에이지’ 내 손으로

서울 통인동 통인시장에서 열린 ‘지혜로운 학교’의 ‘마을에 있는 것, 잇는 것’ 수업 모습.

8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뜬금없는 질문이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현대인이 은퇴 후 약 8만 시간의 여유를 더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이들 사이에서 최근 ‘서드 에이지(third age)’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다.

윌리엄 새들러 미국 홀리네임스대 교수의 저서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전반기는 ‘교육받으며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1기,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 의무에 집중하는’ 2기로 구분된다. 이 이후의 시간이 바로 ‘2차 성장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3기, 이른바 ‘서드 에이지’다. 주로 40~70대, 혹은 50~80대 30년 정도를 의미하는데, 연령에 관계없이 자아실현에 관심을 쏟는 성인기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 이 시기가 끝나면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인생 4기에 접어들게 된다.

과거에는 뭉뚱그려 노년기로 불렀을 인생 후반을 이처럼 구별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관련 연구가 시작됐고, ‘서드 에이지’를 위한 교육·복지 프로그램도 생겼다. 현재 영국에만 892개가 설립된 교육기관 ‘U3A’(University of the 3rd Age)도 그중 하나다. 김정은(51) ‘U3A 서울-지혜로운 학교’(‘지혜로운 학교’) 운영위원은 U3A의 특징으로 “서드 에이지를 ‘위한(for)’ 곳이 아니라 서드 에이지‘의(of)’ 학교라는 점”을 들었다. “이 이름에는 서드 에이지 스스로 학교를 만들고 강의를 개설하며 수업도 듣는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다.

지혜를 서로 나누기 위한 공간

6월 19일 서울 통인시장 앞 ‘지혜로운 학교’ 마을탐방 수업 현장에서 만난 이혜선(46) 씨는 그 사례가 될 만했다. 서강대 교육대학원에서 평생교육을 전공하는 이씨는 9월부터 ‘지혜로운 학교’에서 독서 수업 ‘책으로 마음 읽기’ 강의를 시작한다고 했다. 학생이면서 곧 교사가 되는 셈이다. 그는 “오랫동안 책을 읽고 독서토론도 해왔다. 내가 익힌 것이 다른 회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U3A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고,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은 배운다”고 소개했다. 세계 모든 U3A가 공유하는 기본 철학인 ‘누군가는 당신이 아는 것을 필요로 하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누군가는 안다(Someone needs what you know. Someone knows what you need)’를 설명한 말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아름다운 인생학교’를 운영하는 백만기(62) 교장도 “노인이 한 분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이 얻는 지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며 “U3A는 이 지혜를 서로 나누기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금융기관에서 오래 일한 분이 자산운용 지식을 가르치고,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분이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줍니다.”

백 교장의 말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에서 ‘부자학’을 강의하는 강정영 전 KB국민은행 부행장이나 ‘통합의학’을 강의하는 신현종 전 보령신약 대표(의학박사) 역시 이런 취지에 공감해 동참을 결심했다고 한다.

전문가만 U3A 강단에 서는 건 아니다. 대기업 임원을 역임하고 은퇴한 김명중(73) ‘지혜로운 학교’ 교장은 ‘라틴어 함께 배웁시다’라는 수업을 운영 중이다. ‘함께 배우자’는 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의 진심이다. “성당 성가대에서 라틴어를 접했는데, 혼자 끙끙대며 공부해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강의를 개설했다”는 것이다. 김 교장은 강의 안내서에 ‘강사는 가르치려고 공부하고, 학생은 더 배우려고 공부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해요’라고 적었다.

U3A에는 이런 수업이 많다. 2012년 ‘지혜로운 학교’에서 연 ‘베란다에서 농사하기’ 수업의 경우, 강의 개설자보다 ‘농사 내공’이 높은 수강생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농사에 대한 흥미와 관련 지식이 조금 있는 수준이던 강사는 즉시 수업 형태를 바꿔 일방적인 강의를 없애고 학생 모두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 덕분에 수업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수강생의 만족도도 높았다고 한다. 현재 ‘아름다운 인생학교’에서 진행 중인 바이올린 수업에는 아예 강사가 없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은 이들이 자율적으로 강의를 열고 서로 도와가며 실력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지식나눔 공동체라는 점과 더불어 U3A의 또 다른 특징은 수강료를 내지 않는다는 점. 모든 수업이 ‘재능기부’ 형태로 이뤄져 강사가 강의료를 받지 않는다. 영국 U3A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2011년 국내 최초의 U3A ‘지혜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이경희(65) 중앙대 명예교수(‘지혜로운 학교’ 운영위원장)는 “영국 U3A의 경우 강의를 들으려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소모품 구입과 장소 사용료 등으로 쓰는 소정의 회비를 낸 뒤 모든 수업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는 즐거움, 자아실현 기쁨

반짝이는 ‘서드 에이지’ 내 손으로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바이올린 연주 시범을 보이고 있다. 뒤에 보이는 액자는 백씨가 직접 찍어 사진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학교’와 ‘아름다운 인생학교’ 회비는 월 1만 원 수준. 가입 기간에 따라 다소 달라지는 회비를 내면 누구나 마음껏 수업을 듣고, 직접 강의를 열 수 있다. ‘지혜로운 학교’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뜨개질 배우고 싶어요. 강의해주실 분 계신가요?”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원하는 과목 개설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교수가 방문한 영국 런던U3A에는 철학, 언어, 심리학, 예술부터 체육, 게임 등까지 강의 160여 개가 개설돼 있었다고 한다. 영국 U3A 홈페이지는 전국적으로 31만7000여 명이 U3A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고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U3A가 점점 활성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경기 수원시에 문을 연 U3A ‘누구나학교’는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지식, 재능, 소소한 일상, 경험, 재미 등 모든 주제가 강의가 된다”며 지금까지 220여 개 수업을 진행했다. ‘지혜로운 학교’는 최근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며 ‘제2의 출발’을 선언했고, 5월 개교한 ‘아름다운 인생학교’도 강사와 수강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은 “요즘 전국 곳곳에서 학교 설립에 대한 문의전화가 온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갖는다면 U3A는 훨씬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회원들의 재능기부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소득공제를 해주거나 ‘마일리지’ 등으로 지급해 다른 재화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새들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는 흔히 50대에 들어서면 속력을 줄이고 서서히 고도를 낮춰 은퇴라는 육지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45세에서 80세 사이 남녀 수십 명을 대상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또 다른 선택, 즉 이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U3A의 성공은 요즘 40~50대가 결코 비행을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 ‘지혜로운 학교’ 운영위원은 “U3A에서는 자격증도, 학위도 주지 않지만 이곳을 찾는 이는 누구나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오는 순수한 기쁨을 얻게 된다”며 “더 많은 이가 이곳에서 자아실현의 즐거움을 얻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혜로운 학교 cafe.naver.com/openuniversity/

아름다운 인생학교 cafe.naver.com/u3a/

누구나 학교 www.suwonedu.org/suwon/nugunahome



주간동아 2013.06.24 893호 (p38~3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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