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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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말리 ‘개미지옥’에 빠지나

‘아프리카 경찰’ 자처 연이어 군사개입… ‘제2 아프간’ 우려 목소리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3-01-28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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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가 지옥문을 열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소말리아보다 더 위험한 덫에 빠질 것이다.”

    말리 반군세력 가운데 하나인 ‘서아프리카 지하드와 통일을 위한 운동(MUJAO)’의 지도자 오마르 울드 하마하가 내뱉은 말이다.

    프랑스 정부는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반군을 소탕하려고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말리 군사개입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과감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17년 만에 사회당 정권을 탄생시킨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승리한 후 다른 국가의 내정 불간섭과 군사개입 반대를 외교 정책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정책과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그는 대선 당시 ‘아프간에서 즉시 철군’이란 공약까지 내걸었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12월 아프간에서 전투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킨 이유도 이 같은 공약 때문이었다. 그런데 7개월 만에 태도를 완전히 바꿔 말리에 대한 독자적인 군사개입에 나선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이유는 무엇보다 프랑스 국익이 아프리카와 밀접하게 관련됐기 때문이다. 흔히 프랑스와 아프리카 관계를 ‘프랑사프리크(Francafrique)’라고 부른다. 프랑스 역대 정부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독재정권을 비호해주는 등 은밀하게 결탁한 관계를 바탕으로 석유 같은 천연자원을 확보하고 자국 기업 진출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또한 아프리카 각국 정부 관료, 정치인, 군부 지도자 등 엘리트 집단과 특별한 네트워크도 형성해왔다.

    22개국 식민지배의 추억



    이런 결탁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랑스가 과거 아프리카에 적극 진출하면서 22개국을 식민지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90년대 중반까지 식민 종주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군사개입 방식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패권을 유지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맹주’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아프리카에 군사기지와 군대를 둔 국가는 프랑스가 유일하다. 프랑스는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가봉, 지부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등에 병력 9000명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 패권은 그동안 상당히 약화됐다.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과 중국의 적극적인 진출로 프랑스는 과거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프랑스로선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아프리카 경찰’이다.

    코트디부아르 내전 개입이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 정부는 2011년 4월 대선에서 패배했는데도 퇴진을 거부한 채 내전을 일으킨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당시 프랑스군은 병력 1600명을 옛 식민지였던 코트디부아르에 파병했다.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른 것이다. 프랑스의 군사개입으로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종식됐고, 대선에서 승리한 알라산 우아타라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그바그보는 전범으로 기소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가 지난해 리비아 사태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 역시 아프리카 경찰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카다피를 추종하는 리비아 정부군에 대해 가장 먼저 공습을 단행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개입을 주도했다. 리비아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일등 공신은 프랑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프랑스 정부가 말리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프리카 경찰임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의 군사개입은 코트디부아르와 리비아처럼 절차적 정당성까지 갖췄다. 말리 과도정부 수반인 디온쿤다 트라오레 대통령은 1월 11일 올랑드 대통령에게 군사개입을 요청했으며, 유엔 안보리는 프랑스의 군사개입은 결의 2085호에 따른 것이라며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지난해 12월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 2085호는 유엔 회원국이 질서회복을 위해 말리 전역에 공동 지원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이슬람 반군 완전 소탕 작전

    프랑스군이 파병되기 직전 이슬람 반군은 말리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바마코로 진격할 수 있는 전략 요충지들을 점령한 상태였다. 그동안 프랑스는 이슬람 반군이 말리를 점령할 경우 예멘이나 소말리아처럼 테러리스트 근거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와 유럽 문 앞에 테러 국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상당한 위협”이라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군사개입의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다.

    프랑스군은 현재 미라주와 라팔 전투기를 비롯해 헬기 등 각종 항공기를 동원해 반군 거점을 대대적으로 공습하고 있다. 또한 해병대를 비롯한 지상군 2000명을 반군 소탕작전에 투입했으며, 앞으로 총 2500명을 파병할 계획이다. 프랑스군의 작전명은 ‘서벌’로,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살쾡이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군은 이슬람 반군을 완전 소탕할 때까지 작전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말리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서남쪽에 자리한 내륙 국가로 전체 넓이는 124만km2(세계에서 24번째로 큰 나라), 인구는 1500만 명으로, 사하라 횡단 무역이 활발하던 13~15세기 서부 아프리카의 문화적 교차로 기능을 담당했다. 만딩고족 등 20여 개 부족이 대대로 이 지역을 지나는 니제르 강 유역에 살고 있다. 19세기 초부터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 각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말리도 1899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후 1960년 6월 20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며, 공용어는 프랑스어이고, 전체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1인당 국민소득은 1127달러로 세계 최빈국에 속하지만 아프리카의 모범적인 민주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2, 1997, 2002년 선거를 통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뤘고, 2001년 주요 8개국(G8) 회담에 개발도상국 자격으로 초청될 만큼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통치와 국가운영을 이어왔다.

    말리가 내전에 휩싸이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난해 3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 때문이다. 당시 말리 군부는 정부의 처우와 군수품 보급 문제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20년간 계속돼온 민주체제가 무너지면서 무정부 상태가 계속됐고, 지난해 말 겨우 과도정부 체제가 들어섰다. 이에 앞서 북부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유목부족인 투아레그족이 분리독립운동을 일으키면서 말리를 뒤흔들었다. 투아레그족은 리비아 내전에 참가하면서 상당한 전투 경험을 쌓았고 무기까지 확보했다. 그런 투아레그족이 지난해 1월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MNLA)’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무장 봉기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의 봉기를 진압할 여력이 없었으며,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북부지역을 포함해 전 국토의 절반을 점령했다.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 전사들은 9000명으로 추정되며, 알카에다 지부인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와도 손을 잡았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활동해온 알카에다 본부는 현재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거의 궤멸됐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의 알카에다 지부들은 왕성하게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중에서도 예멘에서 결성한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와 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가 가장 강력한 테러 단체다.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해가 지는 땅’을 뜻하는데, 나일 강 서쪽 지역을 통칭한다.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는 아프리카 북서부와 사헬이라고 부르는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이 조직은 2007년 12월 모리타니에서 프랑스 관광객 4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종합 자동차 경주대회인 다카르 랠리가 전격 취소되기도 했다. 이 조직의 전신은 1998년 결성된 알제리 반군단체인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GSPC)’이다.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은 2006년 10월 알카에다와 결합하면서 지부가 됐다.

    프랑스 경기 부양 ‘기회의 땅’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는 말리 반군 가운데 가장 강력한 무장력을 갖춘 ‘안사르 딘’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 안사르 딘은 아랍어로 ‘믿음의 방어자들’을 뜻하며, 말리에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다. 실제로 안사르 딘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고 있다. 히잡 같은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을 체포하고, 결혼하지 않은 동거커플은 돌로 쳐 죽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태형을 가하며, 절도범은 사지를 절단한다. 안사르 딘은 팀북투라는 고대 도시를 장악한 뒤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이슬람 성인들의 영묘를 파괴하기도 했다. 팀북투는 14~15세기 아프리카에 전파된 이슬람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안사르 딘은 신이 아닌 인간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조직원은 1만여 명에 달한다. 또 다른 이슬람 반군은 ‘서아프리카 지하드와 통일을 위한 운동’이다.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의 분파인 이 단체도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퍼뜨리려고 외교관 살해 등을 자행했다. 현재 말리 북부는 나이지리아 테러단체 보코하람 같은 아프리카의 각종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훈련 기지를 세우는 등 테러리스트 온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들은 프랑스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으려고 말리에 군사개입한 것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군사개입에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다. 말리에는 우라늄을 비롯해 석유, 천연가스, 인산염, 구리, 보크사이트, 다이아몬드 등 각종 천연자원이 미개발 상태로 묻혀 있다. 말리는 ‘금광벨트’라고 부르는 세네갈과 기니, 가나에서부터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카메룬 중간에 위치한다. 말리 내전이 발발하기 전 프랑스 기업들은 앞다퉈 자원 개발 투자를 준비했다. 현재 말리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은 6000명.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프랑스의 말리 내전 군사개입은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신식민주의’ 정책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말리의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프랑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 중이다. 2001~2010년 10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상위 10개국을 집계한 결과 아프리카에서 6개국이 나왔다.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침체에도 2013년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서아프리카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발(發) 재정위기에도 4~5%대의 착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아프리카에는 15개국이 있는데, 모두 물적·인적 자원의 보고다. 일찍이 이러한 자원을 노린 외세가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로 속속 진출했다. 수백 년 전부터 노예와 황금, 상아가 거래됐다.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배를 통해 본국보다 훨씬 더 넓은 땅덩어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전체 아프리카 인구의 40%가 서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인구는 구매력이자 노동력이다. 서아프리카는 미래 시장으로서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장관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성장률이 2012년 5.5%로 지역별 성장률에서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라며 “아프리카 성장이 프랑스 경기 부양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랑드 승부수 성공할 수 있나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1994년 역내 통화안정을 위해 통화동맹을 결정한 바 있다. 회원국은 베냉,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말리, 니제르, 세네갈, 토고, 기니비사우 등이다. 회원국은 모두 서아프리카 CFA프랑을 사용한다. CFA프랑은 1945년 서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에 도입된 통화다. 이들 8개국을 포함해 15개국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를 구성하고 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가 말리 내전에 병력 3300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도 프랑스의 입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의 승부수가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슬람 반군 세력이 예상보다 강하기 때문에 프랑스군의 희생이 클 수 있다.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자행하는 프랑스에 대한 보복 공격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말리와 인접한 알제리에서 벌어진 이슬람 테러단체의 외국인 인질 사태도 프랑스에 대한 보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무장반군인 복면여단은 1월 16~19일 동부 리비아 국경 인근에 있는 인아메나스 가스 생산 시설을 점거해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인 등 외국인 수십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복면여단은 “프랑스 전투기가 말리를 폭격하도록 알제리가 영공을 열어준 것에 대한 보복”이라면서 “알제리가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은 프랑스 지배에 맞선 알제리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알제리는 말리처럼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다. 알제리 정부군은 특수부대를 투입해 두 차례 구출 작전을 벌인 끝에 인질범 29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했지만, 외국인 인질 37명과 알제리 인질 1명도 숨졌다.

    복면여단의 우두머리는 모크타르 벨모크타르라는 인물로, 1980년대 아프간에서 옛 소련군에 대응해 게릴라전을 벌이다 한쪽 눈을 잃어 애꾸눈이라고 불린다. 벨모크타르는 지난 10여 년간 알제리와 말리 북부, 사하라 지역에서 외국인 납치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알제리 출생인 벨모크타르는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의 고위급 지도자였으며, 지난해 말부터 복면여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복면여단은 근거지였던 말리 북부에서 알제리로 잠입해 인질극을 저질렀다.

    알제리 인질 사태를 볼 때 말리가 ‘제2 아프간’이 될 수도 있다. 말리 사태가 알제리 인질 사태로 비화한 것처럼, 아프리카 다른 국가나 프랑스 등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전황으로 볼 때 프랑스군이 말리에서 장기전을 벌일 수도 있다. 프랑스가 말리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못할 경우 자칫하면 미국이 아프간에서 늪에 빠진 것처럼 사막폭풍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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