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1

2011.08.22

‘백만 송이 장미’ 가요 국악으로 연주 진한 감동

카자흐스탄의 한류 열풍

  • 김은열 독도레이서 www.facebook.com/dokdoracer

    입력2011-08-22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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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 송이 장미’ 가요 국악으로 연주 진한 감동

    아스타나 한국문화원에서 현지인에게 국악을 가르쳐주고 있는 중앙대 국악과 소속 해외 문화예술 봉사단원들과 함께.

    오랜만에 시야에 들어온 반가운 지평선.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하강하는 순간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다. 아스타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항은 한 나라 수도의 관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유럽에 들어선 순간부터 조지아를 떠나기까지 가는 곳마다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던 번잡함을 이제야 조금은 떨쳐낸 듯했다. 실크로드와 유목민의 본고장다운 풍경. ‘카자흐’라는 민족 이름부터 ‘스텝(steppe)을 방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하니, 역설적이게도 이런 모습이 이 나라의 수도답다고 해야 할까.

    지난해 개관 한국문화원 현지인 북적

    아스타나에 도착한 것은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었다. 현지 한국문화원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차량이 공항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껏 맛보지 못한 융숭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우리. 높디높은 언어 장벽 탓에 첫날부터 그야말로 ‘바보’가 될 뻔했지만 문화원 측의 배려로 무사히 숙소에 안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주일간 머물 숙소는 현지 아파트를 임대한,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창문이 없어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더러운 호스텔에서 침대 한 칸 간신히 차지하고 지내던 우리에겐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었다. “거실에 샹들리에가 두 개라니, 이거 뭐 황송해서 잠이 오려나.” 다들 얼떨떨한 표정이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튿날 오전 한국문화원을 방문했다. 지난해 개관한 아스타나 한국문화원은 문화외교의 최전선 기지인 만큼 우리 문화의 위상을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한국문화원을 방문했지만 왠지 모르게 특별해 보이는 이곳의 비밀을 문화원 직원들과 대화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곳곳을 휘감는 한류 바람이 카자흐스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이곳에서도 수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K-pop·한국대중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3개 정규방송 채널에서 동시에 한국 드라마 네 편을 방송 중이고, ‘카자흐스탄-한국의 해’를 맞아 지난 봄 아스타나 콘서트홀에서 열린 ‘카자흐스탄-한국 주간’ 행사에는 수용 가능 인원의 3배가 몰려 의자와 문이 부서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 때문에 카자흐인이 한국과 만나는 소통창구인 한국문화원도 내부 디자인부터 현지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이곳에서 택한 전략은 ‘고급화’. 입구에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을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멋을 드러내는 고급스러운 전통악기와 소품, 시설도 마련해 방문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첨단을 달리는 시설에 콘텐츠는 전통 문화와 한류.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세심한 구성 덕에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다. 아스타나에 있는 다른 나라 문화원에서도 한국문화원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발걸음이 잦단다.



    아스타나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 우리는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연습을 하고 발표를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등 독도 콘서트를 준비했다. 이렇듯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을 빛나게 해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스타나에서 만난 해외 문화예술 봉사단원들이다. 중앙대 국악과 소속으로 각각 피리, 대금, 거문고, 가야금, 해금을 전공하는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아스타나에 두 달 남짓 머물면서 한국문화원을 찾는 현지인에게 전통악기와 민요를 가르치고 있었다. 추석 즈음까지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루에 수업이 세 번이나 있다”거나 “학부형이 너무 까다롭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지만, 소중한 시간을 쪼개가며 전공 지식으로 한국을 알리는 이들 봉사단원이야말로 국위선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이 분명하다.

    오래간만에 만난 또래, 그것도 외국에서 나고 자란 한인 2·3세가 아니라 한국에 적을 둔 대학생이니 반가움이야 말할 것도 없다. 초면의 어색함 따윈 만나자마자 날려버린 채 함께 아스타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합동 거리공연을 펼쳤다. 서로의 숙소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밤늦게까지 어울려 놀기도 했다. 한식을 향한 그리움에 허덕이던 우리가 그들에게도 필경 소중한 양식일 라면과 된장을 선물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감동 백배,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이 부쩍 가깝게 느껴졌다.

    토요일에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글학교 수료식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현지인 앞에서 봉사단과 우리가 차례로 공연을 선보인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글학교 수료생들은 앞으로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이어갈 소중한 연결고리다. 봉사단원들은 한국의 ‘아리랑’격인 카자흐스탄 민요 ‘두다라이’와 우리에게도 익숙한 러시아 가요 ‘백만 송이 장미’를 국악으로 연주했다. 우리 역시 전통 문화 공연을 벌이는 한편, 사이사이에 한국과 독도에 대해 발표하면서 현지인과 가까워지고픈 마음을 전했다.

    ‘백만 송이 장미’ 가요 국악으로 연주 진한 감동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상징하는행정센터 건물 앞에 선 독도레이서.

    전통 문화 공연 중간에 독도에 대해 발표

    한글학교 수료식이 끝나고 며칠 후, 여행 막바지에 다다른 우리는 고마운 이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스타나를 떠났다. 우리가 향한 곳은 카자흐스탄 최대의 경제도시 알마티. 아스타나가 수도로 지정된 1997년까지 공화국 수도였던 이곳은 과거 실크로드 톈산북로의 거점 도시였으며,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카자흐스탄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금융허브 도시로 육성하려는 알마티는 분명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그러나 독도레이서에게 알마티는 거창한 수식어 말고 다른 의미가 더 컸다. “오늘 달걀찜에 넣은 특제소스의 정체는 ‘알마티’에 가면 알려주지.” “첫사랑? ‘알마티’에 가면 얘기해준다니까.” 우리끼리는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자주 “알마티에 가면”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나 방문할 계획이던 알마티는 우리에게 언제나 ‘아직은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버스로 열여덟 시간, 스텝 지역의 새까만 밤하늘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은하수를 건너 우리는 바로 그 알마티에 오고야 말았다. 밤이 깊어가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니 이제 정말 한국에 돌아갈 날이 머지 않은 것만 같았다.

    당초 알마티 다음으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비자 발급을 대행하기로 한 여행사의 방만한 업무 처리로 독도 콘서트 계획까지 잡혀 있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활동은 아쉽게도 무산됐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문턱에서 겪었던 좌절이 반복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열흘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남았다. 다시 행선지를 급선회한 독도레이서. 전열을 가다듬고 국경을 넘어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우루무치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는 마지막 독도 콘서트가 열리는 상하이. 중앙아시아에서의 아쉬움은 이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며 가슴 벅찬 뿌듯함으로 승화할 것이다.

    * 독도레이서 팀은 6개월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섬 ‘독도’를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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