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2017.04.26

정치

5· 9 대선 마지막 변수 반기문·황교안 돌아, 안철수냐 홍준표냐

보수 표심 향배 따라 문재인 후보 운명 갈릴 듯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4-21 16: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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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대통령선거 유권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연령대는 40대였다. 전체 유권자의 21.8%로 50대(19.2%), 60대 이상(20.8%)보다 많았다. 투표율은 50대가 82%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60대 이상(80.9%), 40대(75.6%)가 이었다.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키 플레이어’가 되려면 유권자 수가 많고,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 5월9일 19대 대선에서는 40대보다는 60대 이상이 ‘키 플레이어’가 될 공산이 크다.

    잠정 집계된 19대 대선 선거인명부에 따르면 60대 이상 유권자는 24.4%로 연령대별 비중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40대는 20.6%, 50대는 19.9%에 그칠 전망이다. 여기에 18대 대선 투표율이 이번 대선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60대 이상의 표심이 실제 득표에 반영될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유권자수(24.4%)가 가장 많은 데다, 투표율(80.9%)까지 높기 때문이다. 선거는 투표에 참여한 이들을 모집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권자 수가 많고 투표율이 높을수록 실제 득표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아진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60대 이상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누구를 찍어주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수 있는 상황이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성향을 보였던 TK와 충청 등에서는 4월20일 현재까지 안철수 후보 우세를 보이고 있다. 4월20일자 문화일보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TK(대구·경북)에서 안철수(33.9%), 문재인(30.2%), 홍준표(15.1%) 순으로 나타났고, 대전·세종·충청권에서는 안 후보가 41.2%, 문 후보 30.1%, 홍 후보 9%를 기록했다. PK(부산·경남)에서는 문 후보가 33.5%로 안 후보(32%)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홍 후보는 18.8%를 기록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그러나 4월 하순 들어 안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던 60대 이상, TK와 충청 출신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교체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안철수 대안론 만든 홍찍문

    안 후보가 4월 들어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만큼 지지율이 수직상승한 것은 각 당 대선경선 이후 대선 대진표가 확정된 이후다. 홍 후보는 3월31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지만, 경남지사 사퇴를 하지 않은 탓에 4월 9일까지 제한된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지사 재보궐선거를 치르지 않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홍 후보는 ‘재보선은 없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감수했다. 홍 후보의 발이 열흘 가까이 묶인 사이, 정치권에 회자됐던 유행어가 ‘홍찍문’이었다. ‘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대통령된다’는 것.

    홍찍문은 중도와 보수층에 폭넓게 퍼져 있던 문재인 비토층을 파고들면서 안철수 대안론으로 이어졌다. 안 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한 때도 그 즈음이다. 4월18일 19대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된 이후 만난 70대 초반의 충청 출신 기업가 L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일찌감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마음에 뒀다고 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귀국 이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L씨도 함께 마음을 접었다.

    이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게 잠시 눈길을 줬단다. 그러나 황 대행마저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번 대선에는 기권할까”라는 생각까지 생각했다고. 그런 L씨는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각 당 대선후보 경선을 지켜보며 ‘원치 않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차선책이라도 택하자’는 생각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수층을 파고들었던 ‘홍찍문’ 흐름은 4월 중순 이후 ‘안찍박’에 의해 서서히 허물어지는 흐름을 보였다. ‘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된다’는 것.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층 기반 정당이 주장하는 ‘안찍박’ 주장은 보수층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구에서 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지금은 한 문화센터에서 강사로 일하는 70대 초반의 K씨는 “안철수가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는데, ‘안철수 뒤에 박지원 있다’고 하니 왠지 께름칙하다. 대북송금 문제도 그렇고”라며 ‘안찍박’ 주장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박지원이 뒤로 물러나고 정치에서 손뗀다고 하면 모를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안철수를 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주변 여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선 끝나고, 그래도 홍준표를 밀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남 좋은 일 시킬 바에야, 이번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다음에 (TK가) 집권 하려면 보수를 살려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安·洪은 제로섬 관계

    홍찍문 주장에 안 후보 지지율이 상승했다가 안찍박 여파로 안 후보 지지율이 다소 주춤해지자 안 후보 진영에서는 ‘사드 배치 찬성’ 등 안보를 유독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다분히 흔들리는 보수 지지층을 붙잡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홍 후보는 안 후보에게 쏠려 있는 보수 지지층을 자신에게로 돌려 세우기 위해 ‘홍준표를 찍으면 홍준표가 대통령 된다’며 ‘홍찍홍’을 강조하고 있다.

    홍찍홍 주장이 보수 지지층을 얼마만큼 파고드느냐에 따라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에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의 주된 지지층이 대구경북, 충청 등 보수 유권자층이 두터운 지역에서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홍찍홍 주장이 보수 지지층을 파고들어 안 후보에게 쏠려 있던 보수 지지층 일부가 홍 후보 지지로 돌아서게 되면 양강 구도가 1강 2중 구도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필승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상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홍 후보 지지율이 10%를 돌파하면 상승세를 타고 15%를 넘어설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문-안 양강 구도는 1강 2중 구도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와 홍 후보의 지지율은 어느 한쪽이 오르면 다른 한쪽이 내려가는 ‘제로섬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안 후보에게 쏠려 있던 보수 지지층이 홍찍홍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총결집하는 경우다. 여론조사로 표출된 보수층은 물론 ‘샤이 보수’까지 총결집하면 문-안에서 문-홍 양강 구도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격한 보수 총결집이 나타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PK 출신 50대 초반의 회사원 C씨는 4월초 서울에서 고향 친구들과 가졌던 동창모임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줬다.

    “처음에 대선 얘기할 때는 안철수가 좋다는 친구가 반 정도 있었고, 홍준표, 문재인이 낫다는 친구가 나머지 절반쯤 됐다. 그런데 한 친구가 ‘안철수는 좋은데 박지원 때문에 못찍겠다’고 하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더라. 술자리를 파할 때쯤에는 안철수, 홍준표, 문재인 세 패로 나뉘더라. 누가 될 지는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침묵하는 다수가 투표장에 나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 당락은 크게 엇갈릴 공산이 크다. 표심도 겉으로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가 전부일 수 없다. 지난해 브렉시트(Brexit)와 미국 대선은 ‘샤이 보수층’이 실제 투표를 통해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5·9 대선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40% 가까운 보수 유권자의 표심이 누구를 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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