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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필요충분조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강대국 필요충분조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강대국 필요충분조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국식 ‘리세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의 고택 복원 고유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한길사)에서 팍스로마나 2000년을 지탱한 힘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한다. 로마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솔선수범해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에 나섰다. 포에니전쟁 중 전사한 콘술(집정관)만 13명이고 이로 인해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줄어들었다.

로마 귀족이 보여준 공공의식과 솔선수범, 검소한 삶과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덕에 로마는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지만 커다란 로마 문명을 천 년 동안이나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해석이다. 재물을 사회에 환원한 대표적인 가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로, 그들은 은행업으로 천문학적 돈을 모아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모든 소장품과 유물을 피렌체에 헌납했다.

귀족들의 솔선수범에서 사회지도층 도덕적 책무로

근현대의 강대국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이 강하다.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귀족학교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가 헬기조종사로 참가했다. 대통령이 제 몸 하나 살려고 한강 다리를 폭파한 6·25전쟁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해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가했고, 적이던 마오쩌둥의 아들도 6·25전쟁에 참가해 전사했다.

이렇듯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용기와 솔선수범’에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로 변해왔다. 그런데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살림)에서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의 나눔 정신’이라고 한다. 즉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부자들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계적 갑부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사회를 위한 부의 환원이야말로 숭고한 우상이라면서 2500곳의 도서관을 헌납했다. 석유왕 록펠러는 시카고대학을 비롯해 12개 종합대학, 12개 단과대학과 연구소를 지어 사회에 기증했고 4928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그래서 교육저술가 최효찬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예담)과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예담)에서 졸부와 명문가의 차이를 재는 잣대는 리세스 오블리주라고 한다. 우리 속담 ‘부자가 3대를 못 간다’처럼 미국에서 10억 달러(1조원) 이상을 상속받은 가문은 400여 개인데, 부가 3대를 못 가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후대의 무능과 허영심, 낭비 탓이다. 그래서 부자이지만 아이가 부자 티를 내지 않고 리세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이로 자라주기를 바란다면, 배울 만한 가문이 빌 게이츠가다.

시애틀의 이름난 은행가와 변호사 집안이지만 리세스 오블리주 철학이 확고한 게이츠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빌 게이츠 역시 두 자녀에게 1000만 달러만 물려준다고 다짐했다. 더 큰돈을 물려주면 창의적인 아이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을 주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시 대통령이 폐지를 주장하자 변호사인 그는 “현재 미국의 빈부 격차는 사상 최고인데, 부자들이 욕심을 부리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망한다”며 이를 반대했다. 부자들의 환영을 받을 만한 상속세 폐지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내로라하는 부자들에게 반발을 사다니, 대한민국의 상황과는 극과 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없을까. 물론 있다.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당시의 의병활동은 물론, 한일병합 이후 온 집안이 의병과 독립운동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왕산 허위 일가, 6형제가 모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몸바친 우당 이회영 집안,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 가문,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재를 털어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사들임으로써 일본으로의 유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같은 분의 일화가 그것을 증명한다.

최효찬은 특히 1949년 토지개혁의 영향으로 300년 동안 모은 재산을 대학을 설립하는 데 기부하고 스스로 만석꾼의 지위를 반납한 경주 최씨는 대한민국 리세스 오블리주의 아이콘이라고 한다. 경주 최부잣집은 최치원의 17대손인 최진립(1568~1636)과 아들 최동량, 손자 최국선에 이르기까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는 가훈을 지키며 28대손인 최준(1884~1970)까지 12대에 걸쳐 부자로서 존경받았다. 최준은 일제 치하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해 상해임시정부 등에 자금을 지원했고, 손자에게는 유산 한 푼 물려주지 않았다. 이후 그는 300년 된 대저택과 논밭 24만평, 860만원의 거금을 내놓으며 대구대학과 계림대학(현 영남대)을 설립했다.

기부는 지속발전 사회 안전판이자 역사를 굴리는 수레바퀴

비결은 바로 경주 최씨의 자녀교육 철학이자 가훈인 육훈(六訓)에 있었다. 육훈은 다음과 같다. ①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명예와 권력을 함께 가지면 부패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따른 것이다. ②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③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④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매년 1000석으로 100명이 묵었다. ⑤ 주변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현종 12년(1671) 삼남에 흉년이 들자 최부잣집은 곳간을 헐었다. ⑥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최부잣집은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쌀밥을 먹지 않고 은수저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 교수는 우리 조상들의 삶에 이렇게 면면히 흐르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리세스 오블리주 철학으로 승화돼 계승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기업 중심에서 개인 중심, 일회성 기부에서 정기 기부, 비자발적 기부에서 자발적 기부, 다액소수에서 소액다수로 바꿔야 하고 우선 가진 가들의 모범적 기부, 즉 리세스 오블리주가 많아져 기부문화의 기폭제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선적 기부는 부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사회의 안전판일 뿐 아니라, 나라에만 의존해서는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공이 부자 상인이라고 해서 그를 편애하지 않았고, 배우려는 열정이 있으면 그 신분을 따지지 않고 제자로 받아들이며 “부귀란 사람이 바라는 바이지만 바른 길로써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리지 말라”(논어 ‘이인편’ 제5장)고 했다. 인의와 상술을 함께 갖춰야 유상(儒商)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상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비봉출판사)에서 “양심이 없는 이기, 정의가 빠진 경제는 온전할 수 없다”고 했고, 삿포로맥주 등 500여 개 회사를 창립한 뒤 “한 손에는 ‘논어’, 한 손에는 주판을 들고 오늘에 이르렀다”며 600여 개의 교육복지단체를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치(1840∼1931)는 “영리든 돈이든 인애의 정이 깃들고 도의에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상 위에서 언급한 이들의 정신은 소설가 최인호가 소설 ‘상도(商道)’에서 던진 다음과 같은 메시지, 즉 ‘리세스 오블리주’가 역사를 굴리는 수레바퀴라고 한 것과 같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인은 장사를 통해 이윤을 남기지만 대인은 무역을 통해 사람을 남긴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은 카이사르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지배층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사라지자 로마는 발전의 역동성도 잃고 급속히 쇠퇴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618호 (p94~95)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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