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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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한 척 없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흑해함대 제압한 비밀병기는?

폭발물 싣고 돌진해 자폭하는 무인 해상 드론 ‘마구라 V5’ 흑해함대 33% 무력화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3-12 16: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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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해함대는 ‘러시아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재위 때인 1783년 5월 창설된 흑해함대는 부동항인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이 모항이며 흑해, 아조우해, 지중해가 주요 작전 구역이다. 흑해함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주적이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해군과 우크라이나 해군이 분할됐지만 흑해함대 전력은 대부분 러시아가 차지했다.

    해상전서 우위 보이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군의 수상무인정 ‘마구라(MAGURA) V5’가 흑해를 항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 제공]

    우크라이군의 수상무인정 ‘마구라(MAGURA) V5’가 흑해를 항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 제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인 2022년 2월 24일 흑해함대는 미사일 순양함과 구축함, 상륙함과 초계함, 잠수함 등 각종 함정 80여 척을 보유했었다. 흑해함대의 임무는 흑해에 대한 제해권을 확보해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4위 농산물 수출국으로 전쟁 전 곡물의 75%를 흑해를 통해 수출해왔다. 흑해함대는 이 외에도 미사일과 함포를 활용해 우크라이나 항구들을 공격하는 식으로 러시아군의 지상전을 지원해왔다.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올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지상전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흑해의 해상전에서는 우위를 보여 흑해함대의 전력이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우크라이나는 흑해함대를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해군의 드미트로 플레텐추크 대변인은 최대 25척의 흑해함대 함정을 무력화했고, 15척은 현재 수리 중이라고 밝혔다. 플레톈추크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대함 미사일, 순항미사일, 공중·해상 드론 등을 동원해 흑해함대 전력의 33%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흑해함대의 모항인 크림반도 서부 세바스토폴항을 아홉 차례에 걸쳐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사망설이 나돌던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관 빅토르 소콜로프 제독이 2월 해임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세바스토폴항의 해군 조선소 역시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해 대형 상륙함 한 척과 잠수함 한 척을 파괴시켰다. 이에 러시아군은 세바스토폴항에서 상당수 함정들을 본토인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이동 배치했다. 사실상 모항을 옮기는 조치였다. 플레텐추크 대변인은 “러시아 해군 함정들이 대거 노보로시스크 기지에 정박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했을 때 흑해함대는 상륙함 13척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5척만 운용이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흑해함대 함정들이 후방 배치되면서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7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이후 막혔던 곡물 수송을 위한 해상로를 다시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군비 지출로 재정 수입이 바닥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해상 곡물 수출로 확보는 큰 이득이다.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지금까지 곡물 수출량이 2550만t을 기록했다”며 “곡물 수출량이 전쟁 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부 차관은 이를 두고 “러시아 흑해 함대의 기능적 패배”라고 지적했다. CNN 방송도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자체 해군이 없지만 기술 혁신, 대담함, 러시아 무능으로 흑해 대부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해군은 전함을 1척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비밀병기 마구라 V5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러시아 흑해함대를 약화시킬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군의 비밀병기는 무엇일까.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마구라(MAGURA) V5’라는 수상무인정이 맹활약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마구라는 ‘Maritime Autonomous Guard Unmanned Robotic Apparatus’의 약자로 일종의 해상 드론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마구라 V5를 이용해 러시아 흑해함대의 함정들을 잇달아 격침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3월 5일 크림반도와 러시아 남서부 해안을 가르는 케르치해협 인근 흑해에서 흑해함대 소속 함정을 침몰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GUR)은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마구라 V5로 1700t급 초계함 세르게이 코토프함을 격침시켰다고 발표했다. GUR는 “해상 드론의 공격으로 세르게이 코토프함의 선미, 우현, 좌현에 손상을 입었다”면서 “함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뒤이어 침몰했으며, 러시아 해군 수병 7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침몰된 세르게이 코토프함은 러시아 해군에 6척밖에 없는 최신예 미사일 초계함이다. 이 함정은 2022년부터 실전 배치돼 흑해에서 작전 활동을 해왔다. 최대 80명이 탑승할 수 있고, 대공‧대함 미사일과 함포를 탑재한 채 크림반도 주변에서 순찰과 감시, 함대 호위 등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최대사거리 2500㎞인 칼리브르 순항미사일로 무장한 이 함정의 가격은 6500만 달러(약 856억 원)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군은 2월 1일 마구라 V5로 흑해함대 미사일 초계함인 이바노베츠함(550t)을 침몰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이 초계함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30㎜ AK-630M으로 마구라 V5를 공격했지만, 지그재그로 움직여 포탄을 피했고, 끝내 초계함에 충돌했다. 동영상 끝부분에는 함정이 침몰해 뱃머리만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모습이 담겼다. 러시아의 한 군사 블로거는 텔레그램에 이바노베츠함이 우크라이나군 해상 드론 3척에 피격당해 침몰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2월 14일에도 크림반도 남단 도시 알룹카 앞바다에서 흑해함대 소속 4000t급 상륙함 체자리 쿠니코프함을 마구라 V5로 공격해 수장시켰다.

    마구라 V5는 길이 5.5m, 너비 1.5m, 흘수선 위 높이 500㎜, 순항 속도 22노트(약 41㎞/h), 최대 속도 42노트(약 78㎞/h), 최대 항속거리 450해리(833㎞)다. 사람이 무선으로 조종하는 마구라 V5는 320kg의 폭발물을 싣고 적 목표물에 돌진해 자폭하며 제작비용은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여러 척의 마구라 V5가 러시아 함정을 협공하는 전술이 구사된다.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마구라 V5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자폭 수상무인정을 운용하는 ‘그룹 13’이라는 특수 작전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마구라 V5는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를 이용해 800㎞ 떨어진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선체가 작은 탓에 조종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포착하기 어렵다. 게다가 러시아군은 이 해상 드론을 격침할 수 있는 적합한 무기를 군함에 탑재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이 해상 드론을 찾아 파괴하기 위한 헬기부대까지 따로 편성하는 등 대책을 세웠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진화하는 해상 드론

    우크라이나군이 새롭게 개발한 무인수상정 ‘씨 베이비’. [우크라이나 국방부]

    우크라이나군이 새롭게 개발한 무인수상정 ‘씨 베이비’. [우크라이나 국방부]

    마구라 V5는 특수기술수출(STE)이라는 우크라이나 민간 회사에서 처음 개발됐다. 당초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은 강을 순찰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이 무인정을 구입했다. 이후 해상전에 사용하기 위해 이 무인정을 개조했고, 이를 운용하는 특수 작전 부대까지 만들었다.

    ‘보렛츠(Borets)’로 불리는 그룹 13의 부대장은 적 함정을 격침시키려면 마구라 V5를 여러 척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장은 “해상 드론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성공적인 무기 중 하나가 됐다”면서 “러시아가 해상 드론의 70%를 파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남은 30%”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해군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해상 드론이 흑해의 제해권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은 3월 6일 마구라 V5보다 진화한 새로운 해상 드론을 공개했다. 110㎞ 떨어진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이 해상 드론의 정식 명칭은 ‘씨 베이비(Sea Baby)’다. 최근 러시아군에 의해 함락된 우크라이나 도시 이름인 ‘아우디이우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해상 드론에 1톤 이상의 폭발물을 탑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물속에서 은밀히 접근해 목표물을 공격하는 수중 드론도 개발했다. 수중 드론은 해상 드론과 달리 바다에 잠수해 접근하기 때문에 탐지하기 어렵다. ‘마리치카(Marichka)’라는 이름의 수중 드론은 길이 6m, 너비 1m, 작전 범위는 1000㎞에 달하며 제조비용은 1600만 흐리우냐(약 5억7000만 원)이다. 이 드론은 함정과 잠수함, 해안 요새, 교량 지지대를 공격할 수 있으며, 폭발물 대신 군용이나 민간용 화물을 수송하고 정찰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마리치카는 앞으로 흑해함대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주요 인프라 및 시설을 타격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전함 1척 없는 우크라이나군이 해상 드론의 맹활약에 힘입어 흑해에 대한 제해권을 일정 부분 확보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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