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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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수록 답 없는 연금개혁… “정부 재정 역할도 강화해야”

[김성일의 롤링머니] 韓, 국민연금 정부 지출 없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 국민·정부·연기금 부담 나눠야

  •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연금·투자연구소 소장

    입력2023-11-2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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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는 10월 27일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심의했다. 이번 계획(안)이 유난히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올해 초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발표하며 국민연금 기금이 2040년 정점(1755조 원)을 찍은 뒤 2055년 소진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심화와 경기둔화 등의 영향으로 5년 전 이뤄진 ‘제4차 재정추계’ 때보다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이 2년 빨라진 것이다. 이번 계획(안)에서는 국민연금을 지속가능한 제도로 개편하고자 5대 분야 총 15개 과제를 설정했다. 5대 분야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 △세대 형평성 및 국민 신뢰 제고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기금 운용 개선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정립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별 내용이 없다.

    실행 방안 안 보이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10월 27일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10월 27일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먼저 ‘노후소득 보장 강화’ 분야에서 ‘수급자의 실질소득 제고’ 과제에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액은 재정 부담 확대 및 상한액 가입자·사용자의 보험료 부담 등을 고려하여 현행 유지하고, 향후 재정안정화 조치와 병행하여 상한액 조정방안을 검토한다”고 돼 있다. 재정안정화 조치가 나와야 상한액 조정이 검토될 수 있다는 뜻인데, 막상 계획(안)에는 재정안정화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경제활동을 하는 노령연금 수급자의 연금액을 감액하는 제도인 ‘노령연금 감액 폐지’와 관련해서도 단순히 “추진한다”는 말밖에 없다. ‘구조개혁과 연계한 명목소득대체율 조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한 만큼 구체적인 수준에 대해서는 공론화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한다”고만 돼 있다.

    이번 연금개혁의 핵심이 될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분야와 관련해서 제시된 첫 번째 과제는 보험료율 인상이다. 문제는 인상 수준에 대한 안을 제시하지 않고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한다”는 말로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9월 1일 연금 고갈을 막고자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식의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때 나온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올리는 방안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6세, 67세, 68세로 늦추는 방안 △기금 투자수익률을 0.5%p, 1.0%p 올리는 방안을 담았으며, 세 가지 변수를 조합한 총 18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시나리오별로 재정안정화 효과 추산 결과도 포함했다. 이미 여러 안이 나와 있음에도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국고지원 확대’도 과제로 적어놓았지만 내용을 보면 그저 “신중한 검토 필요”라는 말로 넘겨버렸다. 한국 정부가 연금에 투입하는 재정은 매년 전체 지출의 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4%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지출마저 대부분 기초연금 때문인데, 엄밀히 말하면 기초연금은 연금(노령·장애·사망 따위로 소득 획득 능력이 없어졌을 때 국가가 생활 보장을 위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금액)이 아니라 공적부조(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최저한도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보호 또는 원조를 행하는 일)다. 즉 한국 정부는 공적 연금제도인 국민연금에 돈을 쓰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의미다.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정부 지출의 20% 이상을 노인 부양비로 쓰고 있다. 일본도 이 비율이 24%나 된다. 재정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테다. 하지만 모든 부담을 국민에게만 전가할 일은 아니다. 정부 역시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서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우창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030년까지 국민연금 보험료를 3%p(9→12%) 올리고, 정부가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를 연기금에 지출하며, 기금 운용수익률을 1.5%p(목표수익률 4.5→6%) 올리면 연기금이 약 2000조 원대 수준을 유지하고 100년 이상 소진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은 보험료율 인상을, 정부는 재정 지출을, 연기금은 운용수익률 개선을 책임지면 된다. 재정안정화의 모든 주체가 부담을 나눠 가진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야당은 진전 없는 개혁안에 ‘폭탄 돌리기’ 질타

    이번 계획(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분야는 ‘기금 운용 개선’이다. ‘기금 수익률 제고’ 과제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수익률을 1%p 이상 올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고 했다. 기금 운용수익률의 가정인 4.5%를 기본으로 한다면 5.5% 이상을 기대수익률로 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5월 31일 의결한 ‘2024~2028년 국민연금 기금 운용 중기자산배분안’에서 제시한 향후 5년간 목표수익률인 연평균 5.6%와 비슷한 수치다. 이미 정해진 내용을 다시 발표한 셈이다.

    전략적 자산배분 권한은 전문성 제고를 위해 기금운용본부로 이관된다. 기존에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담당했는데 위원 현황을 보면 전문성이 크게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기획재정부 차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당연직 위원이니 말이다. 여기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농어업인 대표 2명, 자영업자 대표 2명, 소비자 대표 2명, 관계 전문가 2명 등 위촉위원 14명이 더해진 기금운용위원회가 전략적 자산배분을 결정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권한이 전문가 집단에 이관돼 다행이다. 이 밖에도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의 단계적 인상이나 사적연금 활성화 지원 내용도 있으나 구체적인 수치와 시기 등에 관한 언급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11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보고했다. 이어진 질의에선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연금개혁에 따른 국민 불만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국회로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활동 기한이 6개월 연장된 국회 연금특위는 내년 5월 말까지 정부안을 토대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내년 4월 총선으로 바쁘다. 국민의 표를 의식한 정부와 국회 모두 연금개혁 논의는 그 뒤로 미룰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년 여름에는 과연 연금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번 정부에서 연금개혁이 이뤄질 수는 있을까. 미룰수록 답이 없는 게 연금개혁이다. 역대 정부가 국민연금을 개혁한 건 두 차례뿐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연금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춰 ‘받는 돈’을 줄였고, 60세에서 65세로 연금 ‘받는 나이’를 늦췄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연금 폐지’ 촛불집회까지 벌어졌으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췄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이번 정부가 세 번째 연금개혁 주인공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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