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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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공주가 된 아르테미스 희진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3-11-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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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어느 전통 왕조의 공주가 K팝을 사랑한 나머지 궁궐을 뛰쳐나와 아이돌 오디션을 본다. 조금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설정이다. 희진의 솔로 미니앨범 ‘K’의 타이틀곡 ‘Algorithm’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희진은 지독히 복잡한 세계관 설정과 파격적인 그룹 운용으로 악명 높다시피 했던 12인조 걸그룹 이달의소녀(LOONA) 출신이다. 2016년 이 그룹의 첫 멤버로 대중을 만난 뒤, 컬트적 지지와 당혹감이 뒤섞인 채 이어지던 이달의소녀 자리를 지켰다. 소속사와 분쟁 후 그룹은 양분돼 희진은 그중 4인이 참여한 아르테미스(ARTM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공주는 K팝 여성 아티스트의 이미지 조형 기본값이자, 그럼에도 너무 노골적이라 차마 드러내지 않던 존재다. 또는 대중과 친숙한 접점을 만들기 어려워 본격화되지 않던 소재다. 그러나 이 뮤직비디오는 고궁에서 양어깨에 그릇을 올리고 걸음 연습을 하던 공주가 침실에서 K팝 안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업로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계정 이름은 ‘kr_pr1ncess’고, 여러 언어의 찬사가 댓글로 쏟아진다. 그 장면들이 아주 매끄럽게 ‘붙지는’ 않는다. 혹은 생경함을 남긴다고 해도 좋겠다. 보컬이 없어 신스 사운드가 더 두드러지는 인트로보다 오히려 노래가 등장하는 이후가 더 그렇다. 이는 곡이 구현하는 뉴 잭스 윙 사운드가 차라리 레트로할지언정 가요의 익숙한 현대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안적 K팝을 생각하게 하리만치 주류 가요에서 각도가 틀어진 취향을 보여주던 이달의소녀로부터 이어지는 기조라 할 수 있겠다. 그와는 별개로 도톰한 깊이감을 가진 희진의 음색은 곡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 깡충거리며 포인트를 주지만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단음 위주의 멜로디도 쿨한 인상과 다부진 에너지를 전한다.

    아르테미스 멤버 희진이 솔로 미니앨범 ‘K’를 내놓았다. [모드하우스 제공]

    아르테미스 멤버 희진이 솔로 미니앨범 ‘K’를 내놓았다. [모드하우스 제공]

    K팝에 관한 은유 담아

    공주는 북촌 어디쯤인 듯한 거리로 넘어가 현대 젊은 세대의 복장을 하고 친구들과 춤추기 시작한다. 시청각적 긴장은 해소되고, 공주가 K팝 지망생이라는 서사적 긴장은 가중된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희진이 거리에서, 오디션장에서 친구들로부터 환영받으며 녹아드는 연출이다. K팝이 북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 유수의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북미 풍경을 묘사하던 방식과 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힙합과 솔의 거리에서 나고 자란, 또는 완벽히 동화된 듯한 아시아인, ‘현지인’이라 이마에 써 붙인 듯한 인물과 반갑게 주먹을 부딪치며 함께 노래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세계 팝시장에서 변방에 있던 K팝이 미국을 바라보던 시선을 ‘Algorithm’은 전통 왕조의 공주가 K팝을 만나는 장면으로 재해석해버린다.

    퓨전사극이 그러하듯, 이 뮤직비디오는 익숙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창조해 판타지적 픽션감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희진은 유튜브 등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추천하는 노래가 “다 내 얘기 같다”고 노래한다. 거의 우연처럼 느껴지는 필연인 알고리즘을 매개로 곡은 궁궐 안 공주와 바깥세상을 연결해둔다. 그것은 다시 세계의 연결 가능성에 관한 소망 섞인 믿음이 된다. 공주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더불어 ‘K팝에 관한 K팝’인 이 곡은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채 세계로 발신되는 이 음악에 대한, 너무 낯간지럽지 않으면서도 꿈과 로망을 듬뿍 담은 은유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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