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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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언어 담은 세븐틴의 백신 광고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3-08-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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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다실’ 광고를 찍은 세븐틴. [한국MSD 제공]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다실’ 광고를 찍은 세븐틴. [한국MSD 제공]

    최근 한 TV 광고가 화제다. 인류 멸망을 연상케 하는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보이그룹 세븐틴이 거닐며 말한다. “미래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위아래로 뒤집어지는 카메라는 찬란한 밤하늘과 멤버들을 보여준다.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다실’ 광고다. 광고를 본 팬덤과 대중은 세븐틴 멤버들도 접종을 했느냐, 협찬이었느냐, 접종 시 세븐틴 포토카드를 제공하느냐 등 반가움과 농담이 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HPV는 자궁경부암 등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며, 백신은 성관계 경험이 없는 연령대에 접종 시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질환이 자궁경부암이기에 여성의 사안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남성도 다양한 질병이 유발될 수 있고, 특히 전파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세계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접종이 권고되고 있다.

    이 광고가 재미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가 K팝을 수용하는 한 단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가다실은 정경호, 서강준, 여진구 등 남성 배우를 모델로 기용해왔다. 차분한 설득이나 유머러스한 극이 주를 이루던 기존 광고와 다른 점 한 가지는 세븐틴의 광고가 이미지 위주라는 데 있다. 온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은 선언적 메시지를 던지고, 가장 눈길을 끄는 무기는 역시나 인물의 잘생김이다. 인류 종말과 빛의 미래 사이를 오가는, 어찌 보면 과장되고 거창한 세계론적 표현에 화려한 반전이 더해진다.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건 기적”이라는 카피와 연동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K팝 언어가 고스란히 다른 영역에 날아든 듯 보이며, 일견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다. HPV 백신 광고의 주제를 담아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K팝의 영상 언어가 우리 사회 전반에 익숙해졌다고도 하겠다.

    기존 광고에 비해 덜어낸 부분이 있다. 남성에게도 필요한 백신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지목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남성 모델을 기용함으로써 HPV가 남녀 모두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의의는 여전하다. 다만 데뷔 초부터 세븐틴이 보이그룹 중에서도 ‘여자들이 특히 사랑하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적잖이 지녀왔음을 감안할 때 광고 타깃이 주로 여성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광고는 자궁경부암도 호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보면 HPV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여성에게는 상당한 환기효과를 일으키나, ‘남의 일’로 여기는 이들에게까지 정확하거나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불필요한 엄숙주의 없애는 K팝의 힘

    사실 이 같은 맥락의 누락도 K팝에서는 드물지 않다. 로맨스를 이야기하면서도 상대 이성을 등장시키지 않고, 중대한 사안을 건드리는 듯하지만 선명한 언급보다는 우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신 화자인 아티스트의 매력을 전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그러니 굳이 아쉬움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광고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K팝 언어와 직결된다.



    그럼에도 이 광고가 반가운 이유가 있다. HPV 감염이 성 접촉을 매개로 하다 보니, 성에 관한 엄숙주의가 드리워지는 안타까운 현실도 잔존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표백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K팝이 HPV를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그 예방을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거리낄 이유가 무엇일까. 불필요한 엄숙주의의 개입을 걷어내고 건강한 삶을 일구는 데 K팝이 기여하는, 용기 있고 흥미로운 사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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