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7

2022.09.23

바이든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중간선거 표심 잡다

동맹국 성토에도 美 제조업 부활 총력·중국 견제 박차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9-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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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8월 16일(현지 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한 후 웃음 짓고 있다. [조 바이든 트위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8월 16일(현지 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한 후 웃음 짓고 있다. [조 바이든 트위터]

    “디트로이트가 돌아오고, 미국이 돌아왔다.”

    9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2 북미 오토쇼’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對)국민 연설을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소개하며 미국 자동차 정책의 미래에 대해 역설한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에 따라 미국 전역 고속도로에 50만 곳의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될 것”이라며 “미국 제조업이 전기차 세계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RA는 전기차 구입 시 세액공제를 통해 최대 7500달러(약 1045만 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급 조건에 따르면 전기차의 최종 생산이 북미지역이어야 하고,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등 핵심 광물은 일정 비율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IRA의 목표는 미국을 전기차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만들고, 배터리 공급망을 재정비해 탄소중립 달성과 일자리 확대를 연계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14일(현지 시간) ‘2022 북미 오토쇼’에서 쉐보레 콜벳 Z06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백악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14일(현지 시간) ‘2022 북미 오토쇼’에서 쉐보레 콜벳 Z06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백악관]

    북미 최종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

    바이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IRA 카드를 꺼내 든 것은 11월 8일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디트로이트에서 IRA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시간주 최대 도시이자 오대호 심장부에 자리한 디트로이트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업체의 생산 주력 공장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디트로이트는 1970~1980년대 이후 일본 자동차 수입이 급증하면서 생산이 40% 감소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다. 디트로이트뿐 아니라 미국 철강 산업의 중심지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비롯해 필라델피아, 위스콘신주 밀워키 등도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불황을 맞았다.

    이 때문에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는 공장 설비가 부식돼 녹이 슨 지역이라는 의미로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렸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에서 대선이나 중간선거 때마다 어느 지역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이 치열한 곳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 등 러스트 벨트의 핵심 지역에서 모두 승리해 대권을 잡는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스트 벨트 부활’을 약속했다.

    4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어 승리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러스트 벨트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러스트 벨트는 이처럼 미국 정치 지형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볼 때도 중요한 곳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세계 1위 복귀를 천명하는 등 자동차 산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라는 기치를 앞세워 미국 제조업 부활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중국과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첨단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달 동안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바이오 분야에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내용으로 한 입법·행정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과학법(8월 9일), IRA(8월 16일), 생명공학·바이오산업 관련 행정명령(9월 12일)은 중국 부상 견제와 미국 첨단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과학법 내용을 보면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에 총 527억 달러(약 73조4270억 원)를 투자하고, 세액공제 등으로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제조시설 확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할 수 없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뒀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이 2025년까지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할 예정인 반도체 공장 조감도. [인텔]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이 2025년까지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할 예정인 반도체 공장 조감도. [인텔]

    동맹국과 관계 복원 약속했지만…

    미국 정부는 또 생명공학·바이오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따라 자국의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그 내용을 보면 △바이오 생산 기반 구축(5년간 10억 달러) △사이버 공격 보호(2억 달러) △군용 바이오 소재 고도화(2억7000만 달러) △생명공학 분야 혁신 연구(1억7800만 달러) △바이오매스 연구개발 및 상업화(1억6000만 달러) △지속가능한 비료 생산(2억5000만 달러) △필수 의약품 생산과 전염병 대응을 위한 핵심 원료 생산(4000만 달러) 등이다. 의약품과 생명공학 분야는 물론이고 국방, 에너지, 농업 등 바이오산업 전 분야에서 외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9월 15일 외국인의 미국 내 투자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감독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CFIUS는 1975년 설립된 기관으로, 미국 국익에 반하는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M&A) 및 투자 건을 심의하고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대통령이 CFIUS에 대한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행정명령에는 외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M&A는 국가안보, 공급망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평가해야 할 영역으로 초소형 전자공학(ME),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양자컴퓨팅, 첨단 청정에너지, 기후변화 기술, 희귀 자원 등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분야들이 명시돼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과학·기술 발전이 21세기 지정학적 지형을 규정할 것”이라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보에 대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일성으로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규범과 질서를 수호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단절됐던 동맹국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바이든 정부는 ‘프렌드 쇼어링’(동맹 중심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해왔고, 이에 따라 한국, 일본, EU 등 동맹국은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협력해왔다. 하지만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동맹국들의 성토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내세우며 IRA 등 정책 성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 점령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상원 및 하원의원, 주지사를 뽑는 선거를 말한다. 하원의 경우 임기가 2년이라 의원 435명 전원을 새로 선출한다. 상원은 임기가 6년이기 때문에 2년마다 100명 가운데 3분의 1씩 선출하는데, 올해는 35명을 다시 뽑게 된다. 주지사의 경우 전체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미국 역대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현직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고전해왔다. 중간선거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1862년부터 지금까지 실시된 40차례의 중간선거에서 37차례나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의석수가 줄었다.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승리한 것은 193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했을 때뿐이다. 현재 하원에서는 전체 435석 중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각각 221석, 214석을 차지하고 있다. 상원에서는 두 당이 전체 100석 중 50석씩 나눠 가진 상태다.

    당초 이번 중간선거도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물가 폭등과 공급망 붕괴 등으로 미국 경제가 최악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이후 계속된 대외정책 난맥상 등이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공화당이 이번 중간선거 상·하원 모두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판세가 바뀌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그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원은 이미 미세하게 민주당으로 기울고 있고, 하원은 양당이 박빙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모든 입법 과정에서 공화당의 벽에 부딪혀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에 ‘올인’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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