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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혐오시설 변두리 내몬 ‘식민도시’ 서울”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大서울 확장… 삼성 공장 따라 아산까지 넓어진 강남”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빈민·혐오시설 변두리 내몬 ‘식민도시’ 서울”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오른쪽)가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아파트(왼쪽) 옥상에서 주변 시층(時層)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오른쪽)가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아파트(왼쪽) 옥상에서 주변 시층(時層)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여러 시층(時層)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공간이네요. 헐리기 전 살펴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8월 17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아파트 옥상에서 문헌학자 김시덕(46) 박사가 들뜬 듯 말했다. 이곳은 1972년 준공된 108가구 7층(4층이 없어 표기상 8층) 높이의 주상복합아파트다. 경찰청과 NH농협생명 빌딩 사이 병풍처럼 휜 파사드가 인상적이다. 8월 3일 국토교통부는 이 일대를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했다. 서소문아파트는 하천 위에 지어져 대지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근처가 재개발되면 헐린 뒤 공원 등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물탱크와 배관 등으로 어지러운 옥상을 누비던 김 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만초천 위 서소문아파트

“건물 밑에 잠든 만초천은 선사시대부터 흘렀을 것이다. 근처를 지나는 경의선 철도(1905년 개통)는 대한제국 때 생겼다. 바로 옆엔 식민지 시절 개량 한옥과 창고 건물이 혼재한다. 길 건너 보이는 전도관 교회(서대문 천부교회)는 1960년대 건물(1969년 준공)이다. 이 서소문아파트는 인근 충정아파트(1932년 준공)보다 건축 시기는 늦지만 가좌역 근처 좌원상가아파트처럼 주상복합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준다.”

김 박사는 문헌학자이자 ‘서울 답사가’를 자처한다.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거쳐 일본 총합대학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저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로 외국인 최초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국내 번역본 ‘일본의 대외 전쟁’도 학술원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최근 ‘대(大)서울’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이 형성·확장된 흔적을 찾아 서울은 물론, 경기·인천·강원·충청 곳곳을 직접 답사했다. 그 성과로 ‘서울 선언’ 시리즈를 출간했고 최근 세 번째 책 ‘대서울의 길: 확장하는 도시의 현재사’를 냈다. 서소문아파트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문헌학자 겸 ‘서울 답사가’

김시덕 박사는 건물 간판, 머릿돌 등 ‘문헌’으로 도시 역사를 분석한다. 사진은 서울 중구 다다미가게(왼쪽)와 서대문구 서대문 천부교회 머릿돌. [사진 제공 · 김시덕]

김시덕 박사는 건물 간판, 머릿돌 등 ‘문헌’으로 도시 역사를 분석한다. 사진은 서울 중구 다다미가게(왼쪽)와 서대문구 서대문 천부교회 머릿돌. [사진 제공 · 김시덕]

문헌학자가 ‘서울 답사’에 나선 이유는?

“4년 전 직장 문제로 한국을 떠날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서울을 향해 나 나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일본 연구자로서 동기도 있었다. 유학 시절 외국에 있을 때는 필드워크가 쉽지만 귀국 후에는 여의치 않다. 일본 식민통치가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 한국 도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피고 싶었다. 도시문헌학의 견지에서 도시화석을 찾는 등 대서울을 읽어내고자 한다.”



‘도시문헌학’ ‘도시화석’ 모두 생소하다.

“도시도 하나의 거대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답사와 해석으로 그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 지질학에 표준화석이라는 개념이 있다. 암모나이트처럼 지층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화석이다. 도시화석도 도시문헌학에서 비슷한 구실을 한다. 가령 전도관(1950년대 생긴 신흥종교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현 ‘한국천부교회’) 교회가 있는 지역은 과거 많은 신도를 모을 수 있는 번화가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미래에는 래미안(삼성물산 아파트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대해 ‘구도심을 밀어내고 21세기에 지은 주거지’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래미안이 2000년대 브랜드 아파트 붐을 일으켜 재건축·재개발 지역에서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건물 머릿돌도 훌륭한 문헌이다. 준공 연도뿐 아니라 재질과 크기, 위치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본래 유럽에서 휴머니즘은 문헌학에서 출발했다. 한국은 이런 인문학의 기본을 소홀히 하면서 메타 담론을 논한다. 도시문헌학은 이런 풍토에 대한 안티테제 성격도 있다.”

왜 수도권이 아닌 ‘대서울’인가.

“지역을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이해해선 안 된다. 가령 집은 경기도에 있어도 서울의 학교, 직장에 다니거나 반대 경우도 많다. 수도권이라는 표현은 서울, 경기, 인천만 포함하는 면(面) 개념에 가깝다. 실제 사람의 생활권은 도로를 따라 선(線) 개념으로 형성된다. 대서울은 행정구역이라는 틀 밖 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인천 강화도, 경기 김포·고양·파주시(대서울 서부), 강원 춘천·원주시(대서울 동부)를 망라한다. 대서울은 계속 확장한다. 가령 강남은 서울지하철 8호선, 분당선, 신분당선을 따라 넓어진다. 최근 삼성은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공장을 세웠다. 기존 대서울은 식민지 시절 총독부가 만든 경부선 축을 따라 발달했다. 지금의 서울지하철 1호선 노선과 유사한 축이다. 대기업의 개발이 새로운 축으로 대서울, 구체적으론 강남을 확장한 사례라 흥미롭다.”

“빈민촌 헐고 지은 아파트에 기와 정자”

서울 관악구 관악산 북쪽 기슭부터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까지 시층(時層). [사진 제공 · 김시덕]

서울 관악구 관악산 북쪽 기슭부터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까지 시층(時層). [사진 제공 · 김시덕]

김 박사의 답사기는 문화유산을 상찬하거나 ‘아픈 근대의 흔적’을 들춰 분노하지 않는다. 서울은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다. 그의 표현대로 “한양에서 경성으로, 경성에서 서울로 이 도시는 계속 넓어졌다. 영등포와 노량진은 한양이 아니었지만 1936년 경성이 됐고 영등포 동쪽은 경성이 아니었지만 1963년 서울에 편입돼 강남이 됐다”(‘서울 선언’ 42쪽). △조선 후기 △사대문 안 △왕족·양반 △주자학 △남성 중심주의에 매몰된 서울이 아닌, 지금 여기 모두의 흔적에 주목하자는 취지다. 2018년 출간한 대서울 연구의 첫 성과 ‘서울 선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40년 삶을 돌아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양과 경성의 범위를 넘어 팽창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난 부천시 소사, 잠실, 재개발 전 안양시 평촌, 신반포, 구반포, 안암동, 중계동, 고양시 일산, 개포동, 낙성대에서 살았다. 스스로 서울시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줄곧 ‘사대문 안이 진짜 서울’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에 따르면 난 40년 넘게 서울시에 살면서도 진짜 서울로 인정받는 곳에선 한 번도 살지 못한 게 된다. 납득할 수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서울은 대부분 조선시대 평민이 살던 곳이다. 거기에 해방 후 빈민촌이 들어섰다. 이런 취락을 다시 밀어내고 최근 아파트가 들어서기 일쑤다. 그런 단지에 소나무를 심고 기와 올린 정자를 짓는다. ‘우리는 모두 양반 자손’이라는 자의식이다. 실존한 수많은 평민과 노비의 역사, 흔적이 사라진다. 식민지시대와 현대 한국의 도시 공간도 지워지곤 한다. 서울 대부분 지역엔 살지도 않던 왕족과 양반의 존재를 상상해 도시 ‘팩션’을 만든다. 대단히 봉건적 사고다. ‘조선주의’랄까.”

어두운 근현대 흔적을 철거하자는 주장도 있다.

“요즘 재개발·재건축할 때 문화재를 훼손하는 손쉬운 핑계가 ‘일제 때 건물이니까 밀어버리자’는 것이다. 가령 옛 총독부 건물은 조선총독부보다 대한민국 중앙청과 박물관으로 더 오래 쓰였다. 정부 수립의 현장이자 제헌의회가 열린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 건물인 것이다. 총독부 건물을 헐고 경복궁을 제대로 복원하지도 못했다. 출신이 노비면 평생 상놈이라는 의식이 반영된 것일까. 최근 ‘힙지로’라며 각광받는 을지로 지역도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적잖다. 해방 후 한국인이 그곳에서 수십 년간 살았다. 이북에서 온 월남민들이 살아 냉면 문화가 퍼지기도 했다. 이런 공간을 일본인이 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없애면 도시에 무엇이 남겠나.”

김시덕 박사는 ‘대(大)서울’ 일대를 답사했다. 사진은 각각 ①경기 고양시 이산포수문에서 바라본 일산신도시. ②경기 평택시 송탄역에서 오산 미군기지로 향하는 옛 군용철도. ③철거를 앞둔 강원 춘천시 ‘기와집골. [사진 제공 · 김시덕]

김시덕 박사는 ‘대(大)서울’ 일대를 답사했다. 사진은 각각 ①경기 고양시 이산포수문에서 바라본 일산신도시. ②경기 평택시 송탄역에서 오산 미군기지로 향하는 옛 군용철도. ③철거를 앞둔 강원 춘천시 ‘기와집골. [사진 제공 · 김시덕]

“도시 ‘균질성’ 깨야”

김 박사는 도시 개발을 두고 양 극단의 주장이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각각 “재개발·재건축부터 하고 보자”는 개발론과 “옛 흔적을 모두 지키자”는 보존론이다. 그는 “서울 내 택지 개발을 계속해야 한다. 메갈로폴리스를 지방 중소도시처럼 저밀도 개발해선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미국 도시경제학자)가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지적했듯, 고층 건물이 오히려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다. 다만 예전처럼 군사작전 식의 폭력적 개발은 안 된다. 도심 재개발 현장을 가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사설 용병’인 용역회사 직원이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경찰에 신고해도 ‘다치면 그때 오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국가가 도시 개발에서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도시 건설은 곧 폭력·배제의 역사인 듯하다.

“그렇다. 대서울에서도 이른바 혐오 시설은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로 이전했다. 도시 빈민도 변두리로 내몰았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도시 건설과 유사하다. 식민지 본국 주민이 성벽으로 지켜지는 도시를 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슬럼이 눈에 잘 안 띄는 이유도 도심 고시원이나 반지하방 등의 형태로 감춰져 있어서다. 슬럼 주민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그 존재가 가시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특정 도시 공간에 비슷한 계층만 사는 ‘균질성’이 깨져야 한다. 적절한 소셜믹스(social mix)가 필요하다.”

도시 문화유산을 지킬 방안은?

“정부가 문화재 보호를 명목으로 토지·건물주에게 현상 유지를 강제해선 안 된다. 설득과 혜택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론 내셔널트러스트(영국에서 시작된 자연 및 사적 보존 시민단체) 운동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가 부적절한 회계 처리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기본을 지키는 시민단체가 주도해 시민의 힘으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김 박사는 최근 활동 영역을 유튜브로 넓혔다.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서 ‘도시야사’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대서울 곳곳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주제다. 유튜브 채널 출연 이유를 묻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미처 몰랐는데, 내 책을 부동산업계 종사자가 많이 읽는다고 한다. 개발 예정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편리하다더라. 같은 시민으로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여러분이 입주할 땅은 선주민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라고 알리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주간동아 1305호 (p48~51)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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