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2

2021.06.04

남양유업 인수가 3107억 ‘헐값’ vs ‘비싸’ 논란

오너 리스크 벗고 옛 영광 되찾을까

  • 김가영 칼럼니스트

    입력2021-06-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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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뉴시스]

    국내 발효유업계 1위 남양유업이 창립 57년 만에 주인이 바뀌는 변화를 맞았다. 5월 27일 남양유업은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홍 회장의 아내 이운경 씨, 손자 홍승의 씨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주식 37만8938주(지분 53.08%)를 3107억 원에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논란 이후 불매운동으로 타격을 받았으며, 최근 ‘불가리스 사태’로 신용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면서 총수 사퇴와 지분 매각이라는 상황을 맞았다.

    “남양유업 직원이라고 밝힐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남양유업의 새로운 주인이 된 한앤컴퍼니는 그동안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온 회사로 MBK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함께 한국 대표 사모펀드 운용사로 꼽힌다. 모건스탠리 PE 부문 아시아 최고투자책임자를 역임한 한상원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한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다.

    한앤컴퍼니는 집행임원제도를 적용해 남양유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방침이다. 한상원 대표는 “의사결정 및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업무 집행임원을 분리하는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기업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앤컴퍼니의 이런 계획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동안 제조·해운·유통·호텔 분야에서 25건의 기업경영권을 인수한 후 단 한 건의 손실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품회사를 인수해 경쟁력을 키운 사례도 있다. 2013년 적자를 기록하던 웅진식품을 1150억 원에 인수해 2018년 대만 퉁이그룹에 2600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관련 업계는 한앤컴퍼니가 유사 업종인 웅진식품을 되살린 경험을 바탕으로 남양유업 인수를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초부터 홍 전 회장 측과 접촉하며 인수를 타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오너 일가가 지분 매각 결심을 굳힌 데는 ‘불가리스 사태’가 한몫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홍 전 회장은 매각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이튿날인 5월 28일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로 고통받는 남양유업 가족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고심 끝에 마지막 자존심인 최대 주주로서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면서 “기업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남양유업 직원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IB(투자은행)업계는 한앤컴퍼니의 성공을 점치고 있다. 남양유업 유보자금이 8000억 원에 달하고 공장설비, 영업조직, 제품력 등을 감안할 때 현재도 1조 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면 더 큰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산 규모 9893억 원, 이익잉여금 8685억 원, 부채비율 16%. 3월 말 기준 남양유업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런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춘 오너 일가의 지분(53.08%)이 3107억 원에 팔리면서 일각에서는 ‘헐값 매각’ 논란도 일고 있다. 반대로 기업 평판 리스크, 저출산에 따른 시장 축소, 영업적자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적정한 가격이거나 비싸게 샀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7년 이후 남양유업을 담당하는 증권사 연구원조차 없을 정도로 남양유업은 IR(기업 홍보 활동)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또한 2012년 매출 1조3650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3년 대리점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하락세로 돌아서 우유업계 2위 자리를 매일유업(1위는 서울우유)에 내줬다. 지난해 기준 매출 9489억 원, 영업손실 771억 원이다.

    매각 소식 이후 11년 만에 주식 상한가 기록

    5월 초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5월 초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통상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거래 시 약 30%의 프리미엄이 얹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앤컴퍼니는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한 5월 27일 종가(43만9000원)의 1.8배가 넘는 주당 82만 원을 주고 남양유업을 인수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는 한앤컴퍼니가 오너 일가 이슈로 저평가된 남양유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말 기준 남양유업의 주당순자산비율(PBR)은 0.57배로 남양유업 자산가치의 절반 남짓에 머물렀다. 불매운동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남양유업은 연간 1조 원 매출액과 500억 원을 전후한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을 낼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시장에서도 “남양유업이 보유한 브랜드와 노하우 등을 감안하면 실적이 예상보다 빠르게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까지만 보면 한앤컴퍼니의 남양유업 인수는 ‘굿딜’로 보인다. 남양유업 주가는 매각이 단행된 다음 날 가격제한폭(29.84%)까지 치솟은 57만 원에 거래를 마쳤고 이틀 뒤에는 70만 원까지 올랐다. 남양유업 주식이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2010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1964년 고(故) 홍두영 창업주가 설립한 남양유업은 최초 국산 분유인 남양분유를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분유시장 1위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1990년대 ‘아인슈타인 우유’와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사세를 키웠다. 그러나 창업주의 장남인 홍 전 회장이 1990년 사장에 취임한 이후 회사 안팎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남양유업의 본격적인 하락세는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시작됐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물건을 강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영업직원의 욕설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소비자 신뢰를 한순간에 잃었고 혹독한 불매운동도 겪어야 했다. 이후에도 2019년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사건, 2020년 경쟁사 매일유업에 대한 비방 글 작성 사건 등이 줄줄이 터지면서 평판이 바닥을 쳤다.

    4월 불가리스 사태가 치명타가 됐다. 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억제 효능이 있다고 발표했다 논란을 빚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경찰청이 남양유업 본사와 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결국 5월 초 홍 전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돼 남양유업은 창업주 일가의 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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