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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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한곳에 섞는 시간의 마법

블러의 새 앨범 ‘The Magic Whip’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5-26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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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를 한곳에 섞는 시간의 마법
    1990년대 영국은 ‘쿨 브리타니아’ 시대였다. 데미언 허스트로 대표되는 미술가들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에 논란을 재점화했고 가이 리치, 대니 보일 같은 감독들이 영국 하층민의 삶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했다. 이 쿨 브리타니아 시대 정점에 브릿팝이 있었다. 94년 커트 코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긴 팝의 거대한 공백을 메운 이들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 스미스, 스톤 로지스 등 맨체스터 밴드들이 영국 전역을 장악하며 ‘미국과는 다른’ 영국 록의 전통을 재정립했다면, 오아시스와 블러는 다시 한 번 ‘영국의 침공’을 미국, 아니 전 세계로 확산한 장본인이었다. 오아시스가 잉글랜드 북부 노동계급을 상징했다면 블러는 런던 중산층을 상징하는 팀이었다. 지역, 계급적으로 상충되는 이 구도를 미디어는 흥미롭게 지켜봤다(영국 음악매체는 ‘싸움’을 사랑한다).

    결국 1996년 블러의 ‘Country House’와 오아시스의 ‘Roll With It’ 싱글이 같은 날 발매됐다. 이름하여 ‘남북전쟁’. 90년대 영국 음악사의 가장 흥미진진했던 이 전투는 블러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그해 가을 오아시스의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와 블러의 3집 ‘The Great Escape’가 엇비슷하게 발매됐을 때는 오아시스의 압승이었다.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노동계급에 친화적이던 대중은 블러를 패배자 취급했다. 이때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놀릴 정도였다”며 씁쓸히 당시를 회상한다. 이를 계기로 블러의 음악은 급선회했다. 더욱 탐미적이고 실험적으로 변모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Song2’ 같은 노래조차 이전의 블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펑크적 미학이 돋보이는 곡이었으니까.

    2003년 7집 ‘Think Tank’를 끝으로, 그들은 꽤 오래 휴식기간에 들어갔다. 리더인 데이먼 알반은 고릴라즈, 더굿 더배드 앤드 더퀸 같은 프로젝트 밴드를 하며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섭렵했다.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은 쉴 새 없이 솔로 앨범을 내 다작의 상징이 됐다. 베이시스트 앨릭스 제임스는 치즈 가공업자로 변신, 영국 치즈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2009년 글래스턴베리에서 재결성해 한 차례 투어를 돌며 새 앨범에 대한 기대를 피워 올렸지만 김만 피어오를 뿐 대체 언제 밥을 지을지 알 수 없었다. 라이벌이던 오아시스가 2009년 해체해 노엘 갤러거와 나머지 멤버로 갈려 활동을 시작했으니, 블러의 새 앨범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밥이 다 됐다. 올 초 새 앨범 ‘The Magic Whip’의 커버(사진)와 첫 싱글 ‘Go Out’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영어 대신 중국어가 쓰여 있고 커버 아트 또한 키치적이다. 뮤직비디오도 중국의 어느 요리 강습 프로그램을 따온 듯하다. ‘의도적인 낯설게 하기’를 연상케 하는 이 방향은 오랜 세월의 공백과 기존 이미지로부터 스스로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클래스가 어디 가겠나. 5월과 함께 공개된 ‘The Magic Whip’는 블러의 익숙함과 멤버들이 블러를 떠나 걸어온 여정의 총화다. 데이먼 알반의 나른하고 자조적인 목소리, 팝적 센스를 놓지 않는 멜로디는 그레이엄 콕슨의 기타 스트로크와 함께 듣는 이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영국으로 데려간다. 그 익숙한 감성에 다채로운 비트가 얹히고 실험적인 사운드가 끼어든다. 성공적인 귀환이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무심하고 한편으로는 자연스럽다.

    1990년대에 대한 회고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옛 영화를 들먹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본질을 명확히 하는 법을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한곳에 섞는 시간의 마법을 블러는 ‘The Magic Whip’를 통해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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