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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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 육수에 누른국수, 할머니 손맛

대구 칼국수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1-05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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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물 육수에 누른국수, 할머니 손맛

    대구 ‘명덕할매칼국수’.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사업 초기 대구에서 제면소를 운영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작은 제면소는 후에 삼성물산의 밑거름이 된다. 대구는 광복 이후 제분(製粉), 제면(製麵)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 말까지도 건면(乾麵)의 50%가 대구에서 생산됐다. 대구에서 면 산업이 발달한 것은 경공업 중심지였던 이유가 가장 크지만 더운 날씨도 한몫했다. 밀가루와 면이 넘쳐나니 국숫집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대구에는 공장에서 생산한 면을 쓰는 면집보다 직접 손 반죽을 해 만든 칼국수 명가가 더 많다. 대구에는 3대 할매칼국숫집이라 부르는 할매칼국숫집들이 있다.

    대명동 식당 골목에 있는 ‘명덕할매칼국수’는 깔끔한 국물 맛으로 유명하다. 칼국수와 보리밥이 같이 나오는 형태는 경북 안동의 칼국수 문화와 비슷하다. 9~10월에 잡은 남해안 멸치를 칭하는 오사리 멸치(오사리는 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제철 멸치)로 우린 국물은 ‘조선백자 같은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난다. 숙성이 잘된 납작한 면에 양지머리를 참기름으로 볶은 다진 고기와 대구 칼국수의 기본 고명인 청방배추가 곁들여져 단아하고 정갈한 맛이 난다. 겨울에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은 할머니 손길처럼 부드럽고 따스하다.

    대구시내 중심지에서 버스로 1시간을 가야 나오는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의 ‘동곡할매손국수’는 대구 칼국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이다. 동곡리는 1970년대까지 양조장이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대구 도심이 발전하면서 인구가 줄어들었다.

    해물 육수에 누른국수, 할머니 손맛

    대구 ‘동곡할매손국수’.

    하지만 ‘동곡할매손국수’와 칼국수 전문점몇 곳 덕에 동곡리는 여전히 유명하다. 이 집 칼국수 국물은 지하수 맹물에 국수를 삶은 뒤 국수 삶은 물에 참기름과 간장만 살짝 가미한 일종의 ‘맹물국수’다. 맹물국수는 육식을 할 수 없는 승려들이 주로 먹는 방식이다. 하안거나 동안거가 끝날 때 승려들은 국수를 별식으로 먹는다.



    승려들이 ‘국수’소리만 들어도 미소를 짓는다 해서 불가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른다. 육수 대신 약수에 간장을 넣고 팔팔 끓인 후 반 정도 졸면 식혀 국수를 말아 먹거나 아예 국수를 찬물에 헹궈 먹었다.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도 이런 방식으로 국수를 드셨다 한다. 면을 따로 삶아 찬물에 헹군 뒤 국물에 넣어 먹는 방식은 건진국수 스타일도 가미돼 있다. 맑은 약수같이 담백한 국물에 가게 뒤쪽 텃밭에서 재배한 재료로 만든 김치를 곁들이면 자연의 맛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대구백화점 뒷골목에 있는 ‘경주할매국수’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실내에 십장생이 새겨진 자개장이 놓여 있다. 고향 시골집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다. 충무산 멸치를 삼베 보자기에 넣고 끓인 국물에 청방배추를 얹어 내다 보니 국물은 진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난다. 대구 서문시장에는 원조집이던 ‘왕근이집’이 대구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안동의 건진국수 스타일의 국수를 파는 집이 가득하다.

    대구 약전골목에는 ‘원조국수’란 작은 간판을 단 ‘이름 없는 칼국수’집이 유명하다. 이 집은 주문과 동시에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 홍두깨로 밀고 칼로 잘라 면을 만든다. 이 집 육수는 대구는 물론 다른 지역과도 확연히 다르다. ‘빵게’(암컷 대게)라는 작은 게와 대파, 다시마, 무, 민물새우로 우린 국물은 해산물 특유의 감칠맛에 무와 대파에서 나는 개운함이 결합돼 독특한 맛을 낸다. 대구의 칼국수 문화는 다양하지만, 해산물 육수를 기본으로 넓적한 면발을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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