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6

2014.05.07

국가개조, 서두르다 그르칠라

국가안전처 신설 등 침착함과 집요함으로 근원적 시스템 만들어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4-05-07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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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개조, 서두르다 그르칠라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전 관련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국가안전처(가칭)를 신설하겠다”면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안전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 차원에서 안전 시스템 틀을 새로 짤 태세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선박 운항, 안전 관리, 부처 감독, 재난구조 시스템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총체적 부실 국가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필연적 수순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4월 27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만큼 이제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나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고가 관재(官災), 인재(人災)라는 것이 실시간으로 드러난 만큼, 대국민 사과 혹은 담화 자체보다 국가개조론에 부응해 내놓을 콘텐츠에 눈길이 쏠린다.

    박 대통령은 먼저 핵심 콘텐츠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신설을 천명했다.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사회 재난과 자연재해 관리를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합 재난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가칭) 신설 계획을 밝혔다. 국가안전처는 인명피해가 큰 대형 사태나 화학물질 및 해상 기름 유출, 전력이나 통신망 사고 같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곧바로 사고수습 전문팀이 투입돼 대처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과 대책 마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국가개조 차원에서 안전 시스템 전체를 새로 만들 것을 예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과 총리실 등을 중심으로 어떻게 새로운 나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관계자, 여권 중진의원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러한 국가개조 구상 발표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1차 수색을 마치는 5월 중순경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가개조 콘텐츠를 설명할 개연성이 높다.



    대형사건 터질 때마다 대책 내놔

    국가안전처 신설을 천명한 만큼 콘텐츠에는 조직개편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등 기존 재난 관련부처를 조정함과 동시에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이 중심이 돼 국가개조를 위한 비전을 수립하고, ‘관피아’(관료+마피아)와 ‘철밥통’ 관행 등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는 공직사회 대수술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며 ‘관피아’와 ‘철밥통’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관료사회 수술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고 수습책, 민심 수습책으로 접근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실현가능성 있는 대책을 주문한다. 대형사고인 만큼 국민이 받아들일 만한 획기적인 대안이 아니면 민심 수습도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전직 안전행정부 차관 출신 A씨는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95년 (불법용도 변경으로 502명 사망자를 낸)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각종 안전대책이 쏟아졌다. 3개월에 한 번 하던 시설 안전점검을 매달 한 번 하기로 했지만 인력은 늘려주지 않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도 외환 전문가가 없다고 소리쳤는데,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니 재난 전문가가 없다고 소리친다. 그 많은 사고 이후 우리는 뭘 했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러 대안을 내놓지만 인재, 관재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처방을 내놓기 때문이다. 지금도 안전대책 마련하느라 공무원들이 과거 안전대책 자료와 해외 사례를 찾고 있을 거다. 그러니 항상 대책은 대동소이하다. 국가안전처 신설도 좋고 관피아 척결도 좋지만, 차분하게 사고 원인에 접근해 실현가능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만큼 대책 마련과 관피아 척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많은 의견을 듣고 고민해야 할 때다.”

    국가개조, 서두르다 그르칠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4월 28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후속수사를 두고,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일원인 해양경찰 역시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엄정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법률을 적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국가개조론에 부응하려면 정치권의 안전 관련 법제화 문제도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장(사회안전시스템공학부 교수)은 5월 1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국가재난안전 확대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의 재난 관련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재난은 결과이고, 헌법은 예방을 강조한다. 그런데 하위법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2014년 2월 시행)은 헌법적 책무와 전혀 다르게 예방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국회에서 법 자체를 잘못 만들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하면 중앙재해대책본부는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다. 정부가 전남 진도군청에 임시기구를 만들었지만 지휘체계가 없고, 수심 30~40m에서 벌이는 일에 대한 분담도 사전에 전혀 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중앙기구는 현장조직이 수습, 예방, 대응 활동을 할 수 있게 자원, 정보, 기술, 인력, 물자 등 모든 것을 지원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만든 현장 조직이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훈련이 잘돼 있는지 감시, 감독하는 기능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직 신설보다 기본 중 기본인 공무원의 임무 숙지가 먼저라고 지적한다.

    “국가안전처를 만들기보다 조직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무원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숙지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공무원은 순환보직을 하고, 정권은 바뀔 때마다 조직개편을 해대니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도 않은 채 더 좋은 자리로 갈 생각만 한다. 비상시 대처요령도 잘 모르는 공무원이 많다. 따라서 공무원에게 자신의 임무를 명확히 알려주고 평소 임무 숙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연구해야 한다. 관피아 문제는 어떤 대책을 만들기보다 부패척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관피아 척결이 그리 쉬운가

    전문가들은 국가안전처 신설 등 국가개조 수준의 일대 개혁은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부산의 한 국립대 교수의 지적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중앙재해대책본부까지 만들어 재난을 총괄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권한을 넘겨줬다. 스스로 조직개편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성급한 대책 마련은 대책이 없기 마련이다. 이번 국가안전처 신설 역시 서두르다가는 이런 사단이 날 수 있다. 총리실에서 직접 관장한다고 하지만 부처 간 협업이나 지자체 역할 설정 등 따져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은 대형 재난사고가 나면 국가재난대응시스템(NIMS)를 발동하는데, 이때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비정부기구(NGO), 민간단체의 협력체제가 가동한다. 우리도 사후약방문처럼 일 터지면 급하게 조직개편을 할 게 아니라, 해외 시스템 견학도 하고 전문가 심층 인터뷰도 하면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갖춰야 한다. 사고 대응은 느리고 대책 마련은 너무 빠른 것 같다.”

    그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와 정부, 의회가 보여준 침착함과 집요함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흥분할 수 있지만,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은 냉정해야 한다. 미국은 9·11테러로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테러 14개월 뒤에야 대테러 정책을 총괄할 국토안보부를 신설했다. 2002년 11월 발족한 ‘9·11위원회’는 2004년 7월에 보고서를 내놨고, 보고서 권고에 따라 의회가 테러방지법을 제정했다. 이를 근거로 2005년 4월 국가정보국(DNI)을 발족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9·11위원회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각 5명이 위원이 돼 당파성 논란을 사전 차단했고, 20개월 동안 세계 10개국 1200여 명을 조사하면서 250만 쪽의 서류를 검토했다는 점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파월 국무부 장관 등 고위공직자도 대거 불러 조사했다. 그 바탕 위에서 대책을 내놓은 거다.”

    ‘신국가개조론’을 펴낸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도 “범사회적 위원회를 구성해 사회 시스템 전체를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누가 잘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스템의 근본 개혁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게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에는 우리 사회의 명망가를 앉혀 사회 시스템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총리와 장관 한두 명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체 사고를 예방할 수 없는 만큼, 안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근원적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고심해야 한다.”

    관피아 문제는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권했다.

    국가개조, 서두르다 그르칠라

    4월 27일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정홍원 국무총리(왼쪽). 4월 2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지지부진한 정부의 구조작업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의식 개선도 필요

    “퇴직 공직자의 유관기관 취업 금지 같은 관피아 척결을 위한 여러 대책이 나오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협회 등에 퇴직 관료가 가지 않으면 교수나 연구원 출신 인사가 갈 텐데, 그들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감독과 규제를 할 수 있을까. 교수, 연구원 중에도 평소 연구용역 등으로 업계와 얽힌 인사가 많다. 관피아는 대부분 고시 기수 모임인데, 이들이 부처 간 소통과 사회적 유동성을 높이는 구실도 했다. 고시를 없애면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없어진다. 따라서 관피아 척결 문제는 ‘인사 제도 개선’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순환보직제를 하다 보니 관료가 힘 있는 자리를 선호하고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된다. 당연히 한 번 잘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안전 분야 자리보다 폼 나고 대접받는 자리에 가고 싶어 한다. 따라서 안전 분야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는 오래 한자리에 있어도 인센티브를 주는 직위분리제를 도입하고, 유착 문제는 공직사회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퇴직관료가 유관기관에 취업해도 밖에서 볼 때 유리알처럼 모든 게 투명하다면 유착은 있을 수 없다. 이 또한 위원회를 통해 근본 대책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관피아를 척결하려면 대통령부터 의식을 바꿔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과거 청와대 재직 시 관료에게 ‘정부부처 개혁’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면, 대통령 치적을 나열한 뒤 자기 소속 부처 문제점은 쏙 빼고 부처 산하기관과 관련 협회 개혁방안을 낸다. 총리나 장관 누구라도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면 그 사람 스타일에 맞는 보고서를 낸다. 리더가 볼 때는 흡족한 보고서지만, 정확한 상황 인식과 자기 부처 개혁 의지는 전혀 없다. 내 전임자가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한 말도 ‘관료 보고서를 너무 믿지 마라’는 거였다. 관료는 ‘그럴 듯한’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능력에선 최고다. 박 대통령은 평소 관료를 중용하고, ‘관저에서 보고서를 읽는 시간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관료에게 힘을 실어준 거다. 현재 진행되는 관피아 척결 대책을 공무원에게 만들라고 한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전문가와 민간인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국민의 제안을 받으면서 심도 깊은 논의와 정확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 안전을 위한 국가개조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교육을 통한 의식 개선’이라는 충고도 나왔다. 최 전 장관의 설명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생긴 것은 ‘나만 살자’는 선장과 승무원의 사고방식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교통사고가 나면 차에서 내려 ‘아유 오케이(Are You OK)?’ 하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그다음 일이다. 선장과 승무원이 평소 남에 대한 배려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자신들만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일본 사람은 자녀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미국 사람은 ‘거짓말하지 마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녀에게 ‘남에게 지지 마라’고 강조한다. 경쟁보다 배려와 공중도덕을 지키는 이른바 도덕 재무장 운동도 사고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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