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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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베이징 립서비스’

중국, 평양 질타는 체면치레용 전략적 행보 “미국 따라가지 마라” 미끼 청와대가 물어선 안 돼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06-24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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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 정부는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으로 보내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혹여 알았대도 이 문제에 개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 당국에 의해 체포돼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끌려간 직후 나온 외교부 당국자의 공식설명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미국 인권단체들은 일제히 ‘중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지만, 국내 언론의 화살이 중국을 향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 방패막이를 자처한 셈. 학계의 한 중국 전문가는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부의 ‘청와대 심기 살피기’가 ‘베이징 심기 살피기’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2 5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초청만찬. 눈길을 끈 것은 이날의 좌석배치였다. 헤드테이블에 앉은 박 대통령의 왼편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부부가, 오른편에는 권영세 신임 주중대사 부부가 자리했다. 안호영 신임 주미대사 부부는 권 대사 부부의 오른편. 통상 주미대사가 대통령 바로 옆에 앉던 관례를 깨고 주중대사가 착석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세 차례 지낸 권 대사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친박근혜계 핵심 실세다.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래 한 차례도 외교부를 떠난 적이 없는 안호영 대사와는 여러모로 느낌이 다르다. 이날의 좌석배치를 두고 두 사람의 중량감 차이에 대한 뒷말이 미국 측 인사들을 포함해 외교가를 한동안 떠돌았다.

    #3 4월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귀추가 주목됐던 미사일 중에는 한국군 당국이 사거리 5000km로 추정하는 KN-08이 포함돼 있었다. 2012년 4월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한 이 미사일의 발사대는 중국제. 캐나다에 본부를 둔 중국 전문 민간 군사연구기관 칸와(漢和)정보센터는 이 발사대 차량이 인민해방군 산하 기업인 후베이싼장항톈완산(湖北三江航天萬山) 특종차량유한공사에서 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이라면 대량살상무기 관련 제품의 대북(對北) 수출을 엄격히 금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1718호, 1874호를 중국이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다.



    기막힌 ‘베이징 립서비스’

    북한 ‘노동신문’이 3월 7일자 1면에 게재한 KN-08 추정 미사일과 이동식 발사차량 사진. 당시 이 신문은 연이어 미사일과 장사정포의 열병식 사진을 실어 대내외적으로 위협 분위기를 고조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안보리 결의를 어길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짧은 말로 이를 일축했다. 당초 한국 정부는 언론에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후 중국 측에 공식 질의하겠다”고 말했지만, 이와 관련한 공개적 입장 표명은 이후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KN-08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던 3~4월 내내 중국 측 책임을 묻는 한국 정부의 공식 언급은 한 차례도 나온 바 없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단연 중국을 향한 적극적인 구애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6월 27일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한층 두드러졌다. 고위 당국자들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북한을 자산이 아닌 부채로 인식한다”는 발언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다. 3차 핵실험과 뒤이은 북한의 초강경 드라이브가 베이징의 인식을 바꿨고,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 변화가 가시화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다.

    실제로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에 동의했고, 이후 관영언론에는 북한에 대한 성토 의견이 가감 없이 게재됐다. 국내 언론에서 이른바 ‘북한 포기론’으로 표현한 이러한 언급들은 구체적인 사실보도들이 이어지면서 한층 힘을 얻었다.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변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었다.

    말은 바뀌었어도 실체는 변함없어

    대표적인 것이 5월 초 중국의 대북 금융거래 중단 소식이다. 중국 4대 국영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이 조선중앙무역은행에 계좌동결과 거래중지를 통보했다는 것. 6월 초 미·중 정상회담 직후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비핵화가 공동 목표임을 확인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6월 17일 한 국내 언론은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5월 하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북·중 연합군사훈련을 제의했지만 중국 측 고위당국자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뉴스에는 어김없이 ‘북·중 관계가 특수관계에서 일반관계로 바뀌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과연 중국의 대북정책은 변하고 있을까. 베이징이 평양을 버리는 날이 조만간 오는 것일까. 그러나 5~6월 정점으로 치닫던 이러한 분석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먼저 핵실험 직후 중국 측에서 쏟아져 나온 경고성 메시지는 북한의 이전 핵실험 때와 수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반론의 첫 번째 근거다. 핵실험 이후 북측의 강경 드라이브가 이어지면서 메시지 지속기간이 길어졌을 뿐, 내용 자체는 전과 대동소이하다는 것.

    이후 확인된 조치들 역시 꼼꼼히 들여다보면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행의 금융거래 중단 조치만 해도 2006년 1차 핵실험 직후 취했던 조치의 재탕일 뿐이다. 그해 10월 20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은행과 상하이 푸둥개발은행, 중국건설은행, 시틱은행 등이 북한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당시의 조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됐다. 더욱이 중국은행의 이번 조치는 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북한 측 인사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 이후 북측은 외환거래 계좌를 대부분 개인명의로 전환하고 국제금융거래보다 실물현금이나 물물교환 방식을 선호해왔다. 한마디로 실효성이 크지 않은 조치라는 얘기다.

    미·중 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합의’에 대해서도 그 뉘앙스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6월 9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측 당국자들의 전언을 인용해 시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와 에너지를 지렛대 삼아 핵개발을 강행하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굴복시키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온 직후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6자회담 재개와 북·미,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회담 내용에 미국 측이 크게 의미를 부여하자 중국 측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셈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 측 견해는 1990년대 초 1차 북핵 위기 이후 한 차례도 바뀐 적이 없다는 공식설명도 이어졌다.

    ‘북·중 연합군사훈련 거부’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6월 18일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한국 매체 보도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에 불과하며 한반도 문제에서의 중국 입장과 다르다”는 중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두 나라가 6·25전쟁 이후 군사교류 관계를 맺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 종식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이를 모를 리 없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애초 중국 측에 연합훈련을 제의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그간 쏟아져 나온 이른바 ‘북한 포기론’은 성급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게 중국의 대외정책을 오랜 기간 관찰해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근본적인 혹은 전략적인 변화라기보다 ‘평양의 폭주에 대해 중국도 할 말은 한다’는 체면치레용 제스처에 가깝다는 것.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일부 중국 언론에 강도 높은 칼럼이 실린 것은 최근 수년 사이 이들 언론의 자율성이 이전보다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 정책결정 핵심부의 의사가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촌평했다. 여기에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베이징의 속내가 결합해 다양한 ‘립서비스’를 내놓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이전 시기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 측 발언 수위가 올라갔다면 이는 2차 핵실험 직후와 지금의 북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4년 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으로 베이징도 북한이 정말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고, 그에 따라 비핵화보다 체제안정이 중요하다는 2009년 외사영도소조의 결정이 나왔다. 반면 지금은 김정은 체제가 비교적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때문에 당시보다 좀 더 ‘꾸짖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게 된 것뿐이다.”

    거꾸로 중국이 느끼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고 봐야 할 대목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대중 견제구도가 본격화되는 와중에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다면,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반도가 한국 주도로 통일된다면 지정학적 판도는 중국에 크게 불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핵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기막힌 ‘베이징 립서비스’

    5월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3 재외공관장 초청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건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윤병세 외교부 장관 부부, 박 대통령, 권영세 주중대사 부부, 안호영 주미대사.

    박근혜 정부도 뒤통수 맞을라

    중국이 북한에 물리적 압박을 가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시나리오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에너지 지원 중단이나 교역 단절 같은 ‘초대형 카드’는 일단 써버리면 북한 측의 이후 행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2010년 5월 당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魚·성문에 난 불을 끄려고 호수의 물을 다 퍼 쓰면 결국 호수의 물고기가 말라 죽는다)”라는 격언은 이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그간 북·중 관계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면, 평양은 한국이나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비슷한 방식으로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근 행마를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이러한 ‘립서비스’에 한국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으리라는 점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완전히 일체화되는 것을 막고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중간선을 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미끼를 던지는 것뿐이라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단기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전술적 행보’일 뿐, 속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두에서 살펴봤듯 이러한 베이징의 계산은 중국 처지를 최대한 배려하고 보호하는 청와대와 외교부의 태도를 통해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은 탈북자 인권문제나 대량살상무기 기술 이전 같은 중대사안이 불거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학계의 한 저명한 중국 전문가는 “‘우리랑 잘 지내면 북한을 버릴 수도 있다’는 손짓에 혹해 중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이명박 정부의 안보당국 핵심 관계자들은 “중국도 북한 소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공공연히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명박, 후진타오 두 정상 사이의 긴밀한 유대감에 ‘대국(大國)’으로서의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할 중국의 처지,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겹친 말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천안함 사건의 북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정부 관계자들의 기대는 오판으로 끝났다. 평상시에는 한껏 친분을 과시하지만 결정적 국면에서는 평양으로 기울고 마는 중국의 ‘플레이’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박근혜 정부 또한 그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수 싸움에 말려드는 듯해 불길하다”는 한 전직 안보부처 고위당국자의 말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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