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7

2013.03.04

밤엔 19홀…한국식 접대문화가 뭐기에

한류 골프② ‘동남아’ 편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3-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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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필리핀에 갔을 때다. 세부라는 남쪽 섬인데, 공항이 자리한 섬 동쪽엔 골프장도 대여섯 개 있어 많은 한국인 골퍼가 이용한다. 반면 섬 서쪽에 자리한 하나뿐인 골프장에는 손님은 뜸하다. 섬을 넘어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한국인도 별로 애용하지 않는다. 다만 이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한국인이라 홍보 차원에서 몇몇을 불러 휴양지로 소문내고 있었다. 직접 가서 골프장을 보니, 한국 골프 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호응도가 영 별로였다. 좁은 페어웨이, 메마른 잔디, 풀이 우거진 그린 등이 골프장이라기보다 자연 그대로 노니는 땅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했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열악한 골프장 시설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이곳 골프장의 골프 문화가 필리핀 현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한국 하면 경이로운 나라, 지구상에 하느님들이 사는 곳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침 사장이 고향 후배라 아무 준비 없이 도착해 바로 라운드를 했다. 동남아 골프의 매력은 개인에게 붙는 캐디 한 명이 모든 서비스를 다 해주기에 말은 잘 통하지 않더라도 기분이 좋다는 점이다. 늙은지 젊은지 구분되지 않는 캐디가 어설픈 한국말로 똑바로, 왼쪽 오비, 오른쪽 퐁당 등을 가르쳐주고 골프장을 설명해주면서 따라다닌다. 버디라도 한 번 하면 아주 미쳐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한다. 용돈을 1달러씩 더 벌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골프 문화에 깊이 매료된 캐디가 스코어 카드를 적는데, 1번 홀과 마지막 홀은 전부 파로 기록했다. “왜?”라는 한국말도 알아듣는데, 대답인즉 코리안 룰이란다. 시키지 않아도 코리안 룰이라는 단어를 쓰고, 우리네 골프 습관 그대로 알아서 척척 하는 데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라운딩을 마치고 사장으로부터 골프장 인수와 운영, 지역 시장이나 경찰과 함께 사업을 정착해나가는 이야기 등을 들으니 한류 골프가 왜 동남아에서 위력을 떨치는지 이해가 됐다.

    동남아는 한류 세계화 현장



    동남아는 인류문화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온몸으로 알게 해주는 곳이다. 열대지방 사람은 대체로 체구가 작고 왜소하다. 반대로 추운 지방 사람은 장대하다. 이유는 햇빛을 받는 몸 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몸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필요한 만큼의 햇빛만 받아들이기에 환경에 따라 몸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이나 가치관도 그들만의 환경에 적응해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도 식량이 먹을 만큼 있으면 게을러진다. 북쪽지방 사람이 용감하고 생존 투쟁에 적극적인 이유도 먹을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사람이 작고 왜소하면서 게으른 것은 환경에 적응한 인간의 문화 형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우리식 잣대로 그들을 평가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근래 한국 문화가 그들에게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비슷한 체격과 성격에도 고급스럽게 비치기 때문이다. 돈 쓸 줄 알지, 다독거릴 줄 알지, 호쾌하지, 캐디도 배려할 만큼 신사답지… 이런 점들이 그들로 하여금 한류에 빠지게 한 것이다.

    필리핀에서 골프장 사업을 할 때 가장 애먹인 사람이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작은 인허가나 인부 채용에도 조건을 걸면서 뒷돈을 요구하는 문화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사업할 때 공무원을 상대하는 정도로만 해도 엄청난 호의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 공무원은 뒷돈을 받을 때도 아닌 척하고, 적당한 접대와 더불어 다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까지 있으면 적극 도와주지만, 법과 규정을 지키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면 까다롭게 군다. 쉽게 말해, 공무원 자리가 위태롭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뒷거래가 결합됐을 때 사업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필리핀에서도 이 방법이 확실히 통용됐다고 한다. 단, 이쪽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거래를 요구해와 한국보다 쉬웠다고. 예를 들어, 골프장을 운영할 때 캐디와 경비는 현지인으로 30여 명을 확실하게 채용하라, 그들 보수는 얼마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조건으로 허가를 내줄 테니 시장에게는 얼마, 자기에게는 얼마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사장은 흔쾌히 동의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보다 2배 더 많이 뇌물을 줬다고 한다. 이때부터 모든 사업이 물 흐르듯 진행됐는데, 정말이지 한국에서 하는 사업보다 몇 배 더 쉽고 일하는 재미도 있었다는 것이다. 사장이 가는 곳마다 권총 찬 경비가 경호해주지, 경찰 차량으로 호위해주지, 술집에서도 아가씨들이 황제 대하듯 하는 것이 보통 재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확실한 한류 세계화였다.

    “형, 내가 한국에서 아무리 돈을 쓰고 공무원을 상전으로 대해도 여기만큼 인정을 못 받아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만큼 단련됐기 때문에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죠. 결국 한류라는 것은 우리 문화 세계화인데, 우리식 접대문화의 한류는 정말이지 세계 초일류급이에요.”

    두 번째로 언급하는 한류는 동남아 골프의 섹스 문화다. 겨울에 동남아로 떠나는 남편을 마누리가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정석대로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석인지는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다 알 것이므로 생략한다. 다만 한국인이 현지 여성에게 한국 밤 문화와 침대 문화를 전파시킨 점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밤엔 19홀…한국식 접대문화가 뭐기에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기본이 150달러다. 우리 돈으로 16만 원쯤 된다. 팁으로 주는 돈까지 합치면 200달러다. 이 돈을 매일 저녁 쓴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돈은 논외로 쳐도 섹스골프가 과연 한류 대명사로 통해도 되는 것인가.

    필자는 매년 두어 번씩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에 가는데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제가 밤 골프다. 19홀 문화는 해방감에서, 또 ‘모든 인류는 같은 조상이므로 애국하는 지름길은 한국 유전자의 세계 전파’라는 거룩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문제는 그 나라 남성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19홀 문화다. 때론 경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부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울타리 바깥쪽에서 남자들이 삶은 달걀을 파는데, 하루 종일 삶은 달걀 한두 개 파는 정도지만 끈질기게 붙어 앉아 우리를 바라본다.

    한 번은 지나가는 말로 “그냥 들어가시죠” 했더니, 이 녀석 우리말을 다 알아듣고 툭 던진다. “여자 필요하지 않으십니까”라고. 그것도 새끼손가락을 쫙 펴면서 말이다. 아하! 이놈이 삶은 달걀을 파는 게 아니라 여자를 파는구나. 호기심이 생겨 또 물었다. “얼마요?” 거침없이 나오는 답변이 “100달러!”다. 싸다 싶어 동반자에게 물었더니 같이 라운딩하는 지역 운영부장이 답해줬다. “형, 그놈 마누라예요. 이놈들이 지 마누라 하룻밤 빌려주고 100달러 벌어요.” 충격이었다. 어째 이런 일이….

    좀 더 고상한 문화는 없을까

    아무리 문화 차이라지만, 그리고 일거리가 없어 남자들이 놀고먹는 곳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생존을 택할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놈 마누라 빌리는 한국인이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의외로 많다고 한다. “햐, 취미 한 번 독특하네”라는 필자 말에 돌아온 대답도 걸작이다.

    “한국 오입쟁이 속설 들어보셨어요? 일도(一盜), 이수(二修), 삼랑(三娘), 사기(四妓), 오첩(五妾), 육처(六妻)라고. 첫 번째가 남의 여자 도둑질해 먹기, 두 번째가 비구니나 무당, 세 번째가 숫처녀, 네 번째가 프로 기생, 다섯 번째가 꼬불쳐둔 애인, 마지막이 마누라라는 뜻이에요. 여기서는 일도가 좋아서 하는 놈도 많아요.”

    아하! 그러니까 내 마누라라도 남한테 가면 첫 번째라는 말이구나. 윤회 법칙도 여기서 설명되네.

    어쨌든 한류는 여러 방면에서 유통된다. 뇌물, 성 접대, 침대 문화까지. 그래도 한 번쯤 고민하고 볼 일. 과연 먹고 자고 싸는 것만 제일일까. 좀 더 고상한 우리 것은 없을까. 아니, 있는데도 전파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단지 문화 측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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