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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미군 철수 이후 혼돈 속 희망…치안 상황 개선 한국 기업도 적극 투자

  • 바그다드=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1. 바그다드 저소득층 거주지에 사는 어린이들.

아바스 알카비(49) 씨는 이라크 비스마야의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비스마야는 이라크에서 재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바그다드 동남쪽 10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에 60만 명이 거주하는 신도시가 들어선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밀어붙이는 100만 가구 건설의 첫 사업. 한화건설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총괄한다.

알카비 씨가 소리 내 웃으면서 건네준 명함에는 ‘한화건설 인적자원팀 매니저’라고 적혀 있다. 영어 문서를 이라크어로 번역하는 일 등을 한다고. 그는 중동 명문이던 바그다드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라크는 실업률이 40%에 달한다. 대학을 나와도 일할 곳 찾기가 어렵다. 반듯한 직장을 구했으니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최근 30년간 전쟁 잇달아

“우리는 저주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27세 때 걸프전이 일어났습니다. 1991년부터 서방의 경제 제재가 시작됐고요. 한창 일할 나이에 국가 경제가 엉망이 됐고, 이윽고 미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이라크는 최근 30년간 잇달아 전쟁을 치렀다. 1980~88년 이란과의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 91년 걸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2006~2007년 내전이 티그리스의 유려한 강물이 빚어놓은 대지를 할퀴고 지나갔다.



2011년 12월 이라크 사람들이 공공의 적으로 여기던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으나 이라크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종파 및 정파 간 대립이 가파른 데다 내전이 남긴 앙금 또한 가시지 않아서다.

알카비 씨에게 “사담 후세인 시절이 그립냐”고 묻자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래를 친다.

“사담을 좋아하는 이라크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는 폭정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요. 이라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나쁜 사람이에요. 사담이 이끄는 이라크가 싫어 리비아로 떠났더랬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그곳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어요. 사담이 권좌에서 쫓겨난 후 희망을 품고 이라크에 돌아왔지만 나라꼴이…. 미국이요? 사담만큼 미워요.”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낱말 하나로 답한다.

“Stability(안정).”

나라가 안정되는 게 모든 이라크인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냉혹하다. 이라크 전역에서 2012년 12월 31일 연쇄 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날 바그다드 중심가에선 시아파 성직자의 행사장을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5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했다. 연말 시작된 수니파의 반정부 시위는 2013년 초까지 이어졌다.

수니파는 누리 알말리키 총리를 이란 앞잡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알말리키 총리의 퇴진과 수니파 수감자 석방,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시아파 65%, 수니파 35%로 구성된 이라크는 수니파가 장기 집권하다 2003년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시아파인 알말리키 총리와 수니파 주도의 정당연맹체 이라키야를 양축으로 정치권이 다투고 있다.

테러집단은 원래 수니파보다 시아파에 더 많았다. 시아파 테러리스트는 미군 철수 이전 미군과 서방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시아파 내부가 친미와 반미로 갈려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미군 철수 이후 시아파가 벌인 테러는 극소수다.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2. 시내 곳곳에 테러를 감시하는 초소가 설치돼 있다. 3. 전쟁 탓에 폐허가 된 옛 상점가.

“생각보다 안전합니다”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수니파의 테러 활동은 현재 외국인이 아닌 시아파를 향한 공격에 집중해 있다. 과격집단은 시아파와의 대립을 통해 수니파의 결속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한 알말리키를 실패한 총리로 만들려고 한다.

시아파 축제 때마다 수니파에 의한 테러가 발생한다. 2012년 11월 29일 시아파 성일(聖日) 아슈라를 맞아 성지 순례자를 겨냥한 폭탄 공격이 잇달아 발생해 31명이 사망하고 98명이 다친 게 대표적이다. 아슈라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손자 이맘 후세인이 서기 680년 수니파에 의해 살해된 날로, 시아파 최대 애도일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라크 바그다드 도심에서 만난 알리 무히(42) 씨는 한 경호업체에서 팀장으로 일한다. 경호팀 한 개는 방탄차량 6대와 경호원 12명으로 구성된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10개 팀을 운영한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2주일 전 작은 폭탄이 터졌는데, 우리가 잘 안내해 고객이 다치지 않았습니다. 순수 이라크 경호회사와 외국 합작 경호회사가 있습니다. 우리 같은 이라크 경호회사가 실력이 더 뛰어납니다.”

그는 고객을 경호할 때 방탄차량 2대를 투입한다. 차량이 고장 나거나 피격당하는 경우에 대비하는 것. 차량마다 무장경호원 2명이 탑승한다. 하루 경호받는 데 한국 돈 200만 원가량이 든다. 방탄장비를 갖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측면 유리창에 총알 자국 하나가 선명하다. 총알 흔적은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머리를 향하고 있다.

무히 씨가 “긴장하지 마라(Cool down)”면서 “2년 전 피격당했으나 방탄유리 덕에 고객은 다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팀원 한 명이 2008년 바그다드의 한 검문소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찍은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준다. 테러리스트가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총으로 쏘는 화면이다.

“과거의 바그다드는 이렇듯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생각보다 안전해요.”

일본 도요타 랜드쿠르저가 알자드리아가(街)를 달린다. 장갑차가 방탄시설을 갖춘 랜드쿠르저의 호송차량이다. 장갑차가 호송하는 차량에는 VIP가 타고 있다. 주요 도로에는 1~2km 간격으로 군과 경찰 초소가 서 있다. 또한 경계탑을 세워놓고 도로를 감시한다. 도로엔 로켓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호벽 T월(T-wall·T자 모양의 강화 콘크리트)이 설치돼 있다.

바그다드 명물이던 바빌론호텔이 옛 영화를 잃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보인다. 그린존(Green Zone·특별경계구역) 밖의 호텔은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저소득층 거주지는 철거가 한창인 재건축 현장을 연상케 한다. 1980년대 건설한 도로는 정비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데다 신호등, 표지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교통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라크 고위 관료와 외국인은 무장경호원이 탑승한 방탄차에 방탄조끼를 입고 올라타 경호를 받으면서 이동한다. 장갑차 대신 무장트럭을 호송차량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트럭 짐칸에 엄폐물이 2m 높이로 설치돼 있다. 경호원이 엄폐물 안에 숨어 기관총을 들고 전방과 측방을 경계하면서 뒤따라오는 고객 차량을 경호한다.

도심 밖에서 그린존에 들어가려면 최소 검문소 4개를 지나야 한다. 신분증을 살펴보고 폭발물 검사를 한다. 수년간 그린존 안에서는 폭탄 테러가 벌어지지 않았으나 그린존 입구에서 테러가 발생한 적이 딱 한 차례 있다. 2012년 9월 17일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그린존 입구에 차를 몰고 와 폭탄을 터뜨려 7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친 것.

경호 비즈니스업 활성화

2007년을 정점으로 테러 발생 횟수와 희생자 수가 빠르게 줄고 있지만, 바그다드는 여전히 위험한 도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각국 기업 임직원들이 재건의 삽을 뜨기 시작한 이라크 시장을 탐색하고자 바그다드를 찾는 터라 경호업이 활황이다. 바그다드에서 고용 창출이 가장 활성화한 분야가 경호 비즈니스다.

2006년 2만8000여 명에 달하던 테러 사망자는 2011년 4000여 명으로 줄었다. 하루 평균 12명 수준으로 테러가 급감한 것. 2012년 사망자는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치안 상황이 과거보다 나아진 데다 경호업체가 맹활약하면서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이후 테러로 사망하거나 납치된 외국인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2012년 초만 해도 바그다드 공항과 도심 그린존을 잇는 도로에는 티월이 끊기지 않고 서 있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동안 도시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것. 현재는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도로 중 극히 일부분에만 티월을 설치했다. 치안 상황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방증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라크의 현재 상황을 ‘비대칭 전쟁’이 마무리되는 단계라고 분석한다. 비대칭 전쟁은 국가 간 전쟁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살상 수법이 잔혹하다.

2006~2007년 내전 당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사라졌지만, 안정이 찾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는 재건의 삽을 뜨기 시작했다.

알말리키 총리는 재건사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둬 국민에게 신망을 얻으려고 한다. 이라크 정부는 2013년부터 5년간 2500억 달러를 재건사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에 50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또 “2025년까지 주택 200만 호를 짓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1단계로 500억 달러를 투입해 100만 호를 짓고 있다.

나라가 초토화하고 민초의 삶은 피폐하지만, 정부는 가난하지 않다. 연간 3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2500만 배럴을 수출한다. 원유 수출로 월 8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수출의 95%, 재정수입의 90%가 원유 수출에서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라크의 원유 생산능력이 2020년 6100만 배럴, 2035년 8300만 배럴로 늘어나리라고 예측한다. 재건사업에 쓸 돈은 부족하지 않은 것.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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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대생 두 명이 거리를 걷고 있다. 5. 바그다드 시내의 한 건물. 6. AK-47 소총을 든 민간 경호업체 직원들.

막강한 오일달러 확보

“이라크는 현재 가격으로 20년 동안 원유만 팔아도 20조 달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으로 판단할 때 그 정도예요. 주택건설은 물론이고 정유공장, 발전소, 송배전시설을 새로 짓고 국영기업 현대화에도 나서야 합니다. 한국 기업에 먹을거리가 널린 셈이죠. 이라크는 그들 나름대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경제력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도 갖고 있고요.”

보수하거나 새로 지을 것이 널렸고 자금도 상당히 확보한 상태인데, 정치 불안정 탓에 재건사업에 나서지 못한 게 바그다드의 ‘어제’다. 바그다드의 ‘오늘’은 재건이라는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대사관을 나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앞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슬픈 눈빛으로 손을 내민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고된 삶을 사는 저 녀석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바그다드는 어떤 모습일까.

바그다드 시내에 쇠락한 모습으로 서 있는 무역전시장에서 만난 하마드 알하산(34) 씨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같은 부자 나라가 될 필요는 없다. 전쟁, 테러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화약 냄새 여전한 바그다드 ‘재건’ 바람 솔솔

7. 한화건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 8. 바그다드 시민들은 노점상에서 생필품을 구매한다.





주간동아 870호 (p50~53)

바그다드=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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