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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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탕평이냐, 또 다른 패권이냐

박근혜 당선인 예비역 역량 통합…자주국방에 걸맞은 군 인사 전환점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입력2013-01-07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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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 탕평이냐, 또 다른 패권이냐

    2012년 8월 15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박근혜, 박지만 남매.

    ‘장·포·대’라는 말이 있다. ‘장군을 포기한 대령’, 즉 군대에서 장군 진급 시기를 놓친 나이 많은 대령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말 의미가 바뀌었다. ‘장관 되기를 포기한 대장’, 즉 선거철이면 정치권에 줄서는 예비역 장성이 많다 보니, 그들과 달리 비교적 정치에 초연하고 강직한 4성 장군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이다.

    예비역의 정치세력화 약화

    이처럼 정치군인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 등장한 것은 5년 전 17대 대통령선거(대선) 때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원하던 비공식 예비역 조직 4개, 이름 하여 용산포럼(대표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 마포안보포럼(대표 박승부 예비역 소장), 서초국방포럼(대표 김인종 전 2군사령관), 한국안보포럼(대표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이 각기 정치세력화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였다. 이 4개 조직은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를 지원하던 한성포럼에서 분화한 것으로, 선거 후에도 명맥을 유지하다 더 확장한 형태로 17대 대선 때 출현했다.

    17대 대선 이후 서초포럼의 김인종 예비역 대장은 대통령 경호처장에 임명되고, 한국포럼의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은 성우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초기 군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구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당시 국회 부의장과 육사 14기 동기로 막역한 사이라는 점, 김인종 경호처장은 이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 결과 국방부 장관 인선과 주요 국방직위 진출을 둘러싸고 예비역 간 전쟁이 공공연히 벌어졌고, 예비역 조직은 국방 권력을 만드는 줄기세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번 18대 대선에서는 보수정당 내부에서 서로 경쟁하던 예비역의 정치세력화가 약화되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개 캠프로 분화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3개 캠프 모두 ‘노무현의 남자’가 점령했다는 점이다. 먼저 박근혜 후보 진영을 보면, 전 국방부 장관(김장수 국방안보추진단장), 육군참모총장(남재준 국방안보특보), 국군기무사령관(송영근),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김병관) 등 눈에 띄는 인사들이 모두 참여정부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의 합참의장(한민구),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성출) 출신도 있지만, 대선 캠프의 국방안보추진단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특별한 직책도 없다. 참여정부 때 마지막 외교안보수석이던 윤병세 씨가 외교통일추진단장까지 거머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노무현 군인맥이라고 할 만하다.



    육사 35~38기 동생 인사?

    軍 탕평이냐, 또 다른 패권이냐
    박근혜 캠프에 참여정부 군인맥이 대거 포진했다는 점은 대선 기간에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11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 및 그 직후 이어진 7차 남북 장성급 회담의 전 과정에 대한 새누리당의 정보력이 매우 돋보였던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 대한 ‘NLL(북방한계선) 안보 공세’ 콘텐츠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했다. 문 후보의 “남북 장관급 회담 당시 김장수 전 장관의 경직된 태도” 발언과 7차 남북 장성급 회담 당시 북측 대표 발언까지 끄집어내면서 문 후보를 압박했던 것.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당시 남북 장성급 회담 대표를 지낸 예비역 장성까지 캠프에 불러들여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문 후보 측은 국방장관 회담과 장성급 회담의 실제 내용을 알지 못해 대선 기간 내내 새누리당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노무현의 외교·국방 인사’들은 안보 공세의 다른 한편으로, 박근혜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명박과 노무현의 중간쯤 되는 중도적 영역으로 이끄는 구실도 했다.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 과거 남북합의(6·15, 10·4) 존중 등 기존 새누리당의 보수색을 상당 부분 탈색하는 전향적 정책도 쏟아냈다.

    또한 몇몇 예비역 유력자에 의해 무질서한 정치세력화가 이뤄졌던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와 달리, 국방안보추진단이라는 공식 조직으로 예비역의 역량을 통합한 점은 긍정적 현상으로 보인다. 이 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시점에 맞춰 예비역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취업전쟁’의 부작용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 이 대통령의 청와대처럼 군 인사와 국방사업에 지나치게 간섭하면서 군을 길들이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을 전망이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일부 정치군인을 주축으로 군을 편 가르고 차별하는 패권적 군 운영에서 탈피하는 탕평인사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의도 주변에서는 대선 때 영입한 예비역 장군이라고 해서 박근혜 정부 초기 보은성 인사 혜택을 받을 일은 없으리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2월 새로운 정치권력이 구성될 무렵에는 대선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예비역들이 군 인사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군 최고위급으로 진출할 것으로 보이는 육사 35~38기 그룹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軍 탕평이냐, 또 다른 패권이냐
    특히 군에서는 이 대통령 당선 당시 육사 14기에 대한 ‘형님 인사’가 있었다면, 박 당선인의 경우 육사 37기에 대한 ‘동생 인사’가 나타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의식하는 분위기다. 대선이 끝나고 지난해 말 시중에는 박지만 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명의 군 주요 인사 명단이 유포되는 등 가볍게 넘기기에는 심상치 않은 정보들이 나돌았다. 특히 군 안팎에서는 2010년 3월 발생한 국방부 탄약과장 S 준장의 청와대 진급 로비 사건을 상기하며 “언제든 군 인사비리 뇌관은 폭발할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당시 청와대에 금품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진 S 준장이 육사 37기고, 그 주변 예비역 동기들이 이권과 진급 로비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개입 나쁜 선례 남겨

    대선 당시 정치권에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될수록 이런 괴소문은 더 기승을 부렸다. 여기에 지난해 말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군 인사에서 처음 장군으로 진급한 육사 42기의 경우 특정지역 출신은 한 명도 없는 반면, 군 주요 직위를 대구·경북(TK)이 독식하는 패권적 운영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비록 박 당선인과 박지만 씨가 군 인사에 대해 반듯한 자세를 취한다 해도 군의 인사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와 있는 지금, 과연 예비역들이 유력자와의 친분을 사칭하면서 사고를 칠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에는 최근 정치집단, 또는 정치권력이 유달리 군을 자신에게 줄세우고 싶어 하고, 군 일부에서도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속성이 강화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군을 손쉽게 장악하겠다는 정치권력의 욕망이 정치군인을 다수 양산했고, 그 결과 예비역 세력이 군을 흔드는 저간의 사정이 이어져왔던 것이다.

    한편 진급적체와 보직전쟁으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고급 장교들은 정치권과의 친분을 자신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여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가 인물 검증을 명분으로 군 인사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풍조는 박 당선인의 결심만으로 단기간에 개혁하긴 어렵다. 어쨌든 청와대 초기 인사에서 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등 3개 직위에 대한 인사 방향에 따라 주요 직위 인사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군 인사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방향이 과연 탕평인지, 아니면 변종 패권인지 지켜볼 일이다.

    야권 캠프 5060 불안감 자극
    문재인 캠프에는 노무현의 적자를 자처하는 캠프답게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윤광웅), 청와대 안보실장(백종천), 3군 사령관(백군기 안보특별위원장), 해군 참모총장(송영무)이 포진했다. 이 밖에도 참여정부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문정인), 국정원장(김만복), 통일부 장관(이종석, 이재정)이 외곽을 둘러쌌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도는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해 정권 실패의 책임을 상당 부분 회피한 반면, 문 후보는 노무현의 책임까지 걸머져 정치적 부담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책임정치, 또는 정치 도의적 측면에서는 이명박의 자산과 부채를 거부한 박근혜보다 노무현의 자산과 부채를 계승한 문 후보 측의 태도가 맞다. 그러나 문 후보의 외교·안보 진영이 노무현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5060세대의 불안감을 자극해 득표력을 크게 잠식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문 후보 측이 의제를 주도하지 못한 채 새누리당에 거의 끌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한편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우도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조영길), 외교부 장관(윤영관), 공군 참모총장(이한호), 해군참모총장(문정일), 통일부 차관(이봉조) 등으로 구성돼 문 후보 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 후보가 처음부터 “NLL 수호” “금강산관광 조건부 재개” 등을 거론해 문 후보 측과 거리를 둔 것은 캠프에 영입한 예비역들의 조언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호 전 총장의 경우 안 후보의 영입 제의에 아예 “안보 보수화”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후보로부터 승낙을 받았다. ‘노무현의 남자’들이기는 하지만 참여정부 노선에 비판적이던 인사들을 활용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이번 대선에 북풍 변수는 분명히 존재했고, 야권 캠프들도 그 나름대로 이를 관리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문제라는 특성상 더 장기적 안목에서 평화, 안정, 번영을 향한 선명한 국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국가 지도자상을 정립하는 데는 여야 모두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그보다는 국방 운영과 관리 문제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국민과의 공감 기회를 포착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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