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2012.12.31

낙타

  • 신경림

    입력2012-12-31 08: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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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길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다. 저승은 신생의 빛나는 순간과 연결돼 있다. 사막과 바다도 서로 연결돼 있다. 슬픔도 아픔도 다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정다감한 사람 하나가 필요하다. 그들은 낙타 걸음으로 내일을 걸어간다. 연말연시…, 이 시간의 간이역은 좀 더 따뜻한 곳으로 가는 길목이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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