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2012.12.24

즐기는 것이 곧 이기는 최고의 방법

골프병법3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2-12-24 0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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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기는 것이 곧 이기는 최고의 방법
    전쟁, 스포츠의 12개 원칙을 한꺼번에 설명하려니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다. 골프가 스포츠라면 다 들어맞는 소리지만, 신선놀음이기 때문에 절반 정도만 맞다. 하나 인생에는 이게 다 들어맞는다. 삶 자체가 경쟁으로 시작해 적응으로 맺는 것인데, 이때 체험 자체가 소중하다. 체험을 통해 얻은 기억이 판단의 기초, 전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12개 원칙 가운데 4개는 지난 호에서 설명했다. 나머지 8개 원칙은 집중과 절약, 창의와 통일, 사기(士氣)와 간명이다. 목표의 원칙이 첫 번째고, 나머지는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그중 집중과 창의, 사기만 논하려 한다. 이 원칙들은 기업 경영과 인생에 다 통용되지만, 골프를 놀이로 설명하려면 이 3개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먼저 집중의 원칙. 이 원칙은 말로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 빗대어 설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려면 병력, 장비, 군수물자 등 모든 수단을 그곳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정치인의 경우, 군사 목표 대신 정치적 목표를 꼬불쳐 두고 전쟁을 요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집중을 방해하곤 한다. 골프를 나갈 때 정치인과 같은 사람은 마누라나 직장상사, 거래처 갑 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목표를 혼란시키는 업무나 잔소리가 많아도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 이것이 비결이다. 골프가 안 되는 핑계가 108가지라고 한다. 새로운 핑계가 하나 더 생겼다는데, “거 이상하게 안 되네”가 그것이다. 이상(異常)하게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평상(平常)과 다르다는 뜻이다.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 109번째 핑계다. 어제 들은 110번째 핑계가 또 있다.

    “얌마, 너하고만 하면 안 돼.”

    모든 핑곗거리가 다 사라졌음에도 너하고만 하면 안 된다? 그 친구한테서 집중을 방해받는 요소가 나온다는 뜻이다.



    고수끼리 경쟁에서 서로가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말이 있다. 나 같은 경우도 한 번 걸렸는데, 질문이 상당히 수준급이다. “어이, 김 도사. 스윙할 때 호흡을 어떻게 하나? 내공을 축적하려면 호흡을 멈추라는데, 그게 맞나?” 단전호흡을 전공해 강의까지 하니 한 수 배우겠다는 질문인 줄 알았다. 나 자신도 스윙할 때 호흡을 멈추는지, 내뿜으며 후려치는지 궁금했다. 그걸 확인하느라 두 개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했다. 아차, 당했다!

    공을 찍어서 홀컵으로 화려한 초식

    질문한 동반자에게 역습으로 대답했다. “호흡을 참고 있다가 맞는 순간 숨을 내뿜어 봐. 비거리 10야드는 더 나간다네. 파가 왜 파인 줄 아나? 숨을 내뿜는 소리, ‘파하!’로 스윙하면 무의 세계로 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야.”

    ‘구라’인 줄 모르고 열심히 따라하는 놈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짜식, 그렇게 백날 해봐라. 아니나 다를까, 안 하는 척하면서 실전에서 응용해보려다 그놈 역시 당했다. 집중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새가슴이라 불리던 최나연이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은 멘탈이다. 결국 집중의 원칙으로 멘탈을 깨우친 것이라고 본다.

    창의의 원칙.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은 대비할 방법과 시간이 충분하다. 전쟁 시 병법과 전쟁 논리를 교과서대로 딱 정해놓고 한다면, 적은 그 방법이 빤히 보여 이겨놓고 싸우는 셈이다. 이것을 역이용하는 것이 창의의 원칙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마추어들이 흔히 하는 게임으로 스킨스 게임이 있다. 마지막 홀에서 주로 하는 방법이 딩동댕 게임이라고 해서 롱게스트, 퍼스트 온, 니어리스트, 홀컵 동! 등이 있다. 이 네 가지 다 돈 따먹기 게임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마지막 퍼팅을 할 때 대부분 노터치 플레이라는 점. 손을 대거나 공을 닦아서도 안 되며 그린에 놓인 그대로 퍼팅하는 것이다. 홀컵 앞에 상대 공이 놓여 있어도 노터치다. 상대가 못 넣게 세게 쳐내는 수밖에 없다. 즉, 나도 못 먹고 상대도 못 먹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작년 여름, 선배 두 명과 라운딩을 하는 중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친 공이 선배의 퍼팅 라인에 일직선으로 서 있고, 선배 공은 내 공 바로 뒤에 서 있어 직선상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당구처럼 ‘오시’(공을 앞으로 똑바로 나가게 하는 기술)로 밀어도 내 공이 홀인되지 선배 공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모두 낄낄거리며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퍼팅하는 선배가 자세를 바꾸어 왼손 퍼팅 자세를 취한 것이다. ‘저게 무슨 술법이야’ 하고 바라봤는데, 퍼트의 반대 부분, 끝이 바닥에 닿는 부분으로 공을 찍는 것이었다. 공이 붕 뜨더니, 내 공 위로 날아 굴러가는 것이다! 우와, 이런 신기한 초식이 있나. 내공은 없어도 초식은 화려하다더니…. 선배 공은 홀컵으로 굴러 들어갔다. 동!

    주말 골퍼를 잡는 심리적 기습

    의기양양해진 선배가 하는 말. “녀석아, 창의를 말만 하지 말고 적용해봐.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 이게 창의야.” 평소 관념과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이 창의고, 퍼팅은 그린에서 굴러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히야, 그린에서도 찍어 치기가 되네.

    사기의 원칙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으랴. 누구든 신나게 싸우면 이긴다. 즐기는 골프가 바로 사기의 원칙이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즐겨라! 그리고 무조건 재미있게 하라. 이긴다고 사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져도 사기를 올리면 이긴다. 골프의 궁극적인 목적은 즐기는 것이다. 상대를 잘 치도록 도와주면 자신도 잘 치게 된다. 왜 싱글패 만들고 홀인원컵을 만들 때 동반자의 이름을 새기는가. 당신의 도움이 있었기에 내가 성취했다는 것을 길이 기념하기 위해서다. 잘 되게 서로 도와주는 것, 결국 인생에서든 골프에서든 즐기는 것만이 이길 수 있는 최고 술법인 것이다. 서로 사기를 올려가며 하는 경기, 다른 스포츠에 없는 골프만의 묘미인 것이다.

    기습의 원칙. 적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대처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대에 공격하는 것이 기습이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다는 사실을 빤히 알고서도 몇 가지 기만술에 대처를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소위 말하는 꼼수에 당한 것인데, 정법을 놔두고 꼼수를 부리는 경우는 위급할 때 쓰는 수법이다.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꼼수, 바로 기습이다.

    하지만 고수일수록 일반적인 기습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로 심리적 기습! 충격을 받아 몸이 굳게 만드는 술법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실전에 들어가게 만들고,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심리적 기습인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가 있으면 하루 전에 초청하라. 주말 골퍼가 미리 준비할 마음의 여유를 뺏는 것이 기습이다. 첫 번째 홀부터 내기를 하라. 나는 준비가 돼 있는 반면, 상대는 으레 첫 번째 홀은 화면 조정시간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게 마련이다. 간단하게 한마디 말로 기습하라. “뒤 팀 빨리 온다” “얼른 퍼팅해” “라이가 약간 굽었네” 등 도와주는 척하며 심리를 흔들어라. 꼼수지만 한 번쯤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모든 일은 돕고 뺏고 하면서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의 목표는 곧 기억에 남기는 것이다. 기억은 영혼의 성장 재료가 된다. 재료를 풍부하게 남기면 그만큼 빨리 성장한다. 기억에 새길 레코드판, 아카식 레코드라고 한다. 인도 아유베다 철학에서 나온 용어다. 골프가 끝난 뒤 기록은 스코어 카드다. 인생의 기록은 아카식 레코드다. 무엇을 당신의 영혼 기록에 남길 텐가. 병법과 처세술의 관계를 숙고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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