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7

2012.12.17

티베트 분신 항거 ‘거센 불길’

12월 기준 100명 갈수록 악화…시진핑 중국 총서기의 최대 과제로 부상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12-17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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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분신 항거 ‘거센 불길’
    중국과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하는 티베트 승려와 주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2009년 2월 27일 승려 벤 타페이가 티베트기와 달라이 라마 14세(달라이 라마) 초상화를 들고 분신자살한 이래 분신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12월 8일 중국 쓰촨성 아바티베트족창족자치주와 간쑤성 간난티베트족자치주에서 승려 쿤촉 펠기알(24)과 페마 도르지(23)가 각각 분신해 숨졌다.

    그 이튿날도 여학생 벤첸 키(17)가 분신자살했다. 티베트 인권단체들은 티베트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분신한 승려와 주민이 12월 9일 기준 95명이라고 집계했다. 그중 82명이 올해 분신했으며 특히 11월에 29명이 집중됐다. 지금 추세라면 조만간 분신한 사람 수가 1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젊은 승려의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태워 부처에게 바친다는 의미)으로 시작한 분신사태가 지금은 14세 소년에서 두 아이를 둔 엄마까지 나이,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분신한 사람은 대부분 사망했다. 중국 정부는 분신한 사람 수나 사망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티베트 인권단체들은 사망자를 81명으로 추산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중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이 어디에서 치료받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티베트 지우기’에 대한 저항

    분신한 사람을 성별로 보면 남성 82명, 여성 13명이다. 승려와 전직 승려가 대다수지만 농부, 유목민, 시인, 주부, 학생, 식당 종업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연령은 20대가 절반이고 50대와 60대도 있다. 분신사태는 티베트자치구(중국명 시짱자치구)보다 쓰촨성, 간쑤성, 칭하이성 등 중국의 다른 성에 편입된 티베트인 자치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중국의 다른 성들에는 전체 티베트인 600만 명 가운데 400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티베트 분신사태가 의미 있는 이유는 철저히 ‘비폭력’이기 때문이다. 만일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비폭력 독립운동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티베트인 역시 다른 소수 민족들처럼 무장투쟁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강인한 민족이지만, 정신적 지도자의 말에 따라 비폭력 방식을 고수해왔다. 티베트 민족과 함께 국가를 세우지 못한 팔레스타인과 쿠르드 민족이 사는 지역에선 무장투쟁이 계속된 점을 감안한다면 티베트인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분신한 사람 가운데 단 한 명도 불이 붙은 상태에서 중국인을 위해하거나 중국 정부 시설물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분신하는 티베트인은 타인 생명을 해치지 않고 홀로 불타는 고통을 감수했다. 자신만을 희생해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염원하며 쓰러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티베트 분신사태는 세계 정치사에서 유래가 없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중국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도 분신사태가 계속된다는 점은 티베트인들의 독립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11월 분신을 시도한 사람이 특히 많았던 이유도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공산당의 제18차 전국대표대회(11월 8∼14일)가 열리는 때였기 때문이다.

    티베트 분신 항거 ‘거센 불길’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대화하는 달라이 라마 14세.

    인권단체들 진상조사 요구

    물론 티베트 분신사태와 비슷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3년 사이공에서 승려 틱 꽝 둑이 당시 응오 딘 디엠 독재정권의 불교 탄압에 항거해 분신했다. 사진작가 말콤 브라운이 이 장면을 촬영, 공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사건 이후 승려 36명과 재가 여신도 1명이 분신했다. 하지만 티베트 분신사태는 당시 베트남과 상황이 다르다. 저항 대상이 자국 독재정권이 아닌 자신들의 땅을 점령한 다른 민족, 세계 2위 강대국인 중국이라는 점이 그렇다.

    중국 정부는 1951년 티베트를 강제 점령해 자국 영토에 편입시킨 후 시짱자치구를 세우고 지금까지 통치해왔다. 중국 정부는 1959년 3월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인민해방군을 투입해 주민 12만여 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등 강압정책을 고수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그동안 종교 자유를 억압하고 언어를 비롯한 문화를 말살하는가 하면, 경제적 차별과 환경 파괴 등 ‘티베트 지우기’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분신사태는 중국 정부의 탄압정책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티베트인들이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티베트 민심은 분신 행렬이 이어질수록 점점 격앙되고 있다. 티베트 지식인들이 분신에 동참하는 뜻으로 단식투쟁을 벌이고, 학생들도 시위에 나섰다. 티베트자치구 구도인 라싸와 인근 지역에선 지식인 60여 명이 11월 26일부터 사흘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11월 26일 칭하이성 하이난티베트족자치주에선 학생 1000여 명이 티베트 독립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는 중국 공안당국이 배포한 전단지에 분신사태와 티베트어 사용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정부는 무장경찰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 20여 명이 부상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분신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분신사태를 막기 위해 이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분신 소식을 전파하는 티베트인들을 체포 및 구속했다. 분신 관련 정보를 유포하고 분신을 독려하는 자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준다는 포고령도 내렸다. 분신자 유족들에게는 정치적 목적으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면 거액의 위자료를 주겠다는 제의까지 했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대부분 이 같은 중국 정부의 회유, 협박, 탄압에 넘어가지 않고 있다. 일부 주민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족들을 돕기도 한다.

    티베트 분신사태는 중국 정부의 통제에도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탄압 문제로 부상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국제사회에 티베트 분신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와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티베트독립운동(ICT)’이 대표적인데,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티베트 여성과 어린이, 청년, 승려를 포함한 수많은 소중한 생명이 불 속에 사라지고 있는데도 국제사회가 이를 외면한다”면서 “분신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국제사회 개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서명운동에는 미국에 본부를 둔 ‘베이징의 봄’과 캐나다에 본부를 둔 ‘북한인권위원회’, 영국에 본부를 둔 ‘톈안먼 어머니 친구회’ 등 54개 단체가 동참하고 있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티베트를 위한 국제 연대 캠페인을 함께 펼쳐줄 것을 국제사회에 간곡히 호소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티베트 분신사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와 국제 인권단체들이 적극 나서 중국 정부를 압박할 것을 촉구했다.

    티베트 분신 항거 ‘거센 불길’

    중국 칭하이성 퉁런현 룽우 사원 앞 나무로 된 제단에 분신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해외로 망명한 중국 반체제 인사나 인권활동가도 티베트 분신사태와 관련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5월 미국에 망명한 중국인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은 아랍의 봄과 미얀마의 민주화 개혁 등을 거론하면서 “중국 정부는 티베트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천 변호사는 시진핑 총서기 등 중국 공산당 새 지도부가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의 개혁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네덜란드로 망명한 중국 인권운동가 천중도 “누구든 티베트 분신사태에 무관심하거나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세계 모든 국가 지도자와 언론, 양심 있는 사람들이 노력을 다해 티베트 분신사태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중은 1998년 중국 민주당을 설립한 혐의로 7년간 투옥생활을 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의 개입

    국제 인권단체들과 티베트 망명정부의 호소에 미국, 일본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의 정책과 다르게 티베트 분신사태와 인권문제를 중국 정부에 공식 언급했다. 마리아 오테로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담당 차관은 12월 5일 성명에서 “중국은 티베트인의 항의 활동에 대해 종교,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더욱 억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에 티베트 정책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오테로 차관은 중국 정부에 티베트 승려의 활동 제한, 티베트 불교 사원 감시, 티베트인의 수시 구금, 티베트인의 실종과 티베트 활동가들에 대한 무력 사용 같은 강압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포스너 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도 11월 29일 분신한 티베트 주민의 유족 3명을 만나 애도 뜻을 전하고, 중국 정부의 폭력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표했다. 게리 로크 주중 미국 대사는 11월 27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 강경 일변도의 티베트 정책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크 대사는 “미국은 중국 정부의 강압 통치에 항의하는 티베트 주민들의 분신사태를 크게 우려한다”면서 “티베트 주민들의 언어, 문화, 종교를 인정하라고 중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9월 쓰촨성 아바티베트족창족자치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미국 정부가 인권담당 차관까지 내세워 티베트 인권과 분신사태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2기에서 중국 인권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티베트가 중국이 주장해온 핵심 이익임을 감안해 티베트 문제와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달라이 라마를 자국에 초청하는 등 티베트 분신사태와 인권문제를 놓고 중국 정부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1월 3∼14일 일본을 방문해 요코하마와 나하에서 법회를 열었다. 11월 13일엔 일본 국회 참의원회관에서 의원 140여 명에게 티베트 상황을 설명하고 중국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또 일본 국회의원단에 티베트 방문과 분신사태 조사를 요청했다.

    일본 의원들은 달라이 라마의 연설 직후 ‘티베트를 지원하는 의원 연맹’을 발족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고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티베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정치권이 티베트 인권문제와 분신사태에 적극 관심을 표명한 이유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 부친과 달라이 라마 인연

    티베트 분신 항거 ‘거센 불길’

    티베트 학생운동단체가 제작한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포스터.

    달라이 라마는 분신사태 해결 방법으로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과 중국 정부와의 대화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시진핑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와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 새 지도부가 티베트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시 전 부총리는 1950년대 초 당 선전부장과 국무원 비서장을 하면서 달라이 라마와 친분을 맺었다. 시 전 부총리는 54년 달라이 라마를 베이징으로 초청해 6개월 동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당시 달라이 라마는 시 전 부총리에게 호의의 뜻으로 고급시계를 선물했다. 시 전 부총리는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한 이후에도 그 시계를 차고 다니며 친분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시 전 부총리는 “티베트 문제는 티베트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강경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시 총서기는 불교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다. 시 총서기 부인 펑리위안이 불교 신자라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시 총서기가 기존 티베트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 그 이유는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이 중국이란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중국 전체 인구의 8.4%인 소수민족은 전 국토의 63.7%를 점유한다. 티베트 독립을 허용할 경우 신장위구르, 네이멍, 만주까지 ‘독립 도미노’가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은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소수민족정책에서 티베트만을 예외로 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티베트 분신사태는 시 총서기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일 수 있다. 티베트 분신사태가 계속될수록 국제사회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권 탄압 국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으로선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려면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티베트는 중국의 핵심 이익인 만큼 달라이 라마의 희망처럼 시 총서기가 유화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티베트 분신사태를 기획, 선동하는 것은 달라이 라마 세력이며, 독립을 목적으로 사람 생명을 이용하는 것은 불교 교리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인류 양심에 저촉되는 일”이라고 비난한 것도 시 총서기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분신사태를 막기 위해 분신을 돕거나 부추기는 사람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자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국제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티베트 분신사태는 더욱 악화하고 무고한 승려와 주민만 희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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