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1

2012.11.05

사냥꾼 청년과의 애잔한 전설 간직

쑥부쟁이(개쑥부쟁이)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2-11-05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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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 청년과의 애잔한 전설 간직
    산야의 나무는 단풍으로, 풀은 가을꽃으로 변신해 아름답습니다. 색깔 따라 일렁이는 마음도 주체하기 어렵네요. 더없이 좋은 푸른 하늘 아래의 가을볕 따사로운 풍광도, 촉촉한 가을비에 젖어드는 풍광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가을 모습입니다. 그 풍광 속에서 연보랏빛 꽃송이가 풍성한 들국화도 보입니다. 바로 쑥부쟁이입니다. 다소 신비롭고 때론 특별하면서도 고결해 거리감을 주던 보라색이 쑥부쟁이 꽃무리에서 빛을 발하면 금세 다정하고 넉넉해지면서 무엇보다 청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들국화라는 말은 원래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지요. 이즈음 산에서 만나 들국화라 불리는 꽃 가운데 주로 노란빛 꽃이 피는 것은 산국(‘주간동아’ 860호 참조)이거나 감국이 많고, 희거나 연분홍빛 꽃이 핀다면 구절초기 쉬우며, 연보랏빛으로 피어난다면 쑥부쟁이일 겁니다.

    그런데 고민인 것은 그냥 쑥부쟁이는 꽃차례 지름이 좀 작고 분포도 제한적이어서 실제로는 보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바닷가는 물론, 산에서 가장 흔히 보는 그 꽃은 사실 ‘개쑥부쟁이’랍니다. 두 꽃을 구분하려면 작은 꽃송이를 싼 총포라고 부르는 부분이 가늘고 길게 올라온 특징을 찾아봐야 하고, 쑥부쟁이 잎 가장자리의 결각을 가려내야 하지만 사실 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만일 우리꽃 산책을 처음 다니는 분이라면 산에 무리 지어 핀 꽃은 대부분 개쑥부쟁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쑥부쟁이라는 특별한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옛날 아주 깊은 산골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았습니다. 이 대장장이의 큰딸이 병든 어머니와 많은 동생을 돌보며 쑥을 캐러 다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쑥부쟁이라고 부르곤 했다지요. 어느 날 마음씨 착한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상처를 입고 쫓기는 노루를 숨겨 살려주었는데, 노루는 은혜를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좀 더 길을 가다 이번엔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보게 됐고 칡덩굴을 잘라 던져서 꺼내주었습니다. 사냥꾼은 아주 잘생기고 씩씩한 청년이었는데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됐지요. 사냥꾼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 다음 해 가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약속한 뒤 떠났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오길 몇 번, 사냥꾼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움에 야위어 가던 쑥부쟁이에게 몇 년 전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서는 소원을 빌 수 있는 노란 구슬 세 개를 보랏빛 주머니에 담아주고 돌아갔습니다. 쑥부쟁이는 첫 번째 구슬은 어머니 병을 낫게 하는 데, 두 번째 구슬은 사냥꾼을 나타나게 해달라는 데 썼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져 애타게 기다리던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두었고, 착한 쑥부쟁이는 나머지 세 번째 구슬을 그 청년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에 써버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청년을 잊지 못한 쑥부쟁이는 그만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습니다.



    쑥부쟁이가 죽은 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에게 나물을 뜯게 해주려고 다시 태어났으며, 이 꽃의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노루가 준 주머니와 구슬 3개라고 여겨 그 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게 됐답니다. 쑥부쟁이는 아직도 청년을 기다리는 듯 해마다 가을이면 꽃대를 길게 빼고 곱게 핀답니다.

    혹 가을 산행 길에 아름다운 쑥부쟁이를 만나거든 연보랏빛 꽃에서 노란 구슬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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